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명상
박영택(미술평론가,경기대 미술경영교수)
부산 바닷가를 떠나 대리석이 산을 이룬 이탈리아에서 자연과 벗하면서 조각을 하는 이가 있다. 부드러운 질료성으로 가득 찬 바다의 살을 대신해 차갑게 빛나는 대리석의 결들이 무늬진 곳, 아득한 시간을 머금고 있는 내부와 단단하면서도 더없이 부드러운 대리석의 질감이 응축되어 결정을 이룬 곳을 쪼개 나가고 다듬어 가면서 형상을 꿈꾸는 장소, 자연과 함께 벗하면서 생활하고 그 자연과 자신이 하나로 스며들어 가는 접점에서 문득 정과 망치를 들게 하는 곳에 작가는 와 있다.
멀고 긴 길을 돌아 정박한 곳에서 작가는 여전히 고향의 바닷가나 그곳으로 부터 파생한 향수, 그리움, 소망과 염원 등을 한 편의 수필이나 단정한 시어처럼 뽑아낸다. 그것은 문학적이고 서술적이며 풍경적이다.
돌에 형상을 새겨 공간에 위치시킨 순간 그 돌은 이내 또 다른 존재로 환생해서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세계를 이룬다. 돌로 자족하는 세계는 새삼 인간의 살과 자연의 생명들로 바글거리는 현실계의 풍경을 추억하고 회상하면서 기대어 서있다.
작가는 그렇게 돌 안에 인간과 자연을 기념하고 회상하는 한 편의 시를 써넣듯이 조각을 하고 있다.
한기늠은 르네상스시대의 미켈란젤로가 사용하던 스타투아리오(Statuario)라는 대리석으로 계곡에 서 있는 여인의 모습, 대나무와 연꽃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자 인물상과 자연은 서로 유기적 관계로 얽혀 풍경을 이루고 있다. 인물들은 대부분 명상, 침묵, 관조나 수행의 자세를 연상시키는 부동과 정적인 분위기를 짙게 드리운다. 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을 휴지(休止)케 하는 이 조각은 마치 불상이나 종교적 도상을 닮아 있다. 특정 종교의 형상화가 아니라 일종의 영성과 초월성, 신앙심 깊은 마음의 배려들을 상징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녀나 여인을 떠올리는 이 인물들의 자세는 대부분 부동이다. 시간이 정지되고 모든 세속의 소음이 그친 자리에 더없이 평화로운 순간을 연기 시키는 포즈들이다. 눈을 내려감거나 부재한 얼굴의 표정, 단순하고 간결하게 처리한 의습 등도 그 같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편이다. 대부분 직립해 서있는가 하면 반원의 구조에 걸터 앉아 있기도 하고 더러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혹은 의자에 손 하나가 얹혀진 모습들 역시 한결같이 내성과 성찰의 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차원에서 멈춰 있다. 흰 대리석을 쪼고 곱게 갈아 또 다른 생명체로 환생하는 이 과정은 다분히 종교적이고 수행적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한 그녀는 깊은 자연과의 교감 아래 길어 올린 명상과 침묵으로 절여진 한 순간을 몇 가지 도상으로 상징화 시키고 있다. 여자들은 한결같이 묵상에 잠겨 있거나 독서를 한다. 또는 직립해서 나무처럼 서 있거나 걸터 앉아 있다. 조용하고 사색적이다. 더러 자연 풍경이 사람의 몸으로 파고 들어 하나가 된 경지도 있다. 자연과 인간이 구분없이 혼재한 풍경은 자연친화적, 범신론적 분위기로 가득하다. 여자, 연꽃, 대나무, 은행나무, 독서하는 모습, 혹은 기도하는 모습, 의자, 손, 비파나무 잎사귀 등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 상징들을 연결시키고 맞물려서 모종의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한기늠의 조각은 그런 면에서 서술적이고 연극적이며 무대와 같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 돌조각은 모든 것들을 차갑게 얼려 놓는다. 돌은 생명체를 박제화 시키고 정적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이기고 불사와 불멸을 부여하는 장치가 된다. 모든 색과 구체적인 형상을 지우고 흰 대리석 색채와 단순하고 간결하게 마감된 구조 안에 모든 것을 수용해 버린 이 조각은 인간과 자연이란 두 존재를 하나로 결박, 고정시켜 놓았다. 우리는 이 조각을 통해 아주 오래도록 형상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 특정한 사연에 얽힌 존재들이 풀려나와 오로지 그 존재 자체로만 우리 눈앞에 직립해 있는 것이다.
한기늠의 조각은 구체적인 형상이 있는, 이른바 구상조각에 가깝지만 특정한 대상을 닮게 묘사하거나 재현하는 조각은 아니다.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미지의 힘을 보여준다. 생략과 절제, 단순성과 고요함을 지닌 이 조각의 세계는 가시성의 세계가 아닌 비가시성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상징적인 도상화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문장화 시키는 것이 조각이다. 우리는 눈을 감음으로써 다른 세계를 떠올린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인물들 역시 다들 저 너머를 꿈꾼다. 한기늠의 조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 앞에 놓인 조각적 대상을 매개 삼아 보이지 않는 세계, 저 너머의 세계,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세계로 인도하는 듯 하다. 그러니까 작가의 조각은 보여지는 것 보다 그 나머지 부분을 상상하게 하고 특정한 분위기를 유인해내는 매개처럼 작동한다. 작가의 조각은 일종의 단서처럼 놓여져 있고 보는 이들은 그 단서를 징검다리 삼아 겅중거리며 나아간다.
한기늠은 15년 동안 이탈리아의 중서부 도시의 지중해와 알프스 산맥이 있는 휴양지에 정박하면서 그곳의 대리석을 통해 자신의 단상들을 하나씩 둘씩 쪼아내는 일을 지금껏 해오고 있다. 대리석 안에 갇힌 형상을 조심스레 풀어내고 대리석을 위무하며 생명을 불어 넣어 준다. 작가의 작업은 대리석과 함께 묵상에 들어가 자기 일상을 그 안에 조금씩 조금씩 밀어 넣는 일이다. 조각하는 일은 일종의 수행이자 자기 내부로 파고 들어가 본성과 만나는 일이고 모든 것을 가라앉히고 모든 것을 침묵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다. 따라서 작가의 조각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에서의 체험을 다룬다. 일상이 조각적으로 체화된 작품이다. 현대조각의 논리나 개념성이 짙게 가라앉은 것도 아니고 다소 진부한 구상조각의 유미주의로 깊숙이 가라앉은 것도 아니다. 이른바 정신주의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고나 할까, 또는 내밀한 종교성으로 견인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충만한 정신성과 영성이 소박하고 품위 있게, 대리석에서 마치 꽃처럼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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