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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님이시여, 이제 꽃을 받으소서 -고독한 수행자의 간절한 서원 깃든 곳-
“내 지금으로부터 이 자리에서 무상(無上)의 큰 지혜를 얻지 않으면 이 몸이 다 마르고 부서지더라도 결단코 이 가부좌를 풀지 않으리!”
<방광대장엄경>
지난달 파키스탄 간다라기행(9.23~9.29)을 강행한 나는 수많은 불상과 간다라 불교 유산에 새롭게 심취했다. 그 한주의 여정이 마치 전생여행인양 아련하고도 꿈만 같다. 간다라는 또 다른 불교의 고향이요, 인류 최고, 최대 불상의 보고(寶庫)이었음에랴. 나는 그 중 단 하나의 불상 친견에 마음이 들떠 길을 떠났으니 바로 라호르 박물관의 ‘싯다르타 태자 고행상(苦行像)’이다. 냉방이 되지 않은 박물관에서 뻘뻘 땀을 흘리며 고행상을 향해 붓을 들어야 했던 나그네의 마음에는 끝없는 참회와 외경(畏敬)이 솟구쳤다. 그토록 그리운 님은 너무도 참혹한 모습이었으니.
싯다르타 태자의 6년 고행을 그린 작품으로 서기 2세기에 제작되어 간다라의 시르카에서 출토된 고행상은 누구든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에 젖어들게 한다. 찬탄이 아닌 외경으로 전율케하는 고행상은 실제 붓다가 되기 위한 수행의 총체적 이미지요, 고행의 상징적 표상으로 일찍이 인류의 유산속에 나투었다. 오랜 단식으로 움푹 파인 배와 앙상한 갈비뼈, 그 가슴 위로 드러난 핏줄과 목뼈의 참혹함. 해골처럼 움푹 들어간 눈망울 속에서도 번득이는 예지의 눈빛. 가죽만 남은 뺨과 덥수룩한 수염은 결코 왕자였던 싯다르타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그러나 초인적인 수도를 통해 대오(大悟)를 다지려는 듯 굳은 의지로 결가부좌한 모습은 모두를 숨죽이고 숙연케한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향한 걸음이나, 진리의 깨달음을 위해 가부좌를 튼 싯다르타의 모습이 저와 같을까. 해석은 달라도 진리의 길은 하나다. 지난 시간 보드가야 대탑이 빛을 발하던 장엄에서 발길을 돌려 나이란자나 강을 건너니 고행림이라 부르는 숲 속 사원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새까만 아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손을 내민다. 유독 한국인에게 아이들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며 제발 동정하지 말아달라고 가이드 라전싱은 인상을 찌푸린다. 까닭인즉 구걸하는 자국인 때문에 그의 자존심이 상한 탓이다. 고행림으로 불리는 거대한 보리수 숲속 사원은 늙은 수행자들로 가득한데 모두 초췌한 모습이라 일행들의 동정을 샀다. 나그네는 그 숲속에서 도판으로 보았던 ‘싯다르타 태자 고행상’을 떠올렸다. 이곳 어디에선가 나무 그늘 아래서 강기슭을 바라보며 깨달음을 향해 용맹정진하는 그분의 뒷모습이 그리워진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님의 숨결은 나날이 야위어 가고 생명의 불길이 꺼져갈 무렵 선정에 잠긴 싯다르타의 눈앞에 천녀(天女)들이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 “리라(악기)의 선을 너무 팽팽히 당기지 말라. 선을 너무 팽팽히 당기면 그 선은 끊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 그렇다고 선을 너무 느슨하게 하지도 말라. 너무 느슨하면 노래 소리는 울려나지 않으려니.” 이 천녀의 노래에 감읍한 싯다르타는 단식을 중단하고 나이란자나강에 이르러 우르빌라 지방 성주의 딸 수자타(Sujata)로부터 유미죽(꿀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식)을 공양 받아 회생하게 된다.
“아! 진리의 사도여, 구원의 사문이시여, 이제 저희의 꽃을 받으소서.” 내가 찾는 수자타는 수행에 만신창이가 된 육신을 거두어 주면서도 감격해 마지않는 여인. 님의 뜻과 의지를 간파한 보살의 손길이자 자비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그 자비의 화신을 어디에서 새롭게 만날까. 수자타사원으로 불리는 우루벨라마을을 찾아가자 조그만 사원엔 고행상을 닮은 불상앞에 두 여인이 공양을 올리고 흰소 한 마리가 앉아있다. 두 여인은 이른바 수자타 자매라는 설로 전해지고 흰소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살펴진다. 마을 풍광은 옹기종기 짚단으로 쌓아놓은 아름다운 농촌 전경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데 여기까지 줄곧 따라오는 아이들을 나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 들녘에는 아이를 안은 아낙과 소년소녀들이 진을 치듯 둘러앉았는데 매우 처참한 모습을 보며 ‘불가촉천민’이란 소외계층을 떠올렸다.
저 슬픈 가난을 어찌하랴. 저 쓸쓸한 어린 추억을 어찌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으랴. 매달리는 그들을 뿌리치고 돌아서 가야만 하는 모진사람의 인연이여. 그 갈등의 틈바구니 속을 간신히 빠져 나오는데 제법 옷을 잘 차려입고 물통을 든 처녀와 우연히 마주쳤다. 순간 사경에 이른 싯다르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 수자타 여인이 떠오르는게 아닌가. 그리하여 마치 그녀의 물통에서 저 가난한 이웃들에게 베풀 지혜와 자비의 유미죽이 끊임없이 솟아나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마저도. 어느 듯 고행림을 되돌아보자 저 멀리 숲 속에 한 수행자가 고독을 벗삼아 앉아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분은 분명 라호르 박물관에서 만난 고행상의 모습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실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분은 침묵속에서 여전히 간절한 서원(誓願)에 차 있을 것이다.
허공계와 중생계가 다하더라도 오늘 세운 이 서원은 다함 없으리.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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