추석 명절, 차례, 다례, 성묘 그리고 중구절  
추석과 중구절 그리고 어르신 봉양을 고민하는 우리네 삶 풍경 hompy.buddhapia.com/chusok
HOME
홈페이지소개
추석 맞이
차례상 준비
추석 보내기
성묘 이야기
고향의 정취
[앨범]추석
추석 vs 중구절
보모님 봉양
제사 이야기
장묘 문화 이야기
[추석]뉴스 모음
[링크]행복한 제사

붓다뉴스
조계종, 황우석 박사 연구재개 돕나?
“종교편향 재발방지 법제화하라”
“성의 없는 정부 태도에 분노한다”
동국대 제240회 이사회 개최
한고은, 북한어린이 돕기에 의상 등 기증









    추석 맞이
블로그형
웹진형
게시판형
 
 
추석의 어원 ㅣ 추석 맞이 2005/09/09
webmaster
 
 
추석의 어원



추석은 우리 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한가위, 중추절 또는 중추가절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를 의미한다.
이때 가배란 '가부·가뷔'의 음역으로서 '가운데'란 뜻인데, 지금도 신라의 옛땅인 영남 지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라 하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한다.
또 8월 초하루에서 보름께까지 부는 바람을 "8월 가부새 바람 분다"라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가뷔·가부는 뒷날 가위로 속전된 것으로 알 수 있으니, '추워서'를 현재에도 '추버서'로 하는 것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정가운데란 뜻이니, 정중심을 우리가 '한가분데' 또는 '한가운데'라고 하듯이 '한'은 제일, 큰의 뜻 이외에도 한의 뜻이 있음도 알 수 있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 또는 중추가절이라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 서 생긴 것이다. 즉 한자가 전래되어 한자 사용이 성행했을 때 중국 사람들이 '중추'니 '추중'이니 하고, '칠석'이니 '월석'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이 말들을 따서 합하여 중추의 추와 월석의 석을 따서 추석이라 한 것으로 생각된다.

8월 15일 을 '가위'라고 하고 '추석'이라고도 함은 고전 문학에서도 보이는데, 고려 때 가요인 '동동'에 서는 "8월 보로 아으 가배나리마 니믈 뫼셔녀곤 오날 가배샷다 아으 동동다리"라 하고, 조선조 때의 가사인 사친가에는 "8月 추석일에 백곡이 풍등하니 낙옆이 추성이라 무정한 절서들은 해마다 돌이오네 여기저기 곳곳마다 대초향화하는구나(생략) 슬프도다 우리부모 추석인 줄 모르시나"라고 되어 있음을 보아 '가위'란 말보다 '추석'이란 말이 훨씬 후대에 와서 사용된 것 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명절 길라잡이

 
 
 
 
 
추석 명절의 옛 풍습 ㅣ 추석 맞이 2005/09/09
webmaster
 
 
풍물놀이

추석에는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으며 새 옷이나 깨끗이 손질된 옷을 입는데 이것을 추석빔이라고 한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낸다. 제수는 햅쌀로 만든 메·떡·술 등과 오색 햇과일로 마련하는데 이것을 천신(薦新)이라 한다.

차례를 지내고 모인 사람들이 음복(飮福)한 뒤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省墓)한다. 성묘에 앞서 벌초(伐草)는 미리 끝내 두거나 성묘 때 함께 한다.

추석에는 세시풍속으로 전승된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행해진다. 사람들은 농악과 춤으로 흥겹게 지내는데, 한 마을에서 편을 가르거나 마을끼리 편을 짜서 하는 줄다리기는 널리 행해지는 놀이이다.

승부를 통하여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는데, 서쪽을 나타내는 암줄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고 하며, 정월대보름이나 단오에도 행한다. 잔디밭이나 모래밭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지는데 이기는 사람을 장사(壯士)라 하고 광목·쌀·송아지 등을 준다.

전라남도 서해안지방에서는 추석날 저녁 달이 뜰 무렵 부녀자들이 넓은 공터에서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를 즐긴다.

또한 남도지방에서는 닭싸움과 소싸움을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놀이 외에도 여러 풍습이 전한다.

추석 무렵 그 해 농사에서 가장 잘 익은 곡식을 잘라 묶어서 기둥이나 방문 위 또는 벽에 걸어 두는 올게심니는 다음 해의 씨앗으로 쓰이면서 그 곡식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민가에서는 조왕신과 성주신(城主神)에게 햇곡식을 올렸으며 어촌에서는 뱃고사를 지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지 않고 만선(滿船)하기를 기원하였다.

추석의 일기가 청명하면 풍년이 들고 비가 오면 불길하다고 믿었으며, 밤에 달을 볼 수 있거나 흰구름이 많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추석 음식으로는 송편 외에 햅쌀로 빚은 백주(白酒)와 봄부터 기른 닭으로 만든 황계(黃鷄) 안주가 있으며 몸을 보신하기 위하여 토란국을 끓인다.

감·밤·대추·호두·은행·모과 등이 요긴하게 쓰인다. 농가에서는 며느리가 떡·술·닭이나 달걀 등을 준비하여 친정에 근친(覲親)을 간다.

추석은 수확기를 맞아 풍년을 축하하고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으며 이웃끼리 인심을 나누고 놀이를 즐기는 명절로서, 옛날부터 민간에서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여겼다.


출처 - 명절 길라잡이
 
 
 
 
 
추석의 유래 ㅣ 추석 맞이 2005/09/09
webmaster
 
 

추석 차례상



추석의 유래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 있어 날마다 세상을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 번 만월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 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가 없기에 인간에게 있어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 만월 아래에 서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만월의 밤중에서도 일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 시고 놀면서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 강강수월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이미 일년 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후에 와서 의식화되어 명절로 제정을 보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 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가지고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것을 이를 가배라 한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 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추절(中秋節)·가배(嘉俳)·가위·한가위라고도 한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다.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쇠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적으로 선대 왕에게 추석제(秋夕祭)를 지낸 기록이 있다. 1518년(중종 13)에는 설·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다.



출처 - 명절 길라잡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