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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성지 안내
 
 
  - 바이샬리/ 베샬리
 
붓다의 뒷모습과 어린 천사들(바이살리의 빛과 바람속에서)
 
 
우주의 질서·대자연에 순응한 진리
무릇 고유한 것은 아름답다.
바이샬리


더구나 자연에 의지한 생활환경이 공생(共生)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삶은 짙은 그리움을 낳는다. 인도의 여정 속에서 수많은 비애와 안타까움, 그 빈곤과 질병의 현장이었던 역, 정거장, 시장과 도심거리에 비해 농촌의 삶은 그래도 안심이 된다. 간디는 말한다. “촌락이 망하면 인도 또한 망하게 된다.
그 때 인도는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내가 반대하는 것은 기계 그 자체가 아니라 기계에 대한 광신이다. 그것은 이른바 노동을 절약하게 하는 기계에 대한 광신이다. 사람들이 계속 ‘노동을 절약’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은 일하지 못하고 큰 길에 버려져 굶어 죽게 될 것이다… 국토 상에 인구압박이 큰 나라의 경제와 문명은 그런 압박이 가장 작은 나라 경제와 문명과는 다른 것이 정상이다.
인구가 듬성듬성한 아메리카는 기계를 필요로 할지 모르지만 인도는 전혀 기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백만, 수천만의 할 일이 없는 노동집단이 있는 곳에 노동을 절약할 기계를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간디평전> p333~335 곽영두 옮김) 문명사회를 꿈꾸는 시대상황에 비해 간디의 발언은 지나칠지 모르지만, 사실 문명의 가속화는 삶의 ‘발전’이기보다 ‘변화’로 해석함이 마땅하다. 그 부작용을 떠올릴 때 사실 행복지수는 미지수이기 때문.
바이살리 아쇼카석주와 스투파를 지나 연못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자 한적한 농가로 접어든다. 그런데 지금껏 만난 어느 마을 보다도 정겨운 풍광이 펼쳐지니 인도 농가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즉 야자수와 망고나무로 둘린 마을 정경은 아득한 인류의 고향처럼 느껴지는데 소, 염소, 양, 닭들이 마당에 오종종하고 흙벽돌과 나무로 지은 가옥들이 너무도 소박하다.
또 동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알이든 닭장은 높이 매달아 두었는데, 익히 아프리카 여행 때 보았던 것과 유사하다. 한편으로 쇠똥 땔감과 짚더미주변, 잿불에 옹기종기 모여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얼비치는 얼굴들. 흙과 빛, 그 바람속에 익어온 모습들이다. 고백하건데 나의 부족한 붓끝과 필설로서는 마을의 정경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해 주저되는 시간, 바람결에 들려오는 한 영혼의 목소리가 있었으니….
아난다야, 나는 등창이 났는지 등허리가 아프구나, 여기서 잠시 쉬어가는 것이 어떻겠는냐.” 바이살리 근교 벨루바(Beluva)마을에서 마지막 안거(安居)를 지낸 붓다께서 열반지(쿠시나가르)로 가던 도중 이곳에 머물며 하신 말씀(대반열반경)이다. 그리고 바마세나 카팔라라 언덕에 이르러 힘든 몸을 일으켜 성을 돌아보시고 웃으시며 “이것이 내가 이 성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다.
이제 떠나면 이 몸으로서는 다시 이 성으로 오지 못할 것이다” 하시니 열반을 앞둔 붓다의 예언이었다. 이 위대한 인간 붓다의 마지막 뒷모습을 따라가는 여정 속에 마을을 빠져나오자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나무. 그 나무의 뿌리를 감싸주고 있는 자그마한 동산으로 올라갔다. 마치 우리네의 정자목, 당산나무 같은 실감은 노거수 허리에 붉은 천을 감아놓은 것에서 뭉클한 친화를 느끼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붓다가 이 길을 지나가다가 이 나무그늘 아래 잠시 머물며 쉬어가는 광경은 우리 영화 ‘서편제’의 당산 목에서 이별하는 장면이 떠오르며 들녘을 이윽히 바라보는 눈길. 푸른 밭으로 난 길을 따라 아스라이 펼쳐지는 야자수 숲을 응시하며 우주의 질서와 대자연의 뜻에 순응하는 뒷모습이 영상처럼 펼쳐진다. 기록상에 의하면 붓다가 바이살리를 최초로 방문한 것은 기원전 585년(전법 5년), 기근과 전염병으로 위기에 빠진 이곳 밧지족들의 요청을 받아 머물렀다.
이때 붓다는 밤낮 이레동안 마을을 돌며 백성을 구제하는 경을 설하였다. 그리고 붓다가 이곳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은 기원전 545년(전법45년), 마지막 안거를 위해 머물렀다고 전한다. 이때 팔순 노구의 붓다가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회복한 후 3개월 후 쿠시나가라로 가서 열반할 것을 천명한다. 아난다야, 나는 이제 여든살의 노인, 늙고 쇠하였구나.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 간신히 굴러가듯 나 또한 간신히 굴러가고 있느니라. 아난다야, 그대들은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자기자신에게 귀의하라. 그리고 법을 등불삼고 그 법에 귀의하라. 그 밖의 무엇에도 의지하지 말라”고 설파하였다. 이 의미 깊은 붓다의 길을 따라 걷노라니 어느새 농가가 사라지고 끝없는 지평의 푸른 밭이 펼쳐진다. 그리고 노오란 겨자꽃이 흐드러지게 핀 풍광은 마치 제주의 땅과 유채꽃 길처럼 아름다운 들판이다.
그 꽃길을 끊임없이 따라오는 아이들. 볼펜과 루피를 달라고 조르는데, 순례객중 늘 후미에 처지는 나에게 벌떼처럼 달라든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꼭 무엇을 얻기 보다는 낮선 이방인들을 본 아이들이 재미와 호기심으로 심심하던 차에 우리 뒷꽁무니를 따라오는 것이다.
내가 뛰면 아이들도 뛰고 내가 걸으면 그들도 천천히 걸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따라온다. 청명한 하늘, 산들바람이 옷깃을 스치는데 어린천사들과 함께 걷는 이 길이 혹 붓다가 걸어간 길은 아니었을까. 열반으로 가는 꽃길이 정녕 이처럼 아름답게 자연의 축복 속에서 이어졌을 것이라는 상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글: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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