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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과거의 죄 강물에 띄워 보내고
★ 은하의 강과 만인의 노래
한국말을 스스로 배웠다는 가이드 라전싱(Rajan Singh, 26세)은 델리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운전석 칸에 다가와 짓궂게 물어대는 내게 모든 것을 친절히 답해준다. 지구촌의 가족으로 어느덧 마음이 통해 형제애로 맺은 아름다운 만남. 그러나 그의 말속에서 한국인의 언어관습이 그냥, 농담으로 지나치기엔 오해의 소지가 클 법도 하다. ‘잘못하면 때려달라니’, 도대체 누가 일러준 말인가. 경제적 자립과 공부하는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주로 한국인을 위한 관광 통역가이드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는 라전싱. 그는 준수한 외모에 명석한 두뇌를 가진 청년으로 세계의 종교를 영적으로 통합, 인류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저서를 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스물여섯의 청년으로 대망을 가진 그는 틈틈이 영문 독해를 노트에 옮기며 빈틈을 아끼는 성실한 모습속에, 가끔씩 하는 말은 인도인의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형님, 인도는 언젠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어떠한 종교든지 다 받아들이고 수많은 신이 존재하는 영적, 정신문화로서 이념과 종교의 대립을 와해, 수용하는 터전과 전통으로 인도만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따지지 않고 순순히 그의 말을 경청해 주었다. 아직은 너그러운 형이 되어주고 싶어서…. 오늘(1월14일)부터 인도 전역에서 사흘 동안 열린다는 추수감사절(Harvest Festival)은 남부인도에서는 퐁갈(Pogal)축제로 유명하다. 햅쌀로 밥을 지으며 모든 가축들을 강으로 데려가 씻기고 여러 장식으로 동물들을 치장하는 의식도 있단다. 그 행사에 동참하려는 마음인가. 운전사 란지트 꾸마르(Ranjeet Kumar, 25세)는 이마에 노란 칠과 붉은 점을 찍고 그 특유의 웃음을 띠우며 운전석에 오른다. 그리고 운전대 앞에 모셔둔 삼지창을 든 시바 신(神)께 향을 피우고 예를 올린다. 기도인즉 오늘도 무사히 안전운행의 행운을 지켜달라고. 신혼인 꾸마르는 아내를 처가에 맡겨두고 장거리 출장 중인데 운행중엔 곁눈질과 말을 삼가는 것이 철칙인양 열흘이 지나도록 침묵속에 운전대만을 잡고 있다.
그의 끈기와 집념은 참으로 무서울 정도인데 아무리 숙소를 권해도 조수(디네스)와 꼭 차에서 잠을 자며 찬 새벽이슬을 털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 것이다(그들의 의식으론 운행기간엔 차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정상 매일 새벽 안개를 뚫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꽉 짜인 행로를 일행은 꾸마르 청년 하나를 믿고 졸면서 간다. 거리의 풍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운전석칸을 들락거리는 나는 5m앞도 보이질 않는 짙은 안개속을 그냥 감(感)하나만 믿고 질주하는 차에서 사실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다년간 무사고 운행에다 열악한 도로 사정을 훤히 꿰고 있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꾸마르의 진지한 자세가 일행을 잠들게 하였다. 특히나 하루 12시간을 주행하면서도 피곤해 하지 않는 표정이며 앞창의 뽀얀 안개로 운전석에 앉은 검은 꾸마르의 뒷모습은 어느 순간 마치 붓다의 상(像)으로 연상되는 느낌이었다. 하긴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한 붓다의 길이나 일행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애쓰는 저 의지의 청년 꾸마르의 마음이 하등 다를리 있겠는가. 어쩌다 소변을 위해 잠깐씩 차를 세울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꾸마르, 베스트 드라이버!”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외쳤고, 그는 만족한 듯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내세우며 응답한다. 그렇게 깊은 안개를 뚫고 종일을 달려 노을이 지고 이내 별이 돋아오른 시간, 차는 마침내 바라나시로 가는 길목, 알라하바드를 달리고 있었다. 수많은 차들이 갑자기 몰려 고가도로 통행이 자주 끊기는데 사정인즉 인도 최대규모의 대축제 ‘상감(Sangakm)축제’가 다리 밑에서 열리고 있는 탓이란다.

정차중인 차에서 뛰어내려 다리 밑을 살펴보니 천막과 보트, 그리고 사람들이 한도 없고, 은하가 잠긴 강물은 흰광목을 풀어 놓은 듯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행운의 여신이 돕는 날이다. 잠시나마 저 엄청난 인도 최대의 축제를 실감해 볼 수 있다니. 바라나시의 서쪽 135km 지점에 위치한 알라하바드는 예로부터 쁘리야그(Prayag)라 불리며 하르드와르, 나식, 웃자인 등과 함께 힌두의 4대 성지로 불린다. 알리하바드란 ‘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인데 마을 북쪽을 흐르는 갠지스강과 남쪽의 야무나강이 만나는 지점을 상감(합류점)이라 부른다. 그리고 지하로 흐르는 사라스비티 강도 함께 만나 트리베니 상감(3개의 강이 합류하는곳)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과거의 죄를 깨끗이 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들은 축제를 통해 공동체와 참회의 시간을 갖는 민족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 듯 하다.
또 매년 1~2월의 축제 이외에 12년마다 한번씩 꿈부 메라 대축제가 열려 수십만 명이 찾아오는 축제는 힌두의 4대 성지를 3년마다 순회하며 열린다고 한다. 축제는 대낮 태양 아래 펼쳐지는 것이 장관이겠지만 한편으로 별빛 아래 풍광도 이채롭다. 즉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만인송(萬人頌)이 어둠속에서 은근하게 들려오는 느낌이다. 간디 이후 인도국민에게 존경을 받았던 네루수상의 유해도 이곳 강물에 뿌려졌다는 설명을 들으며 강을 지나자, 별빛은 그새 등 뒤로 사라진다. 인간의 희망으로 별이 뜨는가. 별이 돋아 꿈을 설레게 하는가. 별빛이 내린 저 강물속에 내 작은 소망도 함께 띄워 보내고 싶다.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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