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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가 있는 영취산을 자장율사의 산이라고 하면, 천성산은 원효대사의 산이다. 1천 3백여 년 전, 원효가 중국의 제자 1천명을 모아놓고 설법했다는 그 유명한 화엄벌도 이 산에 있기 때문이다.
천성산은 산꼭대기에 희귀한 산중늪을 이고 있어서 등산을 겸해 한번쯤 돌아볼 만한 산이다. 5월 중순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스러지고 여름꽃들이 꽃망울들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천성산은 계곡이 잘 발달되어 있고, 몇 개의 등산로도 계곡을 따라 나있다. 그 중 내원사 계곡이 가장 무난하다.
내원사 계곡물은 용연천이라는 이름으로 양산천과 합류되어 낙동강 본류로 들어간다.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물이끼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수질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물을 보면 그 숲을 안다고 했으니, 천성산의 숲 생태계가 아직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내원사 계곡을 이루는 용연천 주변은 동식물의 개체수는 많지 않으나, 서식종은 다양하다. 하루살이 애벌레도 용연천의 수서곤충 식솔이다. 이름과는 달리 ‘하루 목숨’이 아니다. 애벌레 시절 대부분을 물 속에서 보내지만, 물 밖에 나와서만도 며칠을 산다. 1급수에 사는 깨끗한 곤충이다.
용연천 주변은 잠자리류들이 많다. 초여름이면 밀잠자리가 특히 눈에 많이 띈다. 수컷은 하늘색을 띠지만, 암컷은 황갈색을 띤다. 게다가 가을이 되면서 배의 앞쪽으로 흰색 가루가 덮이고 뒤쪽은 흑색을 띠게 되어 자칫 다른 잠자리로 헷갈리게 한다.
병풍골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기자기한 기암절벽이 내원사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다. 물소리만큼 천변만화하는 것도 없다. 물소리는 지나는 곳마다 다르게 들린다. 개울의 폭이 다르고, 지형지물이 다르고, 숲이 다르고, 수량과 수질이 달라지면 물소리도 자연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듣는 이의 감정에 따라 물소리는 천변만화로 달라진다.
<혼불>을 남기고 떠난 소설가 최명희는 어느 계곡에서 물이 ‘소설, 소설, 소설…’하고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소, 설, 소, 설, 소, 설, 소…. 자연과 합일이 되면 그런 소리가 들릴 것이다.
월 중순이면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매미는 수컷만 운다. 수컷은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자기의 존재를 암컷에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여름내내 기를 쓰고 우는 것이다. 물소리가 요란할수록 수컷은 더욱 목청 돋워 운다.
내원사로 건너가는 개울숲에서는 여러 마리의 대벌레가 눈에 띈다. 몸과 다리가 가늘고 길어서 얼핏 보면 사마귀를 연상케 하지만, 생태는 전혀 다르다. 사마귀는 날개가 있는 육식곤충인데 비해 대벌레는 날개가 없는 초식곤충이다. 동작이 둔한 반면 자기를 지키는 수단이 뛰어나다. 나뭇잎에 붙어 있을 때는 녹색으로, 땅바닥에 있을 때는 흙색으로 몸 색깔을 바꾼다. 내원사 계곡숲엔 반딧불이의 천지이다. 여름이면 현란한 야광의 축제가 밤마다 열린다. 반딧불이는 환경지표종이다. 반딧불이는 적어도 2급수 이상의 양호한 수질에서만 서식할 수 있다.
또, 밤이면 이따금 딱정벌레들이 불빛을 찾아 날아든다. 애사슴벌레에서부터 장수풍뎅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딱정벌레들이 보인다. 애사슴벌레는 집게를 뿔처럼 달고 있는 작은 딱정벌레다. 주로 여름철 깊은 활엽수림에 나타나는 장수풍뎅이는 암수의 모양이 다른데, 수컷은 코뿔소처럼 머리에 돌기가 나 있어서 매우 재미있게 생겼다.

여의교를 건너면 내원사다. 원효가 머물다간 후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의천이 천태사찰로 바꿔놓았고, 민족항일기에는 혜월선사가 주석하며 많은 선승들을 배출했다. 지금은 꽃보다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내원사 대나무숲은 그리 넓지 않으나, 제법 그윽하다. 대나무는 곧으면서도 폭풍우에도 잘 꺾이지 않는 유(柔)함이 있다. 대나무의 강함과 부드러움은 마디에서 나온다. 대나무는 그 마디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성장까지도 멈추며 고통의 시간을 참고 견뎌낸 것이다. 대나무 가지와 잎도 그 마디에서 나오고, 땅속 뿌리까지도 그 마디에서 나온다.
대숲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숲길은 그윽하고 깊다. 종류는 다양하나, 덩치 좋은 노거수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염려할 일은 아니다. 뛰어난 목수는 쓸모를 생각해서 나무를 고르지 않고, 나무를 보고 쓸모를 생각한다고 했으니….
정상으로 오르는 숲속 등산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소로이다. 그런데, 내원사를 지나 20여 분 올라가면 차도 같은 임도가 느닷없이 나타난다. 양산시가 개발할 목적으로 임도 주변을 군데군데 정원석으로 꾸미고, 길을 넓히고 주차장까지 만들었다가 스님들에게 혼쭐이 났다.
천성산 8부 능선께 오르면 갑자기 드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위쪽으로는 천성산과 원효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평평한 능선이 이어져 있다. 이곳이 바로 원효가 1천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금북(金鼓)을 치며 화엄경을 설했다는 전설의 화엄벌이다. 9만여 평의 넓은 초원의 절반 가량은 희귀한 산중늪이 자리하고 있다. 화엄늪이라고 부르는 이 습지는 1999년 9월 울산의 식물학자 정우규 박사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다.
늪 위쪽에 따로 계곡이나 숲이 있는 것도 아닌데 초원 곳곳에서 용천수가 흘러 초원을 흥건히 적시고 있다. 바닥은 낙엽과 풀잎들이 쌓여 물먹은 스펀지 같은 이탄층(泥炭層)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스펀지와는 달리 이탄층은 일단 망가지면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1cm 두께의 이탄층이 쌓이려면 1백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같은 산중습지가 그리 많지 않다. 강원도 용늪과 무제치늪 등 대여섯 군데 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화엄늪이다.
화엄늪에는 환경에 맞는 특이한 생물종들이 특수한 생태계를 이루며 수천 수만년을 살아왔다. 그대로가 살아있는 작은 자연사박물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자생식물은 695종이며, 곤충은 38종이나 된다고 한다.
화엄늪의 아름다운 생명들을 보면, 그들은 천성산이 좋아서 꽃나무와 풀벌레로라도 다시 돌아와 살려고 했던 원효시대의 대중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들을 보면,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잠자리 한 마리에도 원효의 얼이 서려 있는 듯하다.
늪의 식생을 보면, 억새와 진풀이새 군락 사이에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잠자리난초, 미꾸리낚시, 동의나물, 물매화, 수정난풀, 송이풀, 물이끼, 비비추, 은난초, 다래, 꽃창포 등 습지성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식충식물이다. 일반적인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는 곤충이 식물을 먹이로 하지만, 특수한 종의 경우는 식물이 곤충을 먹이로 한다. 그것이 바로 식충식물이다. 특히 끈끈이주걱은 뿌리가 얕아서 사람들이 조금만 밟아도 살아나지 못한다. 그나마 토양과 수질 오염에 너무 약해서 전국적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이탄층 사이에서 흘러나온 물은 더러 샘을 이루기도 하고, 더러 도랑도 만들면서 아래로 흐르고 있다. 물자라를 비롯해 각종 수서곤충들의 서식처이다. 평지도 아닌 산꼭대기에서 물자라를 만난다는 것은 예사로운 기쁨이 아니다. 물자라는 한 차례 짝짓기를 해서 1개의 알을 얻는다. 통상 1백여개의 알을 얻기 위해 암컷은 1백여 차례나 짝짓기를 해야하는 괴로움이 있다. 물자라의 생태를 보면, 생명은 추잡한 쾌락 끝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희생 끝에 탄생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곳엔 제일줄나비를 비롯하여 산지성 일반곤충들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잠자리로는 꼬마잠자리가 흔치 않게 보인다. 특정 야생동물로 지정된 표범장지뱀과 도롱뇽( 도롱농 법정에 서다 )이 관찰되고, 여러 종류의 올챙이들도 보인다. 그리고, 초식동물인 고라니와 멧토끼를 비롯하여 육식동물인 너구리와 오소리도 천성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너구리가 억새밭 사이에다 배설물을 싸놓고 갔다. 머지않아 다래꽃이 화엄벌을 하얗게 덮을 것이다. 다래는 낙엽지는 활엽덩굴식물이다. 줄기의 골속은 갈색이며, 어린 가지에 잔털이 있다. 매화처럼 생긴 하얀꽃은 암수 딴 나무로 여름에 핀다.
등산로 길섶에는 꽃창포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피어있다. 붓꽃과에 속하는 꽃창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주색 꽃창포는 우리 고유종이지만, 노랑꽃창포는 남의 나라 것이다. 우리 꽃창포는 전국의 산과 들의 습지에 자생하며, 뿌리줄기로도 번식되지만 씨앗으로도 잘 번식된다.
머리 위로 참매 몇 마리가 맴을 돈다. 참매는 예로부터 꿩사냥에 사용해 온 대표적인 사냥매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그 숫자가 줄어들어 보기 힘들다. 그 매가 천성산에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이만저만 반가운 일이 아니다.
산꼭대기 나무 위에 몇 마리 까마귀가 앉았다가 가볍게 창공을 날아오른다. 신라인들은 상서로운 새라고 해서 대보름날 약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보은했다. 신라문화가 일본으로 전해져서 일본도 까마귀를 상서로운 새로 여기게 되었고, 심지어는 애완용으로 키우기까지 한다. 울음소리야 다를 바 없지만, 일본인들은 까마귀 울음소리를 ‘가와이 가와이’로 표현한다. ‘가와이’라는 말은 ‘예쁘고 귀엽다’는 뜻이다.
최근 천성산이 또다른 근심에 휩싸였다. 정부의 고속철도가 천성산 심장을 뚫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속전철의 천성산 관통은 수맥변화와 지반침하를 일으켜 화엄늪지대를 파괴하며, 천성산 숲과 계곡을 급속하게 망가뜨릴 것이 뻔하다.
산은 뭇생명들의 집덩어리이다. 산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그곳에 사는 야생동식물들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연에 대한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다. 조상들은 산을 ‘오른다(登山)’하지 않고, ‘든다(入山)’라고 하였다. 꼭히 등산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는 ‘등고(登高)라는 말을 썼다. 등고란,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그 산의 높이를 오르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고 산에 오르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 교통 : 부산 동부터미널에서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언양행 완행버스를 타고 내원사 입구 삼거리에서 내린다. 승용차는 경부고속도로 통도사 IC에서 내리면 내원사 입구까지 5분 거리이다. 문의 : 055-374-6466 (내원사 종무소)
출처 : 새마을금고 전자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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