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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성지순례-인도 기행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갠지스강, 바라나시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마음 씻고 하늘로 돌아가는 길


삶과 죽음이 한자리에 펼쳐지는 곳.


생사(生死)의 길이 본래의 면목(面目)임을 깨닫게 하는 곳. 불과 물이 상극(相剋)이 아니라 연기(緣起)요, 상생(相生)의 존재임을 확인하는 곳이 바로 바라나시(Varanasi)의 갠지스(Ganges)강이다.
누구나 인도를 여행할 때 빼놓지 않는 갠지스강은 ‘강가(Ganga)강’으로도 부르는데 이는 어머니의 신(神)(Gangamataji)으로 숭배하는 까닭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것을 받아주고 용서해주고 또 끝끝내 구원해 준다는 어머니의 강, 갠지스 주변은 인류의 고향이자 영혼의 안식처로 연일 수구초심(首丘初心)이 되어 북적되고 있었다.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 자전거 릭샤를 나누어 타고 강가에 도착한 일행은 강을 건너기전 온갖 사원이 즐비한 뒷골목을 먼저 탐방했다.
온갖 오물과 쇠똥, 그리고 비릿한 냄새. 드러누운 채 뼈만 남은 늙은 걸인의 눈빛. 비좁은 골목에서 호객행위를 일삼는 젊은 상인. 뛰어다니며 살판난 소와 원숭이, 그리고 수없는 종교 사원이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한편 저마다의 신(神)을 향해 향을 사르고 예배를 하기 위한 복장과 치장, 화장한 모습이며 갖가지 의식행위는 가히 갠지스강변의 별천지로 나그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중 황금사원으로 불리우는 비쉬와나트사원(Vishwanath Temple)은 회교사원과 나란히 눈에 띄는데 12세기 이후 이슬람교도와의 분쟁으로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다고 한다.

총을 든 경비원이 눈에 띄듯 현재 힌두교인만이 출입이 가능하다는 곳을 모두 배낭을 맡기고 비공식으로 타협해서 좁은 계단을 올랐다. 덕택에 나는 품속에 감추고 간 화첩을 꺼내 황금사원을 담을 수 있었고. 미로의 골목엔 한국인을 위한 숙박소개가 한글로 씌어져 있어 반가우니 우리 여행객들이 반드시 찾는 지역임을 여실히 실감나게 한다.
인도인과 외국인들 틈에 끼여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다녀갔을까. 인도와 인연이 닿은 한국인들. 그들은 분명 갠지스에 와서 삶과 죽음을 떠올리며 조용히 전율하였으리라. 적어도 그 순간에는 영혼의 안식처로 받아들였으리라. 무엇이 고통이고 진정한 행복인가를 돌이켜 보았으리라.
동이 트기 전 서둘러 배를 빌려 선착하자 온갖 토산품과 등잔불이 모래톱을 향해 배안에 가득하다. 모두들 소망과 참회의 등불을 가슴에 피워 어머니의 강에 조용히 띄워 보낸다. 그 모습들이 유난히 오늘따라 맑고 경건해 보인다.
스산한 백사장 천막에서 짜이 한잔을 사 마시며 서성이는 사이, 마침내 해가 올라오자 현지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옷을 벗고 강물에 뛰어든다. 어느 배엔 온 가족이 함께 와서 주문을 외고 차례차례 물속으로 잠기는게 아닌가.
다시 배를 타고 도강 하는데 개 한 마리가 헤엄치니 개도 강을 건너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만만치 않은 강폭을 바라보며 내뱉는 누군가의 말이 섬뜩하게 들려왔다.
“아, 저 개요. 매일 강가에 버려진 인육(人肉)을 먹어 저렇게 힘이 솟을 겁니다. 아마도….”

개의 숨찬 도강을 지켜보는 사이, 화장터엔 흰 연기와 매케한 냄새가 진동하고 주변엔 수많은 사람들이 불어나 갠지스강 해돋이의 장관을 만끽하고 있었다.
기도하는 이, 물을 마시고 몸을 씻는 이,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과 어린아이를 물에 담구는 이, 온갖 원색의 사리와 검붉은 피부의 나신들이 만다라를 이루고 소망의 등불을 물에 띄우는 성스러운 모습이 강물위에 펼쳐졌다.
생(生)과 사(死)의 향연. 육신을 거두고 하늘로 돌아가는 길. 강물에 영혼을 씻고 불길따라 천상에 오르는 다비의식은 애절함 보다는 순리를 따르는 인간의 길로 기려진다.


그런데 잠시, 십년 전(1993년)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의 다비장길에 내리던 가을 꽃비와 만인의 염불송, 그리고 만장 행렬이 새삼 불꽃연기 속에 피어 오르는게 아닌
가. 오! 적멸(寂滅)의 세계. 생사의 코스모스(Cosmos).
“생(生)과 사(死)는 계속해서 흐르는 하나의 저류, 자연의 운행, 여기에서 생과 사가 다 같이 하나의 위대한 생명인 것이다”라고 한 윤오영의 <와병수감(臥病隨感)>으로부터 “나는 죽음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현상에서 적멸을 느낀다. 모든 것은 생겨나고 없어진다. 끊임없이. 불생불멸이 모든 사물의 존재양식이란 생각이 들면 갑자기 나에게 주어진 삶이 경외스럽다. 사람은 죽기 때문에 행동하고 존재하는 것 아닌가. 인간 삶의 온 과정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일 뿐이다. 적멸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라고 갈파한 강우방 선생의 <적멸삼매(寂滅三昧)>가 되뇌어 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에서는 산자의 행위나 죽은 자를 보내는 의식도 결코 만인에게 고르지는 못한 법인가. 갠지스강에 뿌려질 수 있는 뼛가루도 가진 자의 유족 순서로 다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엄연한 현세적 욕구의 반영이다.
화장터로 오는 시체는 대나무 들것에 실려 오는데 남성은 흰색, 여성은 오랜지색 천에 싸여 꽃을 치장한 채 실려와 강물에 담근 뒤 화장시킨다고 한다. 사망자 직계가족은 13일 동안 금식, 일절 집에서 불을 피우지 않는 전통이 보내는 자에 대한 남은 자의 예우라는 말을 들으며 또 갠지스강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강가에서 되새겨 보는 생사의 반추.
“언젠가는 저 피어오르는 불꽃 연기처럼 마침내 내게도 하늘로 돌아가는 길이 열리리라.”


글/사진: 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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