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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성지순례-인도 기행
 
 
  마투라 불상 소묘
 
마투라 불상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나를 닮은 붓다를 찾아서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연암 박지원)

오후 1시경 국립박물관을 나서 쉬지 않고 야무나강을 끼고 달려 온 마투라. 145km 를 달려 고고학박물관에 당도한 시간이 오후 5시 40분. 그러나 불행하게도 박물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5시 폐관을 조금 연장해달라고 현지 가이드 라젠싱이 휴대폰으로 수없이 사정했건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아 인도인끼리 얼굴을 붉히고 일행 모두 허탈했다.
잠시 전 국립박물관에서 본 마투라 불상의 생생한 조우는 그리스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불상의 세련미와는 달리 자생불상(自生佛像)으로 인도인의 골격이 뚜렷하면서도 소박한 인상으로 남았었다.
따라서 이 자생불상의 연원을 수도 없이 확인할 수 있다는 마투라박물관의 불상친견을 두고 인도에 오기 전 자료를 뒤적이며 설레었던 꿈이 사그러질 판이다.
마투라 불상
내부 행사 주간이라 내일도 문을 열지 알 수 없다는 절망속에서 다음 여정인 아그라로 향하는 어둠은 결국 회한의 길이 되고 말았다. 확인하지 못한 도판속의 불상(마투라 박물관 소장)이 불현듯 그리워지고 다음 기대로 지나쳤던 국립박물관의 마투라 불상이 내게 도로 눈을 감게 하며 지팡이에 의지하듯 기억을 더듬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힌두교 성지요, ‘크리슈나’의 탄생지로 비쉬누신(神)을 찾는 곳이 되고 있지만 초기 불상의 발생지로서 마투라는 여전히 그 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 즉 숭가, 쿠샤나, 굽타왕조에 걸쳐 가장 인도적인 분위기의 불상이 조성된 자연조건이 있었다. 이 마투라 지역은 갠지스강의 지류인 야무나강 유역으로 간다라에서 펀잡을 거쳐 내려와 갠지스강 중·하류의 마가다 지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다.
또 인도 서남부로 가는 길도 이곳에서 갈렸고, 지금도 인도에서 4개의 철도 노선이 만나는 유일한 곳이다.
따라서 외부의 자극속에 자긍문화의 고취로 드러난 불상이 마투라의 특징인 것이다. 간다라 불상이 그리스 조형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마투라 불상은 순 인도적인 조형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최완수)

그 구체적인 도판(이주형, <간다라 미술> p145)을 살펴보면 꼭 어디선가 만나본 인도 청년 모습의 불두이다. 큰 눈망울에 곧고 넓은 코, 두툼한 입술에 둥근 얼굴이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으로 나발(머리모양)만 없다면 평범한 소년 얼굴 모습이다.
불상은 스투파와 법륜등의 무불상 시대에서 기원 후 1세기경에서 나타나는데 두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난 곳이 마투라와 간다라 지역이다. 마투라의 불교미술이 고대 인도미술의 기초위에서 등장한 반면 간다라 미술은 거의 전적으로 외래미술, 특히 서양고대 후기 미술을 모델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이주형, <불교미술> p38)
살펴보는 도판으로도 그 느낌은 현저한데 예컨대 마투라박물관 소장의 ‘보살명불삼존비상(菩薩銘佛三尊碑像)’은 육감적인 청년의 씩씩한 모습에서 자신감 넘치는 인도인의 얼굴이 느껴진다. 부처를 닮은 친근미를 표현함으로써 이웃 모두 하나가 되고 싶어한 까닭이 명문으로 새겨져 있다.

붓다라키타의 어머니 아모하이시는 자신의 절에 보살상을 만들어 모신다. 일체 중
생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또한 불상의 형식을 살피면 마침내 협시인물(脇侍人物)이 등장함으로써, 삼존불상의 시원 양식이 되고 있다. 한편 ‘보살’이라는 칭호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것으로 대개 마투라의 불상이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이유로서 살펴지는 것이다.


즉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붓다가 아니라 보살의 자비로써 누구에게나 희망과 가능성을 열어 성불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래를 지어 부처의 형상을 찬미하고 수도 없이 ‘자신을 닮은 부처’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부처님 위해 여러 형상 세우거나
부처님 상 조각한 이들 모두 성불했고,
칠보나 놋쇠나 백동
납, 주석, 쇳덩이나 나무, 진흙으로 만들거나
교칠포(膠漆布)로 치장하여 부처님상
장엄한 이들 모두 다 불도(佛道)를 이루었고
백복(百福)으로 장엄한 부처님 상 그릴적에
제가 하거나 남 시킨 이들 모두 다 성불했고,
아이들 장난으로 풀, 나무, 붓이나
꼬챙이로 부처 모양 그린이들.
이 같은 모든이들 공덕을 점점쌓아
큰 자비심 갖추어 성불했네.

                                                              
<법화경> (이운허 역(李耘虛 譯))


이 마투라 불상은 점차 초기불상에서 보이던 발랄한 소년의 천진성이 감소되고 웃음기 머금어 약간 감긴 눈과 과장된 입술 둘레선이 유도하는 신비로운 미소에 의해서 고요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이 요소들이 마침내 세계조각 사상 가장 신비로운 인체표현을 구비한 굽타 불상양식을 이루어 냈던 것이다. 이 불상의 연원은 비단길을 따라 중국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일본에 전해지는 대해의 물결속에서 서로의 표정을 달리하고 상징과 교리의 해석에 따라 변천을 거듭해간 것이다.
나그네는 불현듯 마투라의 불상속에서 인도인을 보았듯이 한국의 불상에서 우리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삼국시대, 고려, 조선의 불상을 떠올리며 한국인을 닮은 부처상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진다.
올 해가 가기 전에 걸망을 지고 산사를 찾아 꼭 나를 닮은 부처를 만나고 싶다. 그리하여 마투라의 회한을 씻어 보고 싶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도로 눈을 감은 채 마투라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는 중이다.

글/그림: 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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