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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성지순례-인도 기행
 
 
  파트나 풍광과 바이살리 스투파
 
베살리 수투파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생명의 길과 진리의 빛
   -우리에게‘사리’는 무엇인가?-


다시 만다라의 세계가 펼쳐진다.
파트나(Patna)로 가는 길은 생사(生死)의 투영으로 한껏 나그네의 심경을 잡아끈다. 비하르(Bihar)주의 삭막하고도 처절한 빈곤은 때 아닌 눈보라처럼 시리게 하나, 둘 가슴에 다가와 젖는다.
나팔소리에 차창을 비껴보자 꽃장식 들 것에 실린 죽음이 앞서가고 그 뒤를 따르는 유족들. 그런데 슬픈 표정은커녕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웅성대며 따라가는 모습이 실로 가관이다.

통행세를 내라고 흰 띠를 도로 양쪽 가로수에 묶어두고 두 팔로 길을 막아서는 도로법에 없는 행위들. 곡예하듯 차에 매달리고 차 지붕에 물건처럼 포개진 채 실려가는 사람들의 표정. 때로 눈길이 마주치자 여인들은 사리로 얼굴을 덮어버린다. 한편 무너진 담장에 걸쳐놓은 현란한 빛깔의 빨래, 담벼락에 쇠똥을 붙이는 장면이 스치는가 하면 트랙터에 노오란 꽃을 장식하고 힘차게 일터로 향하는 풍광도 이채롭다.
장터를 방불케 하는 정류장 주변은 마차와 노점상, 걸인과 차량으로 뒤범벅인데 여전히 등뼈가 솟은 소들만은 유유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한 무리의 낙타들이 갑작스레 나타나 도로를 점령하니 모두들 차에서 내려 볼거리에 한동안 신이 났다.
다시 탑승한 차는 파트나박물관에 정차한다. 선사유물과 함께 온갖 동물들을 박제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 소장품들을 화첩에 담는데 군인들이 지키고 선 붓다 진신사리 방은 개인당 100루피를 지불하고서야 문이 열렸다. 델리박물관 이후 2번째 사리친견은 들뜬 여행자의 소회를 한 순간 잊게 한다.
사리는 스투파돔으로 장식한 내부에 모셨는데 그 발상과 이미지가 매우 신선하다. 그리고 사방 벽에는 붓다의 생애를 새긴 아주 우수한 부조들이 걸려있다. 이곳 사리는 바이살리(Vaisali)에서 가져온 것으로 출토지역(바이살리 박물관)의 반환요구로 더욱 경계가 삼엄하다는 후문이다.
차는 이제 갠지스강의 마하트마 간디 다리를 넘어선다. 그리고 저무는 대지와 마을을 향해 끝없는 질주 끝에 아쇼카왕의 이름을 딴 숙소에 머물렀다. 바이살리는 갠지스강을 건너 하지뿌르(Hajipur)의 북서쪽 32km지점에 해당하는데 예전부터 북인도 일대의 교통, 문화, 경제 중심지로 발달한 곳이다.

붓다 입멸 후 약 100년경 계율에 관한 새 해석을 놓고서 행해진 제 2차 경전 결집의 무대가 된 곳이라 한다. 또한 재가불교(在家佛敎)의 태동이라 할 유마거사(維摩居士)의 등장이 시작되는가 하면 기녀(妓女) 암라팔리(Amrapali)가 망고나무 동산을 붓다와 제자들에게 공양한 곳이기도 하다.
이튿날 아침, 여전히 짙은 안개속을 걸어서 제2결집 장소였다는 꾸마라하(Kumrahar) 연못을 찾아가자 부러진 석주만이 흔적을 보여줄뿐 돌계단은 연못에 잠겨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바이살리박물관으로 가는 길목. 모닝커피 대신 따끈한 짜이로 모처럼 여정의 낭만을 풀어본다. 어둡고 눅눅한 나무집에서 아궁이 화덕에 빛바랜 용기로 차를 끓여 따라주는 노파의 손길. 말 한마디 통하지 않지만 따스한 인정은 억겁의 연(緣)이다. 그녀 이마에는 또렷이 붉은 점, 치렁치렁한 팔찌도 붉고 그 마음도 붉다. 일행이 찾은 박물관은 거의 인근 스투파에서 출토된 유물 소장품이라 하므로 그 현장을 향해 곧바로 길을 나섰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사리’는 진정 무엇인가?
붓다의 친견을 대신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한다면 한갓 눈요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순례라는 명분아래 신발만 닳는 수고에 그칠 뿐인즉.
어쨌든 붓다 입멸 후 8등분된 사리를 분배받은 당시의 바이살리 릿차비족은 이곳에 사리를 모시고 스투파를 세웠었다. 그러나 그 후 파손되었다가 1958년에야 발굴된 사리 터가 오늘 찾은 레릭(Relic) 스투파이다.
잘 정비된 도로 끝으로 스투파 돔이 한눈에 들어오니 어제 본 파트나의 사리장치가 떠오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거대한 스투파는 발굴당시 상태를 그대로 노출, 까마득한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중 구조의 원형으로 벽돌쌓기를 했고 양편은 ㄷ자로 돌출한 형태에 중앙은 깊은 홈으로 파였는데, 아마도 그곳에 사리함이 묻혔을 터이다. 이곳을 발굴한 알테카르(A.S. Altekar)에 의하면 발굴당시 이곳 스투파의 기단부에서는 붓다의 유골이 아닌 유회(遺灰) 사리가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일행들이 스투파를 돌며 탑돌이를 진행하는 틈을 타 화첩을 펼치는데, 담장 입구쪽에서 손짓하는 이가 있다.
“이 화백 이리와 봐요. 정말로 멋진 담장을 구경하세요, 그리고 꼭 그려가세요.”
철심으로 만든 투각의 울타리는 자세히 보니 모두 스투파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병렬된 투각의 형상과 이미지는 스투파 지붕선과 함께 매우 잘 조화된 조형미로 빛난다.
나그네는 이 멋진 울타리 앞에서 한국의 문화유산을 떠올려야만 했다. 우리도 우리 문양과 양식을 토대로 한 유물 담장이 이처럼 척 어울리게 개발될 수는 없을까. 이젠 한국의 탑과 부도도 거친 쇠붙이로 ‘접근금지’의 울타리만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이 경우처럼 내용에 걸 맞는 형식을 연구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불현듯 두고 온 고국산천의 보물들이 떠올려진다. 안개 개인 하늘,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모처럼 나그네는 향수에 젖는다.


글/사진: 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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