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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참회가 사랑의 불탑을 세웠네
유산 아닌 법신의 생명으로 넘실
인도의 전륜성왕(轉輪聖王: 천하를 통일한 왕중왕) 으로 불리는 아쇼카대왕(기원전 269~232년)의 이름을 딴 아쇼카호텔에서 묵은 이튿날 새벽, 아름다운 보팔의 호수(보스팔레이크)를 지나자 여명이 밝아온다. 밤이슬과 물안개가 청신한 대지의 기운으로 사그라드는 시간, 들녘을 가로지르며 동터 오르는 장관은 산치 언덕으로 인하여 더욱 숭엄하다. 마치 누군가 저 유장한 언덕을 배경으로 해돋이를 연출, 느끼게 하는 영상처럼. 그 영상을 바라보며 듣는 아쇼카대왕의 참회와 사랑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각본으로서도 대로망이다.
때는 기원전 3세기, 아쇼카 태자는 이곳 산치의 인접마을(비데하)의 한 처녀(데비)를 사랑하였고 혼인을 약속했으나 끊임없는 전쟁을 치루느라 그녀를 잊고 지냈다. 불행한 이 여인은 홀로 아들과 딸을 낳아 기르다가 아쇼카가 전쟁 끝에 통일위업을 이루자 마침내 아들에게 예전에 함께 나누었던 신표를 주어 아버지를 찾게 만든다. 그 동안 대왕은 전쟁의 참상을 통해 무고한 살생에 대한 통렬한 참회로써 전쟁을 영원히 포기하고 불교에 귀의한 터라 아들과의 만남은 곧 망각했던 옛 여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인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접고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녀의 유해와 유지를 받들어 불탑을 쌓은 것이 오늘의 산치탑이다. 그 탑은 이천수백년의 성상을 견디며 불교 탑파의 시원이 되고 마침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어느새 푸른 초원에 비치는 햇살, 산치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대지와 하늘의 교합속에 기원의 탑이 우뚝하니 우주의 파장으로 넘실댄다. 쇠똥을 말리는 여인, 등교길의 아이들을 뒤로하고 산치탑에 이르자 대탑(제1스투파)은 상상 의외로 장중, 거대하고 부속조각은 다양한 형태에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대탑문에 새겨진 조각은 B.C 2세기에서 A.D 1세기에 걸쳐 조성된 조각으로 부처님 일대기 및 전생담, 아쇼카왕의 행적을 표현한 것으로 그 상징과 구성이 매우 서사적이다. 대탑의 사방문은 오늘날 가람 배치에 있어 일주문의 형식을 낳게한 모태요, 스투파는 밥사발을 엎어놓은 것 같은 복발(覆鉢)형태이다.
밀림속에 숨어있던 이 곳 산치스투파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18년 영국의 테일러 장군에 의해서였고, 그 후 1912년 죤 마샬경의 지휘하에 인도 고고학국에서 본격적으로 발굴되었는데 2차에 걸쳐 복원한 모습이 오늘의 산치탑이다. 대탑의 위용은 기원전 3세기의 유적을 보여준다는 역사성의 깊이와 높이 16m, 직경 37m의 웅장한 규모에 있다. 벽돌로 쌓아올린 탑 주변에는 난간을 둘러 참배객들이 돌며 예불할 수 있게 하였으니 같은 형식으로 불타버린 신라의 황룡사지 9층 목탑과 21세기의 진천 보탑사가 떠오른다. 모방은 국경을 넘어 기능과 실용의 의미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대탑 문에는 전생사(前生事)를 얘기한 본생담(本生譚)을 주제로 한 본생도(本生圖)
가 부조되어 앞뒤로 가득 장식되어 있다. 불타생애를 설화의 진행에 따라 연속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한 장면에 시공을 초월한 사실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각의 관념화가 필요하다. 이것을 서양화법의 투시법으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불경의 내용을 도설적으로 표현한 변상도(變相圖)로 이해하며 감상해야 하는 것이다.(최완수)
이제 한국의 순례객들이 대탑 앞에 자리를 잡고 목탁소리와 함께 스님 주제로 참배에 들어가자 탑은 과거의 유산이 아닌 법신(法身)의 생명으로 나투고, 아쇼카 대왕과 데비 여인을 부르는 초혼(招魂)의 불꽃이 이른 아침 쌀쌀한 날씨에 뜨겁게 타오른다.
아쇼카여, 아쇼카대왕이여 당신께서는 이 푸르른 산치 언덕위에 불국토(佛國土)의 이상을 펼쳤었지요. 사랑하는 여인 데비(Devi)와의 낭만이 서린 이곳 산치언덕위에 불국토의 중심을 세웠었지요. 여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위에 붓다에 대한 경건한 그리움 얹어 영원한 부처님 나라의 중심을 세웠었지요.
진신사리 대탑으로, 돌기둥으로 돌탑문으로 중심을 세우고 이 산치의 중심으로부터 동서남북으로 전법사를 파송하여 붓다- 담마(경전)를 널리 멀리 펼치고. 스리랑카로, 케시미르로, 간다라로, 그리스로, 히말리야로 붓다-담마를 전파하여 불국토의 변경을 끝없이 개척해 갔었지요. 그렇게 당신께서는 붓다-담마로써 인도를 통일하고 세계로 향하여 담마-로드 크게 열고 장엄 찬란한 불국토의 꿈을 현실로 일구어 냈었지요.
아쇼카여, 아쇼카 대왕이여 장엄한 부처님 나라 건설한 이 땅의 전륜성왕이여. 이제 우리들 코리아 불교도들 당신 앞에서 굳게 맹세합니다…. (김재영) 무량한 세월의 인연은 영겁을 부르고,경배와 사무침은 사방천지의 기운속에 전단향으로 피어올라 온 누리에 번져간다. 마침내 산천초목이 감읍하고 뭇짐승도 모두 조아리니 “아쇼카여 아쇼카여, 그대의 참회가 사랑의 불탑을 세웠네, 과거의 연(緣)이 구름을 뚫고 천지를 가로 지르네.”
글/그림: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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