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
| |
|
|
|
|
|
|
| |
|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경건한 삶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까?
모든 역사는 어둠에서 밝음으로 이행된다. 하루해가 저물어 하루가 적멸(寂滅)로

돌아가고, 해돋이로 다시 새날이 열린다. 어제의 참회가 적멸로 구원받고 일출의 풍경속에 삶의 서원이 다시 일어난다. ‘우~우~우~.’
대초원에 불어드는 바람소리에 깨어보니 광활한 초원의 대지에서 밝은 해가 막 솟아오르고 있다. 이 순간 모든 초목과 동물은 생기를 발하며 생명의 축복을 얻으리라. 그것은 마치 한 절대자의 지휘에 의해 자연 속 오케스트라가 일시에 연주를 시작하는 대합주, 대자연의 환상곡으로 깨어 나는 것 같았다.(‘동물의 왕국 세렝게티’에서)
3년 전 아프리카 여행 중 대초원에서 맞은 해돋이의 감회는 풍광이 빚어낸 천지의 장엄, 그 극치에 다름 아니었다.
풍경이란 나의 세계(지각)의 모습이 아니라 내 자신의 모습이다. 산다는 것은 풍경을 가진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바로 풍경을 잃어버리는 공포다. 풍경은 인간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는 드라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허만하,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본다는 것은 지각(知覺)의 인식을 넘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반추하는 거울이 된다는 사실.
숙소에서 새벽4시에 기상해 어둠길을 내달리니 일행은 잠을 털지 못하고 모두 침선(?)에 잠겨 있다. 다만 옆자리의 스님은 잠을 깨 차창을 보라고 연거푸 녹차를 권해 주신다.
“화가는 깨어나 있어야 한다. 이 어둠과 새벽의 여정을 당신은 누구보다 살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는가.” 하고 말씀하시는 눈빛이다.
어제 엘로라석굴에 이어 오늘은 아잔타 석굴 가는 길. 데칸고원을 가로지르는 새벽길은 내 삶의 테이프 눈금 위에서 우주와 통신하고 있다. 어둠속 회청색 하늘이 마침내 보라빛으로 물드니 어느새 여명이 밝아 오고 붉디붉은 해가 대지 위로 솟아오른다. 어제의 적멸에서 오늘의 생명으로 살아 오르는 새 역사의 웅비, 거룩한 장엄, 오 진리의 빛이여!
결국 건너편 좌석의 동행을 깨워 저 장엄을 함께 나누자고 채근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이 환희에 차 오르니 비로소 풍경은 내 것이 되었다. 새날을 일깨우는 여정, 어제의 회한을 접고 다시 일구는 마음밭이다. 즉 밤은 사색을 가져오지만 아침은 실천의 장(場)으로 현실의 지평을 활짝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대평원엔 열을 잇는 해바라기, 드문드문 볏가리들이 지나가고 초목과 바위산, 가옥구조가 모두 다른 초가와 판자집들이 드러난다. 황량한 초원 우물에서 도르레로 물을 길어 올리는 여인들과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 원색의 사리를 입은 젊은 아낙이 새날을 여는 주인공이다. 이 순간, 이 경건한 삶의 모습보다 아름다운 풍경은 없다. 새로운 기도는 없다. 누군가 “저들은 오직 초목생활로 최소한의 자연과 자원을 활용, 조용히 왔다 간다.”고 했을 때 내 막힌 가슴에도 바람 소리가 들려왔음을…
한때 이곳 데칸고원은 무갈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아우랑제브(Auraangzeb)에 의해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라는 지명을 얻게 된 곳이다. 그 곳에 산재한 아잔타 석굴사원은 인디야드리 구릉의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익히 많은 사진자료에 밝혀져 있는 바 아잔타는 말굽모양으로 구부러진 와골라천(川) 뒤로 성벽같은 지형에 30개 석굴이 조성된 사원이다.
먼저 전경을 살피기 위해 전망대에 이르니 잡상인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화첩을 펼치기조차 난감하다. 또 바람 때문에 먹물에 모래가 끼얹어 붓질을 더해 가기가 난감하다. 더디게 머물 내 처지를 간파한 일행들은 벌써 석굴 아래로 내려갔고 홀로 남은 나는 말이 통하지 않은 꼬마 잡상인들과 실랑이를 벌려야만 했다.
내 급박한 상황은 기념품이나 사진 자료가 아니라 저 웅자(雄姿)한 석굴의 풍경을 담을 수 있게 석굴 주변을 안내해 줄 이가 필요한 경우였다. 이에 손짓 발짓하는 내 뜻을 살핀 한 노인이 아이들을 물리고 앞서서 인도하니 ‘부디’라는 60대 노인이다. 내리막길에서 마주친 인도 청년, 처녀들의 눈부신 사리옷이 발목을 잡아 노인에게 눈짓하자 그들을 세워 모델로 스케치와 기념사진까지 찍게 배려해 주는게 아닌가.
작은 키에 깡마른 얼굴, 그러나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알아듣지도 못하는 힌두어로 열심히 설명해 주는 부디씨는 오늘 내게 하늘이 내려준 대보살이다. 억겁의 인연이다.
그는 마치 내 생각을 꿰뚫고 있는 듯 원했던 장소로 나를 이끄는데 사진으로서는 한눈에 밝혀질 수 없는 좌측 마지막 석굴의 벼랑, 즉 물굽이가 시작되는 폭포수 위로 안내하니 지형의 근원, 산세, 석굴의 이미지가 한 눈에 펼쳐진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런 행운이 아닌가. 때마침 그의 손녀들이 나타나 친구들과 맨발로 벼랑위를 뛰고 날아다니니 요정들이 더불어 아잔타를 그리기 위한 내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듯 착각에 빠진다.
위에서 보면 어느 항성의 표면 같고, 다가서 보면 수 억 년 용암이 녹아 수직 터널로 빚어진 기암 계곡은 스스로 수많은 소(沼)를 이루고 또 폭포가 되어서 아잔타의 위용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글/그림: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