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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강마을과 순교터에서의 단상
염원·상처 함께 간직한 회한의 땅
"나마스떼, 짜이 이크거프 비지에(안녕하세요, 짜이 한잔 주세요). 자파티 이크 비지에(자파티도 한개 주세요).”
현지 가이드에게 배운 말로 이른 아침 동전(루피)을 내고 사먹는 따끈한 짜이(홍차에 우유를 섞은 차)와 구수한 자파티(밀가루를 빈대떡처럼 만들어 불에 구운 것)는 인도 어디에서도 인기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성자처럼 기른 사내가 웃통을 벗은 채 화덕에서 자파티를 구워 집게로 접시에 담아 주니 일행은 열을 지어 그의 검붉은 나신(裸身)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한편 카레에 밥을 비벼 손으로 집어먹는 인도인들의 모습은 이제 익숙하여 그새 모두의 눈길이 자연스럽다.
갑작스레 골목길에서 낙타가 나타나 곱사등이 아주 휘도록 사탕수수 짚더미가 산을 이룬 채 뒤뚱거리며 걸어가니 일행은 셔터를 누르며 환호성이다. 몇 루피를 의식한 탓인지 고삐를 잡은 주인은 몇 번이고 포즈를 취하며 낙타를 좌우로 이끈다.
칸푸르(Kanpur)를 출발 코샴비(Kosambi) 성지로 가는길. 코샴비는 바라나시(Varanasi)로 가는 갠지스강과 야무르강이 합류하는 길목에 자리하는데 현재의 지명은 코샴(Kosam)이다. 예전 야무르강에서 아난다 비구가 배를 타고 건너온 나룻터가 있다는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그루와(Gruhwa)마을로 들어서자 전형적인 인도 농가의 풍광이 펼쳐졌다. 황토벽과 흙으로 구운 벽돌위에 나무껍질과 짚으로 엮은 지붕들이 오종종 드러나고 사람들은 낮선 이방인들을 이중의 눈빛으로 맞이한다. 즉 가족모두 뛰쳐나와 구경하는 이와 숨는이들. 어린양을 품에 안은 아이, 무료하게 장죽을 늘어뜨리고 있는 노인, 고추를 내놓고 우는 아이, 아기를 안고 업은 아낙들의 시선이 나그네 심정에 일렁인다. 그 중 푸른 원색의 사리와 분홍빛 원피스를 입은 모녀의 모습이 눈앞을 마주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그만 아낙은 사리를 뒤집어 써 버린다.
내 욕심이 그녀를 언짢게 했으니 이를 어쩌랴. 그 어떤 풍광이나 감흥보다도 지금껏 남아 떠도는 미안함이다. 마을 뒤 언덕엔 낡은 흰두사원과 그 아래로 강이 흐르는데, 소녀는 흐르는 강물에 설거지를 하고 한 쌍의 말이 한가로이 물가를 서성이는 이곳이 예전 불법을 전하던 나룻터였단다. 강을 바라보다 말고 순교(殉敎)의 성지(聖地)로 불리우는 코샴비 유적지를 찾아 발길을 돌리자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른다. 지평선 들녁에 유일하게 솟아 있는 부러진 석주하나. 역시 아쇼카대왕의 석주로서 깊은 역사와 함께 벽돌로 남은 잔해가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581년(전법9년) 코샴비를 처음 방문한 붓다는 당시 고시따(Ghosita)장자가 기증한 고시따라마(Ghositarama)절터에 머물렀다. 전법은 고시따장자등의 후원을 얻어 활기를 띠었지만 반대로 불행한 사건을 맞게 된 곳이기도 했다.
즉 사소한 계율 문제로 승단이 분열, 이를 지켜본 붓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구들의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실망한 붓다는 코샴비를 떠났고, 시민들은 비구들에게 공양을 거부하는 사태로 번졌던 회한의 장소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 자기 입장이 강해 종교마저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간 사실을
경계해야 하는 일에 대해 불교 초기경전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만이 청정하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가르침은 청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가 따르고 있는 것만을 진리라 하면서, 서로 다른 진리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이 수행자들 사이에 일어나면, 이들 가운데에는 이기는 사람이 있고 지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논쟁에 이겨도 잠시 칭찬을 받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이익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대는 ‘나야말로 승리를 거두리라’ 는 생각의 편견을 가지고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지만, 결코 그것으로는 진리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숫타니파타>‘파수라’편)
한편 코샴비는 옛날 번창했던 밤싸국의 수도였었는데 당시 고시따라마절에서 일어난 순교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순교의 주인공인 쿠주따라(Khujjutara) 여인은 코샴비궁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였는데, 절에 머물던 붓다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자리에서 견성하였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왕비와 5백궁녀의 법사가 되어 불법을 펴던 중 사악한 외도들이 궁중에 불을 지르자 피하지 않고 결가부좌로 태연부동(泰然不動), 불퇴전(不退轉)의 용맹으로 불법(佛法)의 불사(不死)경지를 실증해 보였다고 한다. 이를 따르는 5백 궁녀 또한 쿠주따라와 함께 순교한 곳이 코샴비성지이다.<법구경>(고려원, 1991) 참조 황량한 절터를 살펴보니 우물터, 승방, 그리고 설법지로 추정되는 규모의 벽돌담 층계 틈새엔 무성한 풀만이 새 생명으로 돋아나 있다. 그 들녁에 꽂히는 햇살아래 나투는 영혼의 숨결들. 부러진 석주는 그날의 염원과 상처를 함께 보여주는 듯하여 산 자들은 목탁소리와 함께 탑돌이를 시작했다.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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