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
| |
|
|
|
|
|
|
| |
|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하늘 연꽃이 피었습니다
거대한 바위에 나투신 부처님!
‘한마음으로 헤매는 이들에게는 복이 있나니.’ 현지 가이드의 불찰로 길을 잃은 것이 도리어 행운이 될 줄이야. 옛 남천축국(南天竺國)인 나시크(Nasik) 석굴 길목을 헤매다가 만난 곳이 고다바리(Godavari)강이었는데 소위 서부의 ‘바라나시’로 불리는 곳이다.

인도 중부를 횡단하는 고다바리강은 남서부 힌두인들이 경배를 위한 성소로 목욕과 빨래, 그리고 물소떼들로 야단스럽다. 강은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서 도피안(到彼岸)의 무대로 등장한다. 즉 당시 16명의 수행자들 중 이곳을 찾은 삥기야(Pingiya) 스님의 구도행은 참으로 눈물겹다. 즉 수행자들이 목숨을 건 구도의 길로 고다바리강 유역에서 500km의 장도에 올라 마침내 라자가하에서 부처를 친견했다. 그 후 삥기야 스님은 다시 불법을 전하기 위해 나시크로 그 먼길을 되돌아 온 것이다. 차를 돌려 시간여행을 떠나니 가슴에 차오르는 또 한 분의 수행자, 신라의 혜초스님. 1200년 전에 그가 남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그 위대한 유산이 떠오른다. 불교 성지를 찾아 걷고 걸어서 중천축을 섭렵한 혜초는 다시 3개월만에 이곳 남천축에 당도하는데 나시크를 둘러보고는 “왕을 비롯한 백성들이 불교를 매우 공경하고 사원과 승려도 많으며 대승과 소승불교가 함께 번성한다”고 적었다.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나는 편지를 봉하여 구름편에 보내려 하나 바람은 빨라 내 말 들으려고 돌아보지도 않네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해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 조차 오지 않으니 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날아가 소식 전하리
고독한 수행자는 인류와 함께 걷는다. 그의 구도행이 향수에 목말라 있을 때 그날의 달빛은 천축국과 서라벌을 이어주고 온전히 밝혀 주었으리라.
이튿날 아침 숙소에서 나시크석굴을 향해 달리자 피라밋 같은 산의 허리에 띠를 두른 듯한 석굴이 연이어 드러나니 판두레나(Pan dulena)산이다. 산을 오르다 내려보는 넓은 대지엔 아쇼카대왕의 산치탑을 그대로 흉내낸 건축이 녹지와 함께 드러난다. 그리고 그 길목에 피어난 ‘빨라스’라는 흰꽃이 유난히 눈길을 잡아끈다. 구불구불한 줄기들의 조형에 나뭇잎없이 꽃만 덩그라니 가지 끝에 피어남이여!
 |
|
| 나시크판두레나산에서 | | 꽃의 형태와 느낌이 꼭 수련 같은데 푸른 하늘 아래서 쳐다보니 마치 창공에 핀 흰 연꽃 같다. “그래 지금 하늘에 연꽃이 피었다. 누가 뭐래도 나그네의 심중에는….” 석굴은 거대한 암벽을 파고들어 조성한 대역사로서 절실한 구도의 성심으로 오로지 정으로만 쪼아낸 흔적이다. 어떻게 저 거대하고 단단한 암벽을 쪼아 낼 수 있었을까. 지붕과 기둥이 딸린 허(虛)의 공간으로, 또 암벽에서 부처를 나투게 할 수 있었을까.
스투파, 법륜상, 보리수 등은 초기불교의 상황인 기원전의 모습이고, 이후의 불상은 주로 불타가 깨달음을 얻은 뒤 설법하는 초전법륜상(初轉法輪像)이다. 이곳 석굴의 중심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돌기둥 내부의 석굴사원이다. 하지만 나의 흥미는 자연암반 지붕을 그대로 살려 파고 들어간 곳에 서술적으로 불상을 조각한 장면들이다.
불상은 거의 초전법륜상으로 이루어졌는데 한국의 자연석굴에서 볼 수 있는 친연성이 서려있다. 이와 같이 인도대륙에는 약 1천2백 개의 동굴사원이 있는데 데칸고원 일대에 1천개 정도로 밀집되어 있다니 유독 이곳에 바위산이 많은 탓이겠다.
현장에서 먹을 풀어 석굴의 신비와 장쾌함을 붓질하는데 하늘연꽃 뻘라스가 한들한들 땅에 먹그림자를 드리운다. 과거의 유산과 현실의 투영! 꽃은 생명으로, 석굴은 정과 망치를 든 옛사람의 영혼을 깨우며 나툰다.
여기 어느 곳엔가 혜초스님의 숨결이 남아있지 않을까. 한 구도자의 서원은 모두를 숙연케하고 끊임없이 순례객을 부르고 있다.
화첩을 덮고 둘러보니 석굴은 23개에 이르는데 관리소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다. 듣기로 지금은 승려보다는 오히려 힌두교도들이 참배하는데 그들은 사원 입구 바위 시바신상의 경배를 우선한단다. 흘러간 과거의 유산으로, 힌두교의 신앙 속에 자리잡은 불교 성지가 순례자들을 안타깝게 한다.
산을 내려오는데 ‘와바’라는 녹색과일을 파는 여인이 사리를 입고 쭈구리고 앉아 순례객을 부르는데 일행들이 과일을 자주 사는 덕택에 밑그림을 그리는 행운을 얻었다. 다시 산치탑을 모형으로 한 건축물이 눈에 띄나 이제는 불교사원이 아님을 분명히 알겠다. 하지만 신앙은 변해도 뛰어난 조형양식은 저렇듯 새 날에 또 쓰이는가 보다. 마치 고여서 썩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