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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강석굴 | |
석굴 사원은 산의 바위를 뚫어 인위적으로 동굴을 만들고 그곳에 불상을 안치하여 예배와 수행을 하던 곳으로 석실(石室), 굴원(窟院), 굴전(窟殿)이라고도 부른다. 그 축조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중국 당나라 때 인도를 여행했던 법현, 송운(宋雲), 현장등의 기행문에도 이미 나와 있다. 현재까지도 적지 않은 수의 석굴사원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바자(Bhaja)와 베드사(Bedsa) 지방의 석굴은 모두 기원전 175년 무렵에 처음 조성된 것이며 아울러 현재 전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석굴로 남아 있다. 또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에 이르는 수백년 동안 크고 작은 석굴 29곳이 끊임없이 굴착되었던 곳인데 특히 그곳에 그려진 벽화는 인도미술의 정화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인도 전역에 걸쳐 수십개의 석굴사원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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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강석굴 | | 중앙아시아 지방에서도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석굴이 많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쿠챠 지방의 키질(Kijil) 및 쿰트라, 투르판 지방의 무르특(Murtuk) 및 중국 감숙성 및 돈황의 천불동 같은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굴사원들이다. 그 가운데 키질석굴은 타림(Tarim)강 지류에 위치하였는데 서기 5,6세기부터 조영되어 현재 크고 작은 24개의 석굴이 있다. 이 석굴에도 역시 여러가지 화려하게 장엄된 벽화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돈황 천불동은 서기 365년 전진때에 개창된 이래 북위, 수, 당, 오대 및 송나라에 걸쳐 수백년 동안 점차적으로 증설된 석굴로서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 때에는 석굴수가 1,000곳을 넘었다고 한다. 후대에 비록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300여 석굴이 남아 있으며, 각 석굴마다에는 여러가지 벽화가 그려져 있어 불교예술의 보고로서도 매우 귀중한 곳이다. 또한 산서성 대동, 운강석굴은 북위시대 때 개창되어 수나라 때까지 조영된 곳이다. 하남성 용문 석굴은 이수(伊水)강의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 역시 불위 때 개창된 이래 동위, 북제, 수, 당나라 때까지 석굴 조영이 계속되었으며 특히 당나라 고종 및 측천무후 때 매우 번성했다. 이렇듯 인도와 중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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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강석굴 | | 서는 석굴사원이 매우 많이 조영되었음에 반해 한국, 일본에서는 자연환경 등으로 인하여 이렇다 할 조영의 예는 없다. 그러나 비록 인도, 중국에서와 같은 거대한 석굴사원은 아니지만 경주 토함산 석굴암은 돌을 깎아 집을 짓듯이 인공으로 축조한 석굴로 규모는 작으나 그 독특한 건축구조와 빼어난 조각은 불교문화권에서도 으뜸이다.
따라서 흔히 중국의 3대 불교 석굴을 말할 때 베이징 인근인 다퉁(大同)에 있는 윈강 석굴, 뤄양(洛陽)의 룽먼 석굴, 둔황(敦煌)의 막고굴 등을 꼽는다. 여기에 다시 5대 석굴을 말한다면 간쑤성(甘肅省) 톈수이(天水)의 마이지산 석굴과 황허강 유역의 빙링스 석굴을 더할 수 있다.
출처: 불교상식백과(불교시대사)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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