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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성지순례-인도 기행
 
 
  산치탑 전경을 담으며
 
산치탑 /산치대탑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부조로 장엄한 공생의 가르침
       -탑의 시원과 조각의 아름다움-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고,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며,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라는 표현이 갈래로 들리지 않고 통합의 개념으로, 하나로 꿰뚫리는 실감을 산치탑에서 맛본다.

산치탑
실로 과학과 예술, 그리고 종교의 만남이 인류의 빛이 되고 미래로 이어질 유산의 가치로서 탑의 시원이 된 산치스투파를 바라보며 바람소리에 귀를 씻는다.
‘탑(塔)’은 인도어 ‘투파(thupa)’를 음으로 옮긴 ‘탑파(塔婆)’에서 유래한 것으로 애초 붓다의 열반 후 화장한 유골을 모신 곳이다.

붓다가 열반에 들자 여러 종족이 유골을 팔등분하여 나눠 가졌으므로 인도 땅엔 여덟 곳에 스투파가 세워졌다. 그 후 200년 뒤 아쇼카대왕은 그 중 일곱개의 스투파를 열고 다시 유골을 팔만사천개로 나누어 스투파를 인도 각지에 세웠다고 한다. 이 상징적인 팔만사천의 숫자는 후일 대장경을 낳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 아쇼카대왕의 홍법(弘法)에 중심이 되는 산치탑의 형상은 불교미술에 있어 회화, 조각, 건축의 시원이 되고 초기 불교 사원 가람배치의 전범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지난 십수년간 꾸준히 남한의 사찰을 찾아 가람의 진경을 화폭에 담으려 노력해왔던 나그네에게 세월을 거슬러 그 가람의 원형을 찾아 온 길은 실로 감격으로 북받친다.
아, 저 대탑문이 일주문의 원형이고 복발형태의 반구 위 상륜부가 오늘날 탑의 시원이 되고 있음에랴. 즉 반구형의 탑신부 위에 평두(平頭)의 4면체 울타리가 있고 그 위로 솟은 옥개(屋蓋)인 버섯모양의 다층형식에서 탑의 시원양식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이 양식은 인도식 기본형이 되어 간다라(후기 인도식)와 중국의 석조 다층식(파고다), 목조다층식(운강석굴) 등으로 변천되었고, 마침내 한국에 전래되어 새로운 석탑양식을 창출하게 한 것이다.

일주문의 원형은 후일 조선시대의 홍살문으로, 일본신사(日本神社)의 문에서도 응용되는 양식 변용을 간파할 수 있으니 산치탑의 역사를 어찌 기리지 않을 수 있으랴. 한편 붓다 생애를 조각한 수많은 이야기를 살펴보며 대탑을 돌아보자, 쌓아올린 돌마다 당시 발원자들의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 또한 오늘날 기와불사의 전범을 보는듯하다.
이 산치언덕의 불교유적에는 원래 8개의 스투파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제1, 제2, 제3 스투파와 부러진 당시의 석주, 승방의 흔적 등이 역사의 유물로 남았다. 그 중 제1 스투파 남문 옆에 세워진 아쇼카석주가 온전했다면 현재의 인도 국장(사자상)이 연상되는 뛰어난 조각이었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불교초기 가람의 효시가 되는 산치의 유적을 화폭에 담기위해 뛰어다니자 한 박물관 직원이 고맙게도 유적 위치와 도표를 그려준다. 이를 참조로 한국의 가람을 그리듯 산치유적을 화첩에 담는 시간은 실로 감개가 무량하다. 내 일찍이 가람의 인연이 이로써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되고, 마치 업(業)의 바늘에 꿴 실이 되어 세상을 떠돌아 다녀야 했었나 보다.
이제 산치 언덕에서 조금 내려가는 제2 스투파는 제1 스투파(대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발길이 닫는 돌은 B.C 1세기 경에 다듬어 놓은 구들장 같은 세월의 길이다. 연못을 지나 마주한 스투파에서는 발굴시 10명의 스님 사리가 출토되었다 한다.
얼핏 대탑에 비해 매우 단조로워 보이고 장중미도 부족한듯하나 다가서서 탑을 둘
                                               산치탑
러싼 울타리의 릴리프(부조)를 보는 순간, 최고, 최상의 찬사를 아끼지 않아야할 부조(浮彫)의 조형미 앞에서는 기쁨과 함께 전율마저 느껴진다. 지금까지 보아온 부조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 이처럼 다이내믹하고 변화무쌍한 작품이 있었던가. 예전의 감상이 이 다양한 부조앞에 다 밀려나고 망각되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대탑문의 서사적인 고부조에 비해, 반부조, 저부조가 전반을 이루는 다양한 내용은 마치 고대벽화에서 만난 상징과 도형, 그리고 이미지의 합성을 보여준다.
물고기와 연꽃, 코끼리와 새, 악어와 말, 그리고 불교 도상의 법륜과 사자상의 석주 등. 형상을 문양으로 데포름(변형)한 구성력과 자연스런 발상은 실로 만물의 근원과 공생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동물의 성행위와 합성된 도상, 신화적 이미지의 차용, 그리고 재구성이 빚어낸 이 부조 작품들만 찍어서 책을 내어도 세상에서 어떤 불교미술책보다 훌륭한 그림책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이 같은 부조의 전통은 동양에 있어 한대(漢代)의 화상석(畵像石)에서도 찾을 수 있으나 인도 부조의 영향으로 육조(六朝)와 당대(唐代)에 걸쳐 와전(瓦塼)이나 거울 등에 많이 새겨지게 된다.

그런데 제2 스투파에 새겨진 부조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면서 우리 백제(6세기)의 산수문전(山水文塼)과 통일신라(771년)때의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비천상, 그리고 수많은 와당에 빚어진 연꽃 부조의 아름다움이 떠올려졌다. 그 부조미의 정수를 찾아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한국인이 인도 땅에서 마주하는 감회라니.
나는 비로소 순례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산치언덕에 가면 대탑(제1 스투파)의 장엄과 함께 언덕 아래로 가서 제2 스투파의 부조미를 놓치지 마시라. 당신의 인연이 우리 석탑의 시원을 눈뜨게 하고 부조미술의 극치를 만끽하게 해 주리라. 그리하여 과학과 예술과 종교가 행복하게 만나고 있음을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되리라.


글/사진: 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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