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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성지순례-인도 기행
 
 
  간디 화장터, 기념관에서
 
간디화장터, 간디기념관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내 삶이 나의 가르침이다



간디 선생님 전상서
 
님께 인사를 드리려 해도, 나의 절은 그 깊은 곳에 가 닿지 못합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천한, 길 잃은 자들 함께 님이 쉬고 계신 그 깊은 곳까지는. 오만심으로 결코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천한, 길 잃은 자들 속에 초라한 옷을 입고 님이 거니시는 그러한 곳까지는.
(타고르의 ‘기탄잘리’) 
 
시인 타고르가 님을 향해 ‘거지의 옷차림을 한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이라고 한 고백과 그의 시를 빌어 두려운 마음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수신처가 없는 영혼의 편지를 처음으로 쓸 수 있는 용기 또한 님께서 주신 겁니다.
“보라, 나는 날개가 없다. 그러나 나는 매일 생각을 통해 여러분에게 날아간다… 여러분 또한 생각을 통해 내게로 날아 올 수 있다.”(감옥에서 아쉬람 아이들에게 쓴 편지)
 
보팔역에서 수도 델리까지 밤열차로 9시간을 달려오면서 님이 남기신 고백(자서전)앞에 저는 자꾸만 무너지고 한없이 작아져야 했습니다.
 
“대체 사랑으로 깰 수 없는 장벽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들에게 베풀어라.” “비폭력이 폭력보다 무한하게 월등하며 용서가 응징 보다는 더욱 사나이답다고 믿는다.” “먹을 것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내가 왜 물레질을 하느냐? 는 질문을 받는지 모른다.
 
나는 내것이 아닌 것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내 동포에게서 도둑질해 먹고 있기 때문이
간디
다.” “모든 선행은 그 자체가 광고다.” “참은 나의 하느님이며 비폭력은 참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지만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처럼 비참한 조건에서 나 자신과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여 그들의 슬픔, 고통, 그들과 똑같은 모욕을 함께 나누고 싶다.”
새벽에 델리역에 내려 이른 아침 님께서 이승을 하직한 화장터(라지가트)에 맨발을 벗고 참배한 일은 제 삶에 있어 한없는 은혜와 충격이었습니다.

인도의 아버지(바푸)로 추앙되고, 인류의 성자로 빛을 밝히신 님의 영혼 앞에 경배하는 모든 이들의 얼굴은 거룩했습니다. 지구촌의 누구도, 어느 종교인도 새벽이슬 차가운 돌바닥에 엎드려 헌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 공원처럼 꾸민 성소 관리자의 눈빛에는 인도의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꼈습니다. 순간, 감회와 함께 크게 부끄러워지더군요. 우리에게 님과 같은 가난한 성자의 죽음은 왜 떠오르지 못할까 하는 당혹감속에서.

한편, “오! 신이시여” 하고 마지막 남기신 말씀을 새긴 검은 돌 위에 놓인 하트형 헌화들은 한결같이 “당신(간디)을 사랑합니다”라는 합창으로 들려왔습니다. 거기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님의 뜻과 영혼의 등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님의 유업과 생전의 삶을 기리는 ‘간디기념관’을 바로 찾아야 했지요. 수일 전 뭄바이에서 ‘간디의 집’을 방문한 감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마주한 2층 현관에 걸린 님의 말씀 한마디.

‘My life is my message.’
나의 삶이 곧 나의 가르침이다.

 
어느 누가 이처럼 당당한, 생활이 곧 실천이고, 수행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의 깨우침을 삶의 방편으로 삼는 이 역설 같은 주문 앞에 저는 끝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리하여 님은 진정한 대장부요, 진리의 사도요, 수행과 자비의 표상으로 우러러 뵐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전에 교분이 있었다는 대만 장개석 총통의 친필 ‘仁乃聖乃(인자이며 성자이다)’가 눈에 띄지 않아도 기념관에 걸린 님의 모습(사진판넬)은 저의 붓끝을 두렵게 했습니다. 땀 흘리며 님의 모습을 담아 보려는 어리석은 자의 가난한 영혼을, 그러나 어느덧 님께서는 자비의 화신이되어 감싸주고 계셨습니다.
님의 생애를 붓길로 헌정(獻呈)한 다양한 그림 중에 부처와 예수, 그리고 님께서 나란히 한 길을 걸어가는 그림 앞에 걸음을 멈춘 저는 충격과 함께 ‘진리의 숲’을 떠 올렸습니다.

“종교는 같은 한 점으로 모이는 다른 길이다.” “불가촉천민제도가 존속되느니 차라리 힌두교가 사라지는 것이 낫다.” “나환자 수용소에서 사심없이 꾸준히 일하는 선교사들을 나는 존경한다. 힌두교인들이 인도의 부랑아들을 세상에 내 팽개친 채로 관심이 없을 만큼 냉담하게 된 것을 고백해야하는 나는 부끄럽다.”

종교를 비판하는 이 드높은 님의 고백은 그대로 우리를 찌릅니다. 한국의 많은 종교가 잊고 지낸 실천의 장이 무엇인가를 새삼 일깨워 줍니다. 지구촌 시대에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고 계도하는 이들에게 “나는 전 세계가 이익이 되도록 인도가 일어서기를 바란다. 하지만 다른 나라가 망하면서 인도가 일어서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하며 인도인의 진정한 자존을 피력해 놓으셨습니다.

님의 겸양은 나아가 “나는 미래를 예견하지 못한다. 다만 현재를 돌보는 일을 걱정할 뿐이다. 하느님은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을 다스릴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에서 ‘예술’운운하며 시건방을 떨었던 저에게 참회와 깊은 통찰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이 어둡고 절망적인 세상에 대해, 그러나 님은 간절한 희망의 기도를 들려주십니다. “사랑의 법칙은 세계를 지배한다. 생명은 죽음의 얼굴속에서 지속된다. 우주는 파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계속된다. 진리는 비진리를 누르고 사랑은 끝내 증오를 넘어선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끝내 사랑은 증오를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생명과 진리의 길을 열어 주신 은혜 잊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님의 영혼 앞에 무릎 꿇고 작은 향 사르오니 부디 흠향(歆饗)하소서. 


글/그림: 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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