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이운행사  
대장경 축제 hompy.buddhapia.com/deajangkungfestival
HOME
대장경 축제
대장경에 관하여
대장경관련 사진들
대장경 관련 이슈
행사정보

 
 
대장경 판각지/판재 ㅣ 대장경에 관하여 2005-10-07 오전 11:11
jijibeda
 
   
 







남해 관음포 갯벌에 3년간 묻어둔 통나무 경판크기로 試料 채취 미생물·판재등 상태분석 대장경 판각지 등 연구

◇경북대 박상진교수(사진 왼쪽)는 ‘대장경판용 목재는 통나무 상태가 아닌, 판재로 가공한 것을 바다에 넣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장경문화학교가 3년전 침수시킨 목재에는 원목 외에도 실험용 판재 등이 섞여있다.

◇남해의 갯벌에서 파낸 경판용 통나무들.

◇탕개톱으로 자작나무에서 실험용 시료를 자르고 있는 대장경문화학교 회원들.

완만한 선으로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이루던 해안이, 한 포구에 이르러 커다란 반원을 그린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격전지(노량해전)로 유명한 이 곳은 경상남도 남해군 관음포. 16일 오전 10시. 대장경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안준영 교장, 경북대에서 임산공학을 연구하고 있는 박상진 교수,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종림 스님 등 60여 명이 모여, 바닷물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갯벌이 드러나는 물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번 밀물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팔만대장경의 제작 과정을 재현하고 당시의 경판 제작 방법과 장소를 밝히기 위한 첫 발을 이 갯벌에서 내딛기 때문이다. 갯벌에는 97년 4월 남해군의 협조를 받아 묻어 둔 3톤 분량의 통나무들이 있다.

나무의 종류는 경판을 만드는 데 사용된 것으로 밝혀진 산벚나무, 돌배나무, 자작나무, 층층나무, 단풍나무 등 7종. 하나같이 구전으로만 전해오는 팔만대장경의 제작 방법과 장소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재료들이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당시의 임시수도였던 강화도에서 자작나무에 새겨 보관하다가, 조선 태조 7년에 해인사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장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많은 의문과 모순이 있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경판의 판재는 최근까지도 ‘자작나무’로 알려져 왔지만, 경판 2백여 장을 표본추출하고 전자현미경으로 판재의 세포 조직을 분석한 박 교수에 따르면 산벚나무(135개)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돌배나무(31개), 자작나무(18개) 등의 순으로 밝혀졌다. 70년대 말부터 해인사 판전 입구에 ‘경판을 만든 자작나무’라는 설명과 함께 통나무를 전시해 온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판은 자작나무로 만들었구나”하고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안 교장은 “팔만대장경에 대한 문헌 기록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이규보의 ‘대장각판군신기고문’, ‘대장경판의 간지’ 등이 전부인데, 그 표현이 애매해 ‘대장경 판재’ ‘제작 과정’ ‘판각지’ 등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오전 11시 40분. 굴삭기 1대가 갯벌로 서서히 들어서더니, 갯벌 속에서 통나무를 건져내기 시작했다. 40분 남짓 경과하자 갯벌에는 거무튀튀한 50여 개의 통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어서 포구 한 귀퉁이에 마련된 보관소로 옮겨졌다. 보관소는 바닷물을 잔뜩 먹은 통나무를 자연 건조시키기 위해 갯벌 인접 지역에 10평 크기로 마련됐다.

갯벌에서 캐낸 통나무를 실은 트럭이 포구를 돌아 보관소에 도착하자, 박 교수와 안 교장 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대장경문화학교 회원들은 탕개톱으로 통나무를 잘라 시료(試料)를 만들고 또 경판 크기의 판자 30여 장을 만들었다. 대장경의 ‘제작 과정’ ‘판각지’ 등을 밝히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작업은 대장경문화학교와 경북대·충남대·순천대 연구소에서 각각 진행된다. 대장경문화학교에서는 두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보관소에서 만든 판재를 대장경문화학교로 가져가, 소금물에 삶아 건조한 뒤 판각한다. 또 하나는 통나무를 그 자체로 자연 건조시킨 다음 판재로 가공해 판각한다.

대장경문화학교에서 진행하는 두 방법은 모두 전통의 것인데, 학교측은 두 과정을 진행하면서 ‘판재의 뒤틀림’과 ‘판각의 적절함’ 등을 비교, 팔만대장경 제작과정을 밝힐 계획이다. 두 방법 중에서 보다 나은 방법이 당시에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구전에 따르면 나무를 베어 바닷물에 3년을 침수시켜 소금물로 삶아서 건조한 다음 경판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안 교장은 “통나무 자체를 소금물에 삶는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로 보고 있다.

또한 대학 연구소에서는 이번에 채취한 시료를 이용, 대장경판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전자현미경으로 경판 나무의 세포 조직을 판독해 판재의 주요 수종의 밝혀냈듯이, 화학과 미생물학을 이용하면 자연 혹은 소금물 건조에 따른 판재의 강도와 팔만대장경판의 강도를 비교해, 대장경의 제작 과정을 밝힐 수도 있고, 건조 후 판재에 남아 있는 미생물과 판재의 상태를 분석하면 ‘판각지’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강화도 판각설이 가장 인정받는 학설이지만, 해인사에서 새겼다는 ‘재래설’, 강화도 경판과 해인사 경판이 따로 있었다는 ‘2벌설’, 분사대장도감이 있었던 ‘남해 판각설’, 주요 사찰에서 나누어 새겼다는 ‘분산 판각설’ 등의 이설(異說) 역시 강하게 거론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팔만대장경이지만,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밟아 만들어져 오늘날 해인사에 있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대장경문화학교 안준영 교장은 “8만1천여 장의 대장경판이 8백년이 지나도록 변형되자 않는 신비를 벗기기 위한 준비를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했다”며 “3년쯤 이후 1차 연구 결과가 나오면, 팔만대장경과 관련된 ‘구전’ ‘가설’ 등의 진위 여부를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