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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깨어나는 만불, 저무는 대평원 -시방세계로 펼쳐진 法悅-
어느 길목, 휴식을 위해 차에서 내린 일행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몰려드는 곳에 한 노인이 마른 담배잎을 썰고 있다. 녹슨 작두 칼날에 잘게 썰린 잎담배는 흰 물감과 같은 액체를 섞는데 손바닥에 올려서는 매우 비빈다. 이웃의 애연가는 이것을 받아 제 손 안에 넣고 다시 비비더니 입속으로 탁 털어 넣는다. 피우지 않고 씹는담배라니 참으로 신기하다. 담배값으로 즉석에서 몇 루피를 건네니 가게에서 팔지 않는 까닭에 우리처럼 세금이 있을리 만무이고. 이 광경 뒤로 대나무로 엮은 가게 하나. 안을 들여다보자 금이 간 거울과 나무의자 하나, 그리고 몇 가지 세면도구가 늘어져 있으니 소위 이발소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빠지지 않는 신상(神像)의 모습. 벽을 장식한 원색의 사진은 여기 또한 신앙생활의 현장임을 알아차리게 한다.
그러나 이 신(神)의 나라에서 깨달음의 성인, 붓다의 자취를 찾아가는 일행은 눈요기도 잠시뿐 아연 긴장감이 돈다. 이상원 사장(실크로드 여행사)이 다음 일정을 향해 대기한 짚차로 모두 분승하여 갈아타라는 지시에 예닐곱명씩 폐차에 이른 낡은 지프에 엉켜 타고서는 모두 어리둥절 해야하니. 넉 대의 지프가 줄을 지어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들녘과 마을 길을 지나니 사람들이
모두 일어선다. 한적한 농촌 서정이 뭉클하여 헤진 가죽 커튼(가리개)을 젖혀 보지만 워낙 흙먼지가 심해 다만 구멍난 곳에 눈을 비비고 두어 시간을 달려간다. 지금껏 수십 번의 성지 순례에 처음으로 찾는, 벼르고 벼른 불교유적이라는 이 사장의 기대와 흥분은 황량한 들녘에 우뚝 솟은 적갈색 스투파에 와서 차가 멎었다. 바이샬리에서 48km 떨어진 ‘케사리야(Kesariya)스투파’. 붓다의 열반지인 쿠시나가르로 가는 길에 세워진 스투파는 지금까지 보아온 스투파 중 최대의 것으로 높이(15m)와 넓이(30m)가 매우 장대한 장관인데 발굴과 복원공사로 한창 분주한 모습이다.
“붓다께서 카필라성을 출가하여 첫 스승을 만난 수행처가 아마 이곳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또는 붓다께서 열반지로 가기 위해 반세기만에 이곳에 다시 들린 곳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만….” 이 사장의 스투파 건립에 대한 의미부여가 결코 지나치지 않은 것이, 장대한 규모와 발굴에서 기원전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 이를 부언해 준다. 스투파는 뛰어난 건축가의 설계인양 길따라 층층을 오르게 했고 사방 둘레에 감실을 두어 수십 여기의 불상을 봉안했다. 현재까지 24개의 불상을 발굴했다는데 진품은 모두 박물관으로 가고 부서진 불상과 모조품이 감실에 봉안돼 있다. 사방천지 만다라의 세계로 펼쳐지는 부처의 세계, 고른 세상의 빛을 맞이하고 다시 불법을 내뿜는 법열(法悅)이 만개하던 시절이여.
이곳은 큰 지진(1934년)으로 스투파의 윗부분이 점차 내려앉았으며 영국인 컨닝햄의 첫 발굴(1862년)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국가가 참여하기는 1958년에 이르러서였고, 당시엔 방(감실)마다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의 유물로는 아쇼카대왕(BC250년경)때의 것으로 짐작되는 것도 있으나 당시는 무불상시대인
만큼 후대에 점진적으로 설계가 보완된 후에 불상이 안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상으로부터 쌓아올린 벽돌은 중간에 허리띠를 두르듯 변화를 주었는데 마치 배흘림기둥처럼 곡선의 볼륨이 두드러지게 쌓았고 층마다 배수구인 구멍을 낸 것이 스투파 건축의 특성으로 살펴졌다. 아, 그러나 무엇보다 스투파 정상에 올랐을 때 사방천지에 일망무제로 대평원이 이곳 스투파를 향해 물결치고 있음이여!
마치 지금껏 이곳이 성지임을 지켜주기라도 하였단 말인가. 끝없는 대평원의 수목(樹木)은 스스로 원근(遠近)이 되고 지상(地上)의 수묵(水墨)이 되어 풀리고 있었다. 그 풍광은 또 은빛 호수를 드리우고 나뭇짐을 진 여인들이 점경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아스라이 물소떼들이 길을 내며 어둠을 몰아가고 있다. 서녘의 해가 마침내 황금빛에서 다홍빛으로 잦아질 무렵 일행은 서둘러 지프에 올랐다. 되돌아 가야할 집이 없는 나그네들에게 갈 길은 아득한데 돌아보니 대평원의 일몰은 장엄의 극치다. 이 광경을 만끽하기위해 모두들 차에서 내려 해가 지상에 빠지도록 기다리며 응시하는 오늘이 또한 복되다. 저무는 대평원에서 다시 깨어나는 검은 스투파의 자태. 알 수 없는 기운이 대지를 감싸고 나그네의 마음깃을 스친다. 늘 느끼고 감동하는 일이지만 사람은 어느 때 어디서 무엇을 보며 느끼느냐에 따라 세상이 온전히 다른 것임을.
이 황량한 대지, 쓸쓸한 밤길을 붓다께서 혹 걸어가셨을까. 아니면 또 어떠리. 차가 인가를 스쳐가자 모두들 모닥불과 저녁을 위한 삶의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그 어둠속에 깜박이는 눈빛들. 지친 일상에 졸고 있는 마을 그림자가 어둠속으로 명멸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짚차 조수가 중간에 차를 세우더니 가는 길에 어린 아이를 마저 태우고 가잔다. 내가 탄 지프엔 이미 틈이 없고 모두 여성이라 할 수 없이 뒷자리의 내가 그 아이를 받아 겨우 안았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먼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아이가 떨어질세라 두 손으로 아이의 배에 깍지를 끼고 달려가는 긴장의 연속. 어둠속에 갈수록 힘에 부쳐 두려운 생각이 떠나질 않는데 한편 따스하게 배어오는 체온이라니….
내가 인도기행 중 가장 큰 행운이 있었다면 한 시간여 이 인도 아이를 내 품에 안아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사실, 그 뜨거운 체온을 나눈 인연에 감사하고 싶다.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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