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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사슴과 함께 듣는 붓다의 법문
★ 진리의 숲에 펼쳐진‘中道
옛적 사르나트(Sarnath) 숲 속에 두 우두머리 사슴이 각기 사슴 500마리씩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을 통치하던 왕이 한꺼번에 서너 마리씩의 사슴을 잡아가자 한 사슴왕은 왕을 찾아가 조아렸다.
“왕께서 너무 많은 사슴을 사냥하시면 한꺼번에 먹기 어려워 썩게 되고 반찬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이러한 즉 저희가 사슴 한 마리씩을 매일 바치면 신선한 사슴을 드실 수 있고 저희의 생명들도 연장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사슴들은 순서를 정해 매일 한 마리씩 목숨을 내놓게 되었는데, 어느 날 새끼를 밴 사슴 차례가 되자 그 사슴은 한 사슴왕(데바녹왕)을 찾아가 “제가 죽으면 제 뱃속의 새끼도 함께 죽습니다. 비록 이번이 저의 차례이오나 뱃속의 새끼는 죽을 차례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애원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또 다른 사슴왕(보살녹왕)을 찾아가 사정하였더니 사슴왕은 크게 감동하며 “오, 이것이 어미의 자비심이로구나. 어미의 은혜가 뱃속의 새끼까지 미치고 있다니. 내가 오늘 너 대신 목숨을 내 놓겠노라”고 하며 바라나시왕을 찾아갔다.
왕은 순서도 아닌 사슴왕이 스스로 찾아온 사정을 묻고 그 사유를 알게된 바. “오, 훌륭한 자비로구나! 너는 비록 사슴으로 태어났지만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행색으로 너희보다 자비심이 없었음을 깨달았노라.” 이리하여 이후로는 왕이 사슴사냥이나 사슴제물을 멀리하여 동산에서 사슴들이 행복하게 뛰놀 수 있게 되었다.(인도와 네팔의 불교성지, 정각, 불광출판사)
전해오는 위의 이야기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요, 자비로운 죽음은 도리어 소생한다”는 아름다운 교훈이다. 이렇듯 사르나트는 ‘사슴의 왕’을 뜻하는 명칭인데 바라나시 북쪽 8km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첫 설법을 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붓다가 예전 자신을 따르던 다섯 수행자에게 마침내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만났다는 곳에 챠우칸티(chaukhandi)스투파가 우뚝하니, 일명 영불탑(迎佛塔)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나 우뚝 솟은 다메크(Dhamekh)스투파. 사슴동산으로 부르는 녹야원(鹿野苑)의 중심이 되는 대탑(직경 28.5m, 높이 42m) 주변엔 탑돌이가 한창이다. 다메크란 ‘진리를 본다’는 뜻으로 무명(無明)에서 깨어나려는 중생들의 발길로 만원인데, 순례객은 거반 한국인으로 반갑게 눈인사를 나눈다. 부러진 아쇼카석주가 서 있는 녹야원 풍광은 사슴 동산에 우뚝 솟은 대탑 사이로 온갖 유물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정작 녹야원의 주인이어야 할 사슴은 인간들의 발길로 철망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사육되고 있는 현상이 안타깝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사르나트는 붓다의 최초설법으로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와 함께 최초의 승가(僧伽)가 형성된 곳으로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한 증거로
맞은편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 유물은 빛을 발한다.
즉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중에 하나라는 ‘초전법륜상(初轉法輪像)’은 해맑은 청년의 모습으로 법륜을 굴리는 모습(說法印)인데 탄력적인 육감과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굽타시대(5세기경)에 조성된 불상으로 우리 석굴암처럼 제작자는 당시 최고의 돌을 고른 안목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특히 불상하단엔 두 마리의 사슴이 제자들과 함께 법문을 듣고 있는 조각은 이곳의 출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유물은 현재 인도 정부의 국장(國章)으로 쓰고 있는 아쇼카석주의 사자머리이다. 4마리의 사자가 사방으로 왕의 권능을 나타내고, 그 밑의 바퀴는 법륜(法輪)을, 그 사이에는 4마리의 짐승(코끼리, 흰소, 말, 사자)이 조각되었는데 모두 붓다와의 인연을 상징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 돌기둥을 받쳐주는 주름치마같이 흘러내린 연화대는 이후 많은 불교조각에 응용되는 초기 문양의 사례로 돋보인다.
신라의 혜초스님은 이것을 보고 “위에 사자상(獅子像)이 있는 석주당(石柱幢)은 다섯 아름이나 되며, 거기에 새긴 무늬가 매우 아름다웠다”(<왕오천축국전>)고 전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행해진 붓다의 최초설법은 <전법륜경(轉法輪經)>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세상에는 두개의 치우친 길이 있다. 수행자는 그 어느 쪽에 기울어져도 안된다. 하나는 관능이 이끄는 대로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일인데, 이것은 천하고 저속하며 어리석고도 무익하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 열중하는 고행인데, 이 또한 괴롭기만 할뿐 천하고 무익하기는 마찬가지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이 두개의 치우진 길을 버리고 올바른 길, 중도(中道)를 깨쳤노라. 이 중도에 의해서 통찰과 인식을 얻었고, 평안과 깨달음과 눈뜸, 그리고 열반에 이르렀노라.”
‘중도의 길’을 설파한 붓다의 설법은 오늘의 삶에 있어 얼마나 유익한가. 아니 하루를 살아도 집착과 고뇌에서 일탈할 수 있게 하는 명백한 삶의 진리가 아닌가.
이 같은 진리의 샘터, 녹야원 주변엔 오늘날 버마, 스리랑카, 중국 절과 티베트사원이 들어섰고 자이나교 사원까지 등장했으니 새삼 ‘진리의 숲’을 떠올린다. 길을 떠나기 전 다시 다메크 대탑주변을 돌아보는데, 벽돌사이로 수많은 불상조각과 문양들이 세월의 잔영을 머금고 햇살에 반짝인다. 어느새 사슴들이 철망 너머 숲 아래 서성이고 새떼들이 무리를 지어 허공을 날아간다. 한 순간, 진리의 말씀 아래 온 세상이 안녕하다.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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