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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계단과 붓다의 효성 - 상카샤
 
 
하늘 계단과 붓다의 효성(오늘의 ‘삼계보도’를 그리며) 중생구제의 길로 이어진 효심
어머니는 / 눈물로/ 진주(眞珠)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중략)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정한모의 ‘어머니’중에서)
삼라의 빛(태양)이 되고 인류의 보석(진주)으로 추앙받는 붓다에게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불모(佛母) 마야부인은 왕궁이 아닌 룸비니 숲길에서 아들 싯다르타를 낳고 7일만에 이승을 하직했으니, 그 어머니의 영혼은 천상에서 결코 한시인들 편한 날이 없었을 것이다. 생모를 생각하며 외롭게 자라야 했을 아들을 떠올릴 적마다 눈물겨웁고, 그 아들이 마침내 붓다가 되었음에 벅찬 자랑은 온통 그리움으로 물결쳤으리라.
어머니는 그 아들이 보고 싶었다. 아니 세존이 되신 존상과 말씀을 듣고도 싶었다. 이에 붓다는 마땅히 어머니의 영혼을 위무(慰撫)함이 자비의 보살행이요, 불심(佛心)이 곧 모심(母心)임을 천안(天眼)으로 깨닫고 천상(도리천)에 오른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인도 불교유적지에서 자주 살펴지는 ‘삼계보도(三階寶道)’ 부조(浮彫)로서 붓다가 도리천에 올라 어머니 마야부인을 친견, 설법한 후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 하강의 땅이 오늘 찾은 상카시아(sankasya)지역으로 델리 동남쪽 파그나(pakhna)역으로부터 11km떨어진 곳으로 붓다의 8대 성지로 불린다.
성지의 흔적이라고는 부러진 아쇼카대왕 때의 석주와 작은 사당, 그리고 벽돌로 쌓은 담장과 그 속 계단을 오른 예불당은 이제 힌두사원으로 초라하게 살펴졌다. 하지만 일행은 현지의 인도 스님들과 함께 향을 사르고 탑돌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누구든 눈앞의 현상을 떠나 붓다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고,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까닭이 간절하였으므로.
인도를 다녀온 중국의 법현(法顯)스님에 의하면 “붓다께서 도리천상으로부터 동쪽으로 향해 내려오셨다. 그 길을 붓다는 신족통으로 3도(道)의 보계(寶階)를 만들어 칠보(七寶)의 계단 위로 내려오셨다. 범천왕(梵天王)은 백은(白銀)의 계단을 만들어 우측에서 흰 불자(拂子)를 손에 쥐었고, 제석천(帝釋天)은 자금(紫金 ; 수정)계단을 만들어 좌측에서 칠보의 일산(日傘)을 들고 내려오는데, 모든 하늘 천신들은 무수히 붓다를 따랐다.
위의 내용은 오늘날 아쇼카석주 옆 작은 사당의 부조 작품속에서도 보인다. 예전 신라 때의 혜초(慧超)스님은 “탑 왼쪽은 금으로, 오른쪽은 은으로 장식하고 가운데는 유리를 박았다. 붓다는 가운데로, 범왕은 왼쪽 길에, 제석은 오른쪽 계단에서 붓다를 모시고 내려 온 곳이 바로 이곳이라 탑을 세웠는데 절과 스님이 상주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라며 725년 이곳을 방문한 후 <왕오천축국전>에 당시의 현장 기록을 남겼다.
이와 같은 기록에 의해 성지가 된 상카시아는 현재 매우 빈촌이요, 쓸쓸한 변방으로 남아있다. 헐벗고 가난한 이웃들의 눈망울이 성지순례의 일행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께서 상카시아로 내려오시던 날, 수많은 중생들이 모여 합장하자 땅위로부터 세 갈래의 길, 즉 삼계보도가 솟아올라 하늘까지 닿았다는 ‘하늘 계단’. 그 칠보계단으로 내려오신 붓다는 다시 중생구제의 길로 들어섰다 하니 그 계단은 여전히 가난한 마을에서 하늘로 닿아 있음이리라.
나는 고민되었다. 옛 사람이 아닌 오늘의 작가가 굳이 경전기록에만 의지한 채 ‘삼계보도’를 그릴 필요가 있겠는가를. 관계 자료와 도판들을 살펴보니 모두가 조금씩 다르고 표현 내용도 참으로 다양한게 아닌가.
비로소 나는 용기를 내었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시대에 맞는 형식을 갖추지 못하면 낡은 가치요, 새 형식이라도 내용을 망각한 양식은 의미 없음을 새삼 떠올렸다.
우리 옛그림속에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절로도해도(折蘆渡海圖)’는 달마가 갈대를 타고 물위를 걷는 모습인데 완전히 조선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염불서승도(念佛西昇圖)’에서는 우리 스님의 뒷모습을, 그리고 ‘남해관음도(南海觀音圖)’는 마치 모자(母子)가 나들이 나온 한국인의 얼굴로 바꾸어 놓아 친근감이 더하다.
한편 근대에 와서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은 성화로서 ‘예수의 일대기’(1951년)를 제작했는데, 조선의 예수로 모델을 설정하고 주변 배경 또한 조선시대의 풍경으로 묘사하여 큰 감동을 자아냈지 않은가.
생각이 이에 미치자 후학으로서 하늘에 닿은 붓다의 효심이 이제 중생구제를 위해 하강하는바, 이를 맞이하는 중생의 모습은 오늘의 인물로 설정함이 마땅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함께한 일행과 주변사람, 그리고 인도 스님들의 기원을 삼계보도 양쪽으로 설정하고 황금색 계단을 내려오는 붓다의 이미지는 수년 전 절집에서 구한 법륜이 새겨진 와당으로 탁본한 후 낙관하였다.
그림의 됨됨이를 떠나 나는 극진한 붓다의 효성을 기리는 불심(佛心)과 이를 찬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삼계보도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신라 경덕왕때의 김대성(金大城)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佛國寺)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石窟庵)을 지어 봉양했다”는 지극함을 떠올리고는 이날토록 늙은 어머니의 눈물을 진주로 만들지 못하는 자신이 오늘 따라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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