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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과 교화 꽃피운 ‘실천’의 무대 - 슈라바스티
 
 
허공에 나투신 천불이여(사위성 마을을 지나며) 공양과 교화 꽃피운 ‘실천’의 무대
붓다의 위대성은 사실 깨침을 나눌 수 있는 실천의 장(場)을 함께 일구었다는 점에 있는 지도 모른다. 
당시 라즈기르(왕사성), 죽림정사에 머물고 있던 붓다에게 수닷타(Sudatta)장자가 찾아와 쉬라바스티(Sravasti), 즉 사위성(舍衛城)으로 와 주실 것을 청하자 그의 뜻을 존중, 수락해준 까닭에. 그 수닷타로 인해 마침내 기원정사(祇園精舍)가 건립되었다는 사위성을 찾아가는 길은 신화와 전설 같은, 그리고 기적의 현장을 찾는 설렘으로 모두를 들뜨게 한다.
“우리 모두 스스로 신통력(神通力)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신통을 맞추면 원하는 대로 해가 뜨고 지게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붓다의 제자 중 가장 신통력이 영험했다는 목련존자(目連尊者)의 얘기를 들려주는 달공 조홍식 박사님. 팔순을 넘게 수행해 오신 박사님의 뜻은 마음먹기에 따라 천지간의 운행도 개개인의 내면세계로 달라지고 변화무쌍하다는 말씀.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가시적(可視的)이 아닌 것에 비해 그 옛날 붓다께서 친히 신통과 기적을 보이셨다는 사위성 길목의 어느 언덕. 현재 오라자드(Oraghad)라고 부르는 언덕은 발굴되지 않은 스투파 터인데 이곳에 오르면 즐비한 망고나무숲 위로 기원정사(서)와 왕사성 마을(북)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그 망고동산 위로 천개의 붓다상이 나투었다는 하늘 스크린의 무대는 실로 순례객의 상상을 자극한다.
기록상 만부득, 이교도의 지나친 침해와 정법수호를 위해 자비심을 바탕에 둔 붓다의 신통은 결코 과시가 아니었음이 곳곳에서 살펴진다.
여인의 유혹에 빠진 제자 아난다를 구하기 위한 계기로 <능엄경>을 설해야 했고, 챤다마나 라는 여인의 위장 모함(임신)으로 붓다의 위상이 흔들릴뻔 했던 일. 데바닷타와 앙굴리마라의 도전을 항복시켜야 했던 일이 있었으니 황무지를 일구기 위한 노력은 실로 많은 도전을 받았다.
사위성은 당시 북인도에서도 강력한 군주국가 코살라(Kosala)국의 수도로서 유물론적 사상과 자이나교가 성행하고 있어 불교의 토착화는 시련과 모험에 따른 새로운 비전이 요구되었다. 이로써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이 설해지는 등 많은 경전이 출전되었던바 이곳 사위성과 기원정사는 마침내 교화의 중심지로 발돋움 하게 된다.
‘천불화현(千佛化現).’
오라자드 언덕에서 동산지기가 드린 망고를 먹고 그 씨를 땅에 심어 순식간 에 피어오르게 하고, 붓다의 몸이 천상에 천불(千佛)로 나투어 기적을 보였다는 하늘은 오늘 그지없이 맑고 푸르다.
이 사건은 붓다의 생애 중 매우 중대한 이야기로 형상화 되었는데 초기 불교조각과 벽화로는 아잔타 석굴이 대표적이다. 그 천불의 전래는 한국의 가람으로 불어와 천불전(직지사 등)을 따로 모셨고, 최근 안성 도피안사 대웅전, 비구니회관 후불탱화도 천불로 장식했다. 모두가 다른 양식과 제작자의 솜씨에 따라 천불은 그야말로 천태만상. 그러자니 누군들 천불을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있으랴.
따라서 붓을 든 나그네는 돌연 천불화현의 무대가 된 허공에서 구름을 불러 모아본다. 그리고 갖가지 형상으로 천불의 이미지를 붓질해 본다. 하긴 누가 붓다를 보았다 하는가. “나를 보려거든 진리를 보아라” 하였거늘.
결국 나의 만용은 제주 영실 뒷산의 오백나한봉, 영암 월출산의 부처바위를 떠올렸고, 실제 금강산의 만물상과 바다에 뜬 칠성암, 천불암을 그린 겸재(謙齋)정선(1676~1759)의 인물형태 이미지 구성에 의지하였다. 하긴 <화엄경(華嚴經)>의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에서 사방팔방으로 거주하고 있는 보살을 열거하는 중 법기(法起) 보살이 머문다는 바다 속 금강산이 봉래산(蓬萊山)이라고 확신(최완수)했던 선인들의 생각 또한 오늘 따라 간절해진 까닭에.
이제 사위성 가는 길목, 마을로 들어서자 온통 지뢰밭(?)이다. 오늘은 마른 쇠똥이아니라 방금 싸 놓은 쇠똥이 지천으로 널렸는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거대한 쇠똥은 햇살에 반질반질 윤기마저 더하니 마치 건강한 생명 자원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길섶에서의 충격. 검은 개가 눈이 뒤집힌 채 이를 악다물고 죽은채 버려져 있다. 또 어젯 쯤 화장을 치루었는가. 타다 남은 볏단위에 버려진 대나무 들것과 시들은 원색의 꽃들. 그리고 흙으로 빚은 물단지 하나가 휑하니 뒹굴고 있다. 모였다가 흩어지는 구름처럼, 그렸다가 지우는 그림처럼 가없는 목숨이여.
마을을 지난 길은 쑥대밭 같은 황량한 벌판으로 이어지니 곳곳에서 발굴흔적이 눈에 띈다. 그 옛날 비구니 사찰터로 추정되는 동남문터 아래는 지표보다 낮은데 동행한 토목공학 전문가는 “이곳 토양이 연약한 지반이라 높은 건축은 무리였을 것이고, 침강, 침하의 우려로 지질학상 표면보다 낮게 건축되었을 것” 이라는 설명인데 둘러보니 구덩이가 파인 집터가 즐비하다.
한편 완만한 둔덕과 지평을 이룬 벌판위로 우뚝솟은 나무들은 거의 보리수였는데 다가설 수록 거대한 위용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화첩을 펼쳤다.
결국 멀어진 일행을 부지런히 따라가자 모두들 어느 벽돌 건축물에 앉아 야외 강의를 듣고 있다. 내용인즉 기원정사를 건립한 수닷타장자의 원대한 불사를 기리는 사연이다.
붓다께 정사를 지어 헌공하려는 지극한 정성은 “만일 그 동산을 사려거든 금으로 그 동산을 모조리 덮어보라”는 주인의 말에 따지거나 매달리지 않고 그대로 행했다는 실천의지. 이에 감동한 주인이 마침내 조건없이 희사한 아름다운 사연. 정녕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려니.
그런데 지금 앉은 건축물이 바로 발굴에 의해 수닷타의 집터로 알려진 곳이다. 또 이곳에서 건너편 언덕 아래에 보이는 건축물은 한때 악마의 사자였던 앙굴리마라의 스투파라 한다. 그는 꾐에 빠져 100개의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로 만들고자 끝내는 어머니에게 마저 덤볐으나 갑자기 붓다가 출현, 설법하므로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는 사연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벗이여, 죽이려는 사람 앞에 미운 마음도 괴로운 마음도 일으키지 않을뿐더러, 그 죽이려는 사람을 향해 ‘네가 바로 부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보살의 마음이니라.”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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