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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조선왕실사찰 대자암지 유물 출토 ㅣ 폐사지 관련 뉴스 2008-08-05 오전 9:32:
 
조선왕실사찰 대자암지 유물 출토  

문화재활동가 차문성 씨 ‘왕실묘’ 답사 중 발견

불교계 관심고조…관련기관 발굴에 ‘난색’표명

조선 초 왕실의 원찰로 전성기를 누렸던 대자암(大慈庵)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이 대거 발견돼 불교계 안팎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화재활동가 차문성 씨는 최근 “경기도 고양시 벽제읍 대자동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왕손 묘소 인근을 답사하던 중 조선 초 왕실 사찰인 대자암 대중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기 등 유물들을 발견했다”면서 “이들은 과거 해당지역에 대자암이 존재했음을 말해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밝혔다.

<사진> 지난 7월25일 문화재활동가 차문성 씨와 조계종 문화부, 발굴조사단 관계자들이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소재 대자암지에서 관련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대자암은 조선 태종 18년 넷째 아들 성녕대군이 13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어머니 원경왕후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같은 해 세운 사찰이다. 이 사찰은 암자로 명명되긴 했지만, 조선 초 흥천사, 흥덕사, 진관사 등과 함께 한성 인근에 있는 왕실원찰로 조성돼 국가로부터 노비와 사전(寺田)을 부여받는 등 당시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대자암 소유 토지가 250결(약60만 평)에 이르고 스님 120명을 비롯해 수백 명의 대중이 상주한 대형사찰이었다”는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하지만 대자암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폐찰의 위기를 맞고 이후 인조의 아들 경안군과 손자 임창군의 묘소로 조성됐다. 또 근현대를 지나면서 사지에 대한 훼손이 가중되고 관련 사료도 부족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현재 경안군과 임창군의 후손인 전주 이 씨 문중 소유로 되어 있는 이 지역은 고양시의 관할이다. 경안군과 임창군의 묘소는 고양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돼 있지만, 대자암 터는 전대자암지(傳大慈庵址)로만 명명돼 관리와 보전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문중이 해당지역 일부를 개발하고 있어 관련 유적의 훼손방지를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 7월25일 현장조사에 나선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와 불교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도 차 씨와 같은 의견을 내놨다. 김진덕 불교문화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현장에서 발굴된 기와편, 자기, 백자 등의 문양으로 볼 때 조선 초 유행하던 양식이 확실하다”면서 “조선 초 왕실에서 사용하던 자기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이 지역이 대자암 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또 “최소 1m 이상 발굴하면 절터를 증명할 수 있는 유구들도 찾을 수 있는 만큼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지역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이 문화재청 또는 지자체 차원에서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해당지역이 왕실후손 문중소유의 사유지인 만큼 앞으로 발굴조사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 관리감독에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 고양시 등도 “대자암에 대한 확실한 문헌기록이 없어 문화재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발굴조사에 난색을 표했다. 이에 대해 차문성 씨는 “문화재청 등 해당기관에 대자암의 발굴을 요청했지만, 문화재의 가치보다는 법률적용만 따지고 있어 안타까웠다”면서 “정부가 해당지역을 매입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발굴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고양=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48호/ 8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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