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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퍼하지 말라 죽지 않는 것 없으니 - 쿠시나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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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야,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일찍이 가르쳐준 바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 친한 사람과는 헤어지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난 모든 것은 반드시 죽지 않을 수 없다.” ‘회자정리(會者定離)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붓다의 말씀. 지난해(2003년)는 유난히 많은 선지식, 스님들께서 연이어 열반의 세계로 떠나셨다. 그 분들 중에는 지난 시절, 친견의 은혜와 더불어 존영(尊影)을 담을 수 있었던 인연도 있었다. 이제 떠나신 후 그 모습을 떠올려 보니 마치 한때의 꿈처럼 아득하다. 그러나 세상 인연은 꿈꾸듯 다시 오는 법. 한 생각 일으켜 무수한 선지식의 길을 거슬러 스승의 그림자를 찾는다. 이른바 석가세존의 원적(圓寂). 그 열반당에서의 반추. “내가 떠난 뒤, 가르침을 말할 스승이 이미 없으니 우리들의 스승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입적한 뒤에는 내가 설하고 제정한 법과 율이 너희들의 스승이다.” 제자 아난다에게 설하신 붓다의 부촉은 불가(佛家)의 법(法)되고 마침내 만고의 진리로 수많은 붓다를 길러내게 한 역사의 현장, 쿠시나가르(Kusinagar). 아침 일찍 안개속을 뚫고 열반당으로 향하는 심정은 붓다의 생애를 따라가는 마지막 여정으로 숭엄함보다는 애절함이 더하다. 지금껏 그림기행에서 살폈듯이 라즈가르(왕사성)를 떠난 붓다는 나란다를 거쳐 파트나, 그리고 갠지스강을 건너 바이샬리의 암바팔리 동산에 이르렀고 마침내 바이샬리 주변 벨루바마을에서 최후의 안거를 보냈다.(대반열반경) 그리고 그 길로 쿠시나가르에 이르기전 파질나가르( Fazilnagar)마을에서 춘다(Chunda)의 공양을 받고는 심한 통증으로 한층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실은 붓다의 열반 예언이 일찍이 있지 않았던가. 하여 붓다는 아난다에게 “오늘 아침 금세공 춘다의 집에서 공양한 것이 마지막이 되었으니, 오늘밤 내가 입적 하는 것에 대해 춘다가 슬퍼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는 정당한 공양의 진심어린 배려로 읽힌다. 마침내 때가 되자 붓다는 모든 제자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모든 현상은 변한다. (따라서)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이 위대한 깨달음의 성인. 그의 죽음은 참으로 담담하고 어찌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다. 재림의 기약이나 미래의 예언도 없이 구도자로서 최선을 다해 살고 조용히 가신 것이다. 또한 불가의 관행이 될까 우려해 “출가 수행승은 일절 장례에 상관 말라”는 유지는 일생을 걸사(乞士)로 살았던 참된 구도자의 자세를 살펴보게 한다. 한때 나는 어리석게도 지나온 이 머나먼 여정을 차로 달려도 어려운데 어찌 붓다가 걸어가셨을까 의문이 되어 한 선학께 일렀다. “며칠, 혹은 몇 달을 걸어야하는 이 험난한 길을 붓다께서 어찌 걸어가셨을까요.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교통수단인 우마차를 이용하거나 코끼리, 낙타 등을 이용하지 않았을까요.” 이에 돌아오는 화답은 내 무지(無知)에 대한 통렬한 질타였다.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라’고 가르치는 붓다께서 무엇이 다급하였겠고 또 편리와 편함을 위해 동물 등에 올라탔을까요. 평생 걸사정신(乞士精神)으로 살아가신 자비의 구도자임을 떠올려 봄직이 어떠실지…”
이 부끄러운 일이 있은 후 참회로 맞이하는 오늘의 열반당. 사라나무 한 쌍이 일주문을 이룬 곳으로 일행은 따라 들어선다. 6.1m에 이른다는 거대한 금빛 와불이 열반상으로 모셔진 주변엔 티베트, 스리랑카, 일본 승려와 신도들이 모두 참배하고 있다. 살펴보니 기단부엔 슬픔에 젖은 말리부인(말리카)과 제자 아난다의 형상, 그리고 중앙에는 열반상을 제작했다는 기록상의 하리발라 스님상이 새겨져있다. 5세기경에 조성된 열반상은 모래와 진흙으로 이겨 형상을 만든 다음 금색을 입힌 것이다. 함께한 순례객을 마주하는 열반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지극한 참배객의 기도속에서 그 날의 영혼, 그 애절한 숨결들이 피어 오르는 것만 같다. 진정으로 붓다가 걸어간 ‘깨침’과 ‘자비’의 길은 손바닥의 안팎과 같고 나는 새의 두 날개와 같아 ‘진리는 곧 실천속에 있다’는 현실 바탕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그리하여 인류의 성인, 대우주의 자유인, 그리고 모든 생명의 대 보살로 우리 곁에 와 계심이여. 열반당을 나와서는 인근의 마타쿠아르 사원에서 젊은 날의 고타마 싯다르타상을 배관하고 이어 조금 떨어진 다비장으로 향했다. 흙벽돌로 쌓인 다비장은 라마브하르(Ramabhar) 스투파로 거대한 유적인데 꼭대기에 오르자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또 주변엔 수많은 망고나무가 에워싸 마치 이곳은 동산이 된 느낌이다. 스투파뒤란의 인근 사탕수수밭을 헤치고 둔덕을 따라가자 흰강이 드러났다. 그 옛날 붓다께서 건넜다는 히라냐바티강이 옛 사연을 안고 흐를뿐 목가적인 풍경도 다비장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스투파 주변에서 일행들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고 홀로 촛불을 밝힌 티베트 스님에게 도리어 나그네의 눈길이 간다. 한때 한국의 다비장을 찾아 붓을 들었던 나와 저 수행자와는 오늘 어떻게 다르고 같은 심정일까. 마음에 불을 밝히는 일은 오롯이 스스로를 의지하는 일, 그리하여 게으르지 않게 쉼없이 정진하는 일. 따라서 산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에 대한 지속이며 실천임을 다시 깨닫는다. 새해, 새날의 서원으로 자리 잡는다.
글/사진: 이호신
|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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