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사발은 서민을 위한 진정한 예술품
“단강리 사기막골에 무명도공 추모비 세울 것”
날씨 풀리면 물레들고
거리에 나가 시민을 만날 계획
“도예는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합니다”
문막읍 궁촌리에 도예작업실을 두고, 중앙동에서 ‘박국현 도예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도예가 박국현씨(44).
박씨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40평생을 흙과 함께 살았다. 이천에서 도예를 했던 부모님의 피를 받아 태아적부터 흙의 숨결을 느끼며 살아왔고, 유년기도 흙을 만지며 살았다. 18세가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도예를 시작했다.
박씨는 고향에서 도예가로 활동을 시작해 27세가 되던 87년 경기도 광주에서 ‘박국현 도예공방’을 차렸다. 이후 90년 경주로 내려가 8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고 98년 원주에 정착했다. 박씨가 경주로, 원주로 자리를 옮겨가며 작품 활동을 했던 것은 작품 활동에 있어 개인의 만족감만큼이나 주변 환경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박씨의 전공은 ‘막사발’이다. 도예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막사발을 택한 이유는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예술품이야말로 진정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박씨는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공예품을 만들었을 때 시민들에게 한 점이라도 나눠 줄 수 있다”며 “관상용 예술품은 너무 어려워 시민들이 다가가기 어렵다”고 전했다.
박씨가 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 철칙으로 여기는 문구는 ‘시민 속으로’이다. 막사발을 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고, 공방을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박씨는 날씨가 풀리면 중앙로에 물레를 들고나가 시민들에게 도예를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재료 값만 있으면 누구든지 공방에 나와 실습을 할 수 있도록 개인지도를 해주고 있다.
박씨의 앞으로 계획은 원주에서 도예를 대중화시키는 것이다. 도자기의 본 고장인 여주가 인근에 있는데도 원주는 도예 불모지라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도예 대중화라는 목표로 박씨를 이끌고 있다.
박씨의 계획 중 또 한가지는 무명도공을 추모하는 비석을 세우는 일이다. 부론면 단강리에 사기막골은 고려시대부터 도예를 해 오던 곳으로 지금도 무수한 사기그릇 파편이 나오고 있다. 박씨는 이 곳에서 서민들을 위해 묵묵히 그릇을 만들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무명도공을 추모하고 싶은 것이다. 박씨는 흙을 눈으로만 보아도 도자기를 구웠을 때 어떤 빛깔이 나올 지 알 정도로 흙에 대한 관찰력이 남다르다. 흙을 제대로 알기 위해 직접 먹기까지 한다. 또한, 작품 활동을 할 때는 반드시 천연유약만을 고집하며, 자연석과 나무를 태운 재를 쓴다. 그릇은 사람들이 음식을 담아 먹는 도구로 인공이 가미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박씨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면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경제 사정에 밀려 때가 묻는다는 것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이다.
박씨는 해마다 공방에서 ‘열린 공방 그릇전’을 개최한다. 열린 공간에서 도예를 대중화 시키기 위해 작은 음악회와 사물놀이 공연을 곁들여 진행하고 있다. 또한, 89년 도예공방을 설립한 이후 국제 막사발 페스티벌과 국제장작가마 페스티벌 등 각종 행사에 참가하고 있으며, 원주와 서울에서 개인전도 수 차례 열었다. 94년에는 전승공예대전을 수상하기도 했다. 검을 묵(墨), 걸음 보(步) ‘묵보’라는 호를 가진 박씨는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 택할 것”이라며, “호처럼 부지런히 탐구하고 활동하는 예술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태아때부터 흙냄새를 맡은 박국현씨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겠다고 한다.
김선기기자 (원주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