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고 그 근본에 보답하고자 하는 공경의 의식이다. 그래서 돌아가신 조상이 계신 듯이 정성을 다하여, 조상으로부터 복을 받고 후손에게 효성과 공경의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제사의 규범서가 된 『 주자가례(朱子家禮) 』에는 사시제(四時祭)·초조제(初祖祭)· 선조제(先祖祭)·녜제·기일제(忌日祭)·묘제(墓祭) 등 6가지의 제사가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에 한 차례씩 4대친(고조·증조·조·고)을 모시는 사시제는 사계절이라는 자연의 운행을, 동지에 시조를 모시는 선조제는 동지가 양(陽)의 시작임을, 입춘에 시조 이하 고조 이상의 조상을 모시는 선조제는 생물이 시작하는 봄을, 중추에 어버이를 모시는 녜제는 사물이 익는 가을을 상징하여 지내는 것이다. 반면에 기일제는 조상이 돌아가신날에 그의 죽음을 평생 기억하며 추모하는 의례이다. 묘제는 시간보다는 무덤이라는 공간적 관념이 강하기는 하지만, 3월과 10월에 지내는 묘제도 이날 초목이 처음 자라고 처음 죽는 날에 당하여 추모의 정이 생겨났기 때문에 지내는 것이다.
고려말 성리학의 수용과 더불어 중국의 『소학』과 『주자가례』가 사대부의 실천규범으로 인식되면서 우리나라에 유교식 제사가 점차 보급되었다. 『주자가례』를 수용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기제와 묘제를 중시하여 『국조오례의』 및 『상례비요』 등에서는 크게 사시제, 기제, 묘제만을 주요 제사로 규정하였다. 이들 예서에서 가장 크게 여긴 제사로는 정침(청사)에서 지내는 사시제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묘소를 중시하여 사당에서보다는 설·한식·단오·추석 등 사명일(四名日)에 묘소에서 제사를 지내왔다. 사당에서의 사시제와 사명일의 묘제가 절기상으로 겹치거나, 묘제 관행이 성행함에 따라 사시제는 점차 축소되었다. 이에 사당에서는 4대 조상을 중심으로 기제 및 명절 차례를, 묘소에서는 3월 또는 10월에 지내는 묘제(세일사) 및 사명일에 지내는 절사를 지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가정의례준칙』에 의해, 기제는 2대에 한하여 지내고, 차례는 설과 추석에, 묘제는 한식·추석·중구, 또는 적당한 날을 잡아 행례하게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제사관행으로 4대친에 대한 기제와 아울러, 설과 추석(또는 중구) 등의 차례와 성묘가 중요한 제사로 인식되었으며, 시제는 한식 또는 10월에 5대 이상 조상의 묘소에 묘제를 지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처음 유교식 제례가 수용되었을 때 신분별로 봉사대수도 한정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 예전에, 문무관 6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하는 2대 봉사, 일반서인은 부모만 제사지내도록 정하였다. 이렇게 봉사대수가 법제적으로 신분적인 차등이 있었지만, 『주자가례』를 실천하는 사림을 중심으로 점차 4대 봉사를 행례하면서 관행적으로 신분의 구별 없이 4대 봉사를 하게 되었다. 기제사는 4대에 한정되어 지내게 되어 있지만, 국가에 공훈이 있거나 학식이 뛰어난 학자는 사당에서 영원토록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사당에서 영원토록 옮겨지지 않은 신위이라 하여 불천위(不遷位), 불천지위(不遷之位), 부조위라 하며, 이를 모시고 있는 사당을 부조묘라 한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가정의례준칙 』이 제정되어, 기제는 불천위를 제외하고, 조·고 2대에 한하여 봉사하도록 하였으나, 전통적인 관행으로 아직까지 4대 봉사를 하고 있다.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장소를 사당(祠堂) 또는 가묘(家廟)라고 한다. 사당에서는 매월 초하루 및 보름, 명절 등에 차례를 지내며, 매일 아침 찾아뵙거나,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 고하기도 한다. 사시제 및 기제에는 사당에서 신주를 정침(청사)로 모시어 제사를 지낸다. 묘제는 묘소에서 지내나 비가 오거나 할 때는 재실(齋室) 또는 재사(齋舍)에서 지방으로 망제(望祭)를 지내기도 한다.
제사 대상은 원래 신주(神主)이나, 신주가 없을 때에는 지방(紙榜)이나 영정(影幀), 사진으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