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관리자
인도 불교 성지순례-인도 기행
 
 
  강보에 잠든 아이
 
강보에 잠든 아이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거리의 물결은 생명의 만다라


“지구촌 마지막 여행지가 바로 인도지요. 돌고 돌아서 다시 가보고픈 곳이 인도 땅이랍니다.” 한 인생선배의 말이 떠오를 때 쯤 차창을 보던 스님은 “이번이 벌써 일곱 번째 인도여행이건만 삶의 감동은 여전하군요, 세상의 어느 나라를 다녀 봐도 이처럼 생명이 충만하고 또 변화가 많은 곳을 찾기는 어려워요” 하신다.


이제 버스에서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부사발역으로 가는 길. 거리는 온통 뭇 생명으로 가득한 만다라의 세계가 펼쳐진다.

사람과 더불어 발 달린 짐승들은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 소, 말, 개, 돼지, 염소, 양, 닭들이 난장을 치고, 차량은 동물들을 피해가느라 연신 크락숀 소리와 흙먼지로 뒤범벅이다. 또 건물과 차량, 우마차와 사람옷이 천태만상의 형태와 빛깔로 드러나니 가히 거리의 물결은 지상의 파노라마다.

침대칸 열차에 올라 목적지인 보팔역까지 7시간을 가야하는 여정에 돌입했는데 영하 5도의 날씨에 수 십 명이 얼어죽었다고 현지 신문이 전한다. 반대로 지금 한국에 돌아와 붓을 든 이 순간(2003. 6. 5)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3주 째 1200명 정도가 사망했다는 인도 소식이 우울하게 들려온다.

이처럼 인도의 지리, 역사는 다양성의 문화로 공존한다. 수 백 개의 방언과 열여섯개의 공식언어,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시크교, 기독교, 회교 등이 존재하는 종교의 천국이다. 또한 다양한 피부색의 종족이 모여 살며 풍습도 가지가지인 풍토는 자연 지리와 기후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겠다.

깊은 밤 대륙을 횡단하는 고단함과 지루함은 옆자리 동행인 칠순할머니의 인생드라마에서 길동무로 이어간다. 한시도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영감을 떼어놓고 여생의 소원을 위해 한달간 산사기도를 다녀오겠다고 할아버지를 속였다는 할머니의 거짓말은 참으로 지혜로우시다.

“거시기 이 화백, 내가 혹 길을 잃어버리면 무애라고 남들에게 말해야 살 수 있을 텐가?” “네, 할머니 나마스테(안녕하세요) 바차-오 바차-오(도와 주세요) 하시지요”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쪽지를 훔쳐보고 할머니를 안심시키자 할머니는 그새 눈감고 두 손 모은 채 “나마스테, 바차-오 바차-오”를 염불하듯 반복하고 또 되뇌이는게 아닌가. 하긴 할머니에게 지금 이 보다 더 간절한 주문은 없을 성싶다.

깜깜 밤길속에서 마침내 보팔역에 도착하자 싸늘한 냉기가 엄습하는데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서로 엉켜 이불을 포개며 뒹굴고 있다. 숲으로 가지 않고 사바세계에 머무는 눈빛만 빛나는 목숨들. 저들은 진정 걸인인가, 수행자인가.

한편 마차 주변이 웅성거려 살펴보자 어느 주검이 들것에 실려가고 있다. 조금 전 뉴스에서 동사(凍死)한 현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밤새 저 냉한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자성(自性)을 찾고 뭇별을 찬탄하려는 사람들의 용맹인가. 아니면 현실의 패배자인가. 여행자의 의문은 등골이 오싹하고 인륜(人倫)은 애린(愛隣)의 슬픔으로 잦아든다.

강보에 싸인 아이
자신 키만큼 쌓은 여행용 가방을 붉은 타올로 감싼 머리에 이고서 휘청거리며 역 계단을 오르는 흰수염의 늙은이. 가방을 먼저차지해 옮겨 주겠다고 밀치며 달려드는 청년의 혈기속에 인도의 삶이 흐른다. 직시해야할 현실의 뜨거운 풍경이 일어선다.
집을 떠나오기 전 인도에 관한 참고서적, 여행기를 접했는데 다행이도 신간인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옥순)은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인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순진하지도 대등하지도 않다. 나는 19세기 제국주의자 영국에게 감염된 우리의 ‘인도 보기’를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명명한다. 이미지는 모름지기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인식의 양태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인도는 부정해야할 ‘동양’이거나 지우고픈 아픈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이 구성한 인도, 인도에 대한 영국의 식민담론을 비판 없이 차용하고 복제하여 우리보다 발전하지 못한 인도를 우리의 ‘동양’과 타자로 바라보면서 한때 막강한 힘을 가졌던 대영제국의 공범이 되어 심리적 보상을 얻는 것이다.”

이 무서운 지적은 잘 나가는 베스트 작가와 인도 여행기를 단숨에 벼랑으로 몰아 지상으로 번졌고, 나 또한 그녀의 애정 어린 인도 읽기에 공감하며 내심 마음의 준비를 다졌었다. “그렇지, 딴의 자료에 의지하지 말고 내 시각으로 살피자. 화폭을 거울 삼아 굴절 없이 역사의 흔적과 현실을 반영하자.”

그러나 나 또한 나그네의 소회와 감상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때론 개인의 주관과 인류의 보편은 서로 망각과 감회의 강물을 바라보고 있음을. 하여 여행자는 지금 스산한 풍경에 젖어있다. 내 삶의 모순을 망각하고 인도라는 강물속의 조약돌을 보며 그곳에 손을 담그고 있다. 여기에서 ‘현상’이 곧 ‘본질’이라는 ‘직관’이 성립하고, ‘세계일화(世界一花)’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이 단지 합리화나 동정의 변은 아닌 것이다. 서글픔은 모름지기 웃음을 앗아가므로.

열차에서 내려 짐을 찾을 때까지 대합실에서 서성이는데 각색 문양과 빛깔로 빚은 여인들의 의상이 자꾸만 시선을 끈다. 어색한 눈맞춤에 가벼운 인사가 마침내 “나마스테”로 통한다. 그 중 아기를 강보에 싸안은 아낙은 내 눈길을 이해했는지 다가서자 잠자는 아기를 보여주며 웃음 짓는다. 눈썹사이에 검은 점이 또렷한 아기의 무구한 잠. 인도의 미래를 꿈꾸는 새 생명, 희망의 숨결! 거리의 물결은 다시 흐르고 만다라의 세계가 이어진다.


글/그림: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1
 
 
     
 
주인장 연락처 E-Mail : namo80@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