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
| |
|
|
|
|
|
|
| |
|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새벽바람 속에서 여행은 시작되고
|
 |
| 뭄바이의 새벽 | |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고, “세상에서 가장 멀고 어려운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오는 길인데 팔십 평생이 넘도록 아직 온전히 가슴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 어느 성직자의 겸허한 고백이 이순간 간단없이 가슴에 물결쳐 온다.
하지만 육신의 몸을 받아 영혼의 귀를 지닌다는 것이 어찌 귀하지 않을까. 끝없이 ‘열린문과 흐르는 길’의 도정에서 사람은 다시 태어나고 산고의 깨침을 얻으리라. 그 깨달음은 곧 진리를 발견하는 눈이다. 우리는 무명(無明)의 터널 속에서 그 빛을 찾아, 진리의 숲을 향해 떠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 길은 새로운 경험이다. 놀라움과 경외, 갈등과 고독을 자초하며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현상을 넘어선 본질 탐구다. 지구촌 인류애의 이웃으로, 오늘을 있게 한 과거의 역사와 종교, 예술과 삶의 나이테를 헤아리는 추체험의 재발견이다.
따라서 ‘인도로 가는 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여행자 자신의 지난 나날의 가감 없는 반추. 그 두려움 속,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나면서 자연 눈을 감는다. 그런데 왠 일인지 가슴속 밑바닥 희미한 곳에서 아련한 불빛이 치밀어 오른다. 알 수 없는 감회와 눈물이 끝내 북받친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이다.
엊저녁 인천공항을 떠나 밤새 타이뻬이, 하노이, 다카, 콜카터를 경유 인도땅 뭄바이에 내린 시간이 새벽 2시 25분(한국 시간은 5시 50분). 옛 수도승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오천축국(五天竺國)으로 명명한 인도를 몇 달에 걸쳐 걸어왔건만 아홉 시간이 채 못 되어 날아왔으니 이 무슨 신통력의 세상인가.
대합실에 걸린 간디의 모습에서 인도의 훈향이 느껴진다. 일행을 맞는 현지인이 꽃 목걸이를 걸어준다. 정다운 인사가 긴장을 풀어주며 싸늘한 대기속에 꽃내음이 감미롭다.
첫 경험은 늘 새로운 자극으로 고단함을 이겨낸다. 새벽 별이 떠 있는 뭄바이 시내 풍광이 한 눈에 들어와 화첩을 낀 손이 벌써 마려워 오고… 낡은 건물, 무너진 담장, 무질서한 간판이 희뿌옇게 드러나며 야자수와 뾰족한 첨탑 건물들이 검은 실루엣으로 얼비친다. 아니 어느 풍경은 성지가 되어 은하의 불빛아래 새벽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하지만 눈여겨 살펴보면 마치 연극무대 세트같이 황량하고 뒷골목처럼 음영이 깊다.
차가운 길거리에 널브러진 수많은 사람들. 꾸부리고, 껴앉고, 서로 기대고, 아예 자리
를 깔고 누운 이들이 차창밖에 연이어 드러난다. 보따리와 이부자리를 챙겨 터를 잡은 곳에 천막도 눈에 띄니 저들의 삶은 곤고한 저 자리에서 어제도 오늘도 숨쉬고 있었으리라.
비행시간 내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오려 애쓴 여행자의 소회가 다시 또 도리끼질 한다. 무명(無明)이다. 시차에 잘 적응치 못하는 탓에 새벽잠을 털고 숙소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뭄바이의 첫 인상은 음울한 감상속에 비껴 가는 끈끈한 바람결이다. 그러나 그 바람속에서도 검은 대지위로 여명은 밝아오고 동녘이 터져왔다.
델리에서 18시간 기차를 타고 달려왔다는 라전 싱(RAJAN SINGH, 26)은 델리대학을 졸업한 청년으로 이번 인도여정의 길라잡이다. 첫 인상이 준수한 외모와 순박함을 갖춘 탓에 더듬거리는 한국말에도 금방 친근감이 간다.
아침길, 인구 1500만 명이 모여산다는 뭄바이는 매우 부산하다. 거리에 잦은 영화간판은 헐리우드 못지 않게 영화 제작 열이 높다는 반증인데 즐비한 오토릭사, 소형택시는 하나 같이 검은색에 노란 지붕을 하고 있다.
 |
|
| 인도문 | | 백베이 해안을 끼고 소위 목걸이처럼 생겼다는 머린 드라이브 코스는 야자가로수와 함께 낭만적이고 반대편 광장에서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퍼레이드 준비에 열을 맞추고 있다. 독립기념일(1월26일)을 위해 한달 전부터 연습중이란다. 한국의 LG간판, 현대자동차가 반가운데 차는 버킹검궁전 같은 빅토리야역을 거쳐 시내를 경유, 타지마할 호텔 앞 광장 인도문에 이른다.
뭄바이란 포르투칼어로 ‘좋은 항구’이다. 이렇게 이름 붙인 사연은 남의 땅을 함부로 여긴 지배자의 논리가 깔려있다. 즉 서구세력이 맨 처음 인도에 진출했던 포르투칼 공주가 영국왕실로 시집가면서 결혼선물로 넘겨준 항구였다니 말이다. 이로써 뭄바이는 영국 동인도회사가 관할하게 된 이래 서해안 제1의 무역항 역할을 했다. 여기에 상징적이고도 기념적인 유물이 소위 ‘인도문(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이다.
이같은 비유는 백베이 해안마저 ‘공주의 목걸이’로 이야기되며 오늘날 관광 상품으로 회자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아라비아해를 향해 선 인도문은 영국왕(조지 5세)의 인도 방문을 기념해 1911년 건축한 것으로 식민지 시대에 잉태된 쓰라린 과거의 잔재요, 역사적 유물로 남아있다.
글/그림: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