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노불자명스님에 대하여 ㅣ 노불자명 (老佛慈明) |
2006-06-15 오후 6:46: |
|
|
|
|
|
| |
|
 노불자명(老佛慈明,Nobul Jamyung) 스님에 대하여
|
스님은 현재 백담사 임운당에 은거하여 참선수행과 선시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1951년 한국동란중에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평범한 유년시절을 지내고, 1967년에 해인사로 출가하여 해인강원과 동국대에서 공부하고, 1993년에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논문은 한산의 선시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1970년부터 송광사, 해인사 등 제방의 여러 선원에서 정진하였고, 1995년 여름에 미얀마 양곤의 마하시 선원에서 안거를 지낸후 동남아 불교국을 돌아보고, 중국의 선사찰을 탐방하고, 인도의 불적을 순례하였습니다.
1994년 여름에는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이태리, 그리스 등 유럽 문명을 두루 돌아보고, 그 후 미국에서 얼마간 지내다 1999년 가을에 귀국하여 백담사에서 지낸 후 2008년 봄에 은해사 운부암 선원에 들어와 임운당에 은거하여 참선수행하며 선시를 쓰고 있습니다.
1978년에 김춘수 선생 추천으로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시인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스님이 처음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산 선암사에 머물때 미당 시집 '동천'을 보고서였습니다. 그 때부터 시작을 했으며 본격적으로 시의 길에 들어선 것은 동국대학교에 들어가서 동인활동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불교대학과 국문학과에서 모여 5명이 하여시 동인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동인시집으로 '하여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 3학년 가을학기에 휴학을 하고 해인사에 내려가 지내면서 대구의 젊은 시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김춘수 선생과 인연이 되어 현대시학에 추천을 받아 등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때는 같은 승가학과 스님들 셋이서 기념시집으로 '귀향'을 냈습니다. 선시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참선수행의 길에서는 처음 출가해서 삭발한 곳이 해인사 백련암이었고, 해인사 강원에서 사집과정을 마치고 정월에 걸망을 메고 처음 선방에 발을 들여놓은 곳이 수원 용주사였습니다. 용주사에 잠시 있다가 인천 용화사에 가서 머물다가 여름에는 송광사 문수전에 가서 수선안거를 지냈습니다. 다음 겨울 동안거를 해인사 선원에서 지내고 난 후에, 범어사로 가서 광덕스님이 처음 문을 연 승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 동국대에서 과정을 밟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인천 용화사에 가서 송담스님의 말씀을 듣고 정진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스님의 지향하는 길은 무념시(無念詩)에 있습니다. 철저히 고독한 은거 속에서 선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체득하는 진실한 생명의 목소리를 선시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 스님이 추구하는 길입니다. 스님은 오로지 선시인의 길만을 곧게 걸어가고자 합니다.
저서로는
시집; 어느자리의 꽃송이(평민사,1981),
수상집; 물을 바라보며(대원정사,1988), 무소득의 마음(고요아침,2004),
논문; 보조지눌의 간화선 연구(석사논문,동국대 대학원,1986), 한산의 시세계 연구(박사학위논문,동국대 대학원,1993), 선문학의 세계(한국불교학, 1992), 한산시에 있어 청산백운과 체용(동국사상, 1992) 선시 이해의 길(유심, 2003),
외 다수가 있습니다.

 (건봉사 진신사리탑 앞에서, 2005년 부처님 오신날 아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Copyright ⓒ 2006 All rights reserved.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555 은해사 운부암 임운당 (우)770-892
전화 (054)335-1232, 011-9144-3883
mail; nobul2@naver.com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