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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데칸고원을 지나며 -땅과 사람이 어우러진 하늘 길-
사람은 길을 만들고, 길은 다시 사람을 일깨운다. 어제의 길을 따라 새 날을 여는 삶의 여정, 그 삶의 본질을 찾아 진리의 숲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은 정녕 얼마나 아
름다운가. 그 길을 따라간다. 데칸고원의 대평원. 함께 가는 길은 그리하여 유장하다. 신이 빚은 대지의 숨결과 온갖 동·식물들의 출현, 나그네도 인연의 그림자를 낳는다.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수로와 외길 포장으로 언덕과 산을 넘고 하늘에 닿아있다. 아, 하늘 구름으로 흐르는 길. 포장길 가로수는 피팔라 트리(보리수), 아슈카트리(무우수)와 뿌리가 흘러내린 것처럼 가지가 아래로 뻗어 내린 거대한 밴야느나무 등이 바톤을 이어 달리듯 차창으로 비낀다. 간간이 드러나는 팜트리야자수는 열대 남국의 정취로 아련하다. 가로등과 교통표지가 따로 없는 도로는 가로수 아래를 흰 바탕에 갈색으로 칠해 표지판을 대신하고 있다. 도열한 나무들은 생명의 초병이다.
아스라한 원경으로부터 빨간 모자의 행렬이 이어지니, 성지 순례를 떠나는 힌두교인들의 행렬이란다. 흰 옷이 아니면 모두 윗도리를 벗었는데 거의가 맨발이다. 저 뜨거운 걸음, 신심은 고통조차도 잊게 하는가. 또한 대평원에서 사탕수수를 베는 사람들. 늙은 목동이 막대기를 어깨에 걸친 채 소를 몰고 가는 모습이 모두 한가지다. 그런데 갑작스레 평원의 끝에서 열병하듯 다가오는 사탕수수 우마차의 행렬. 차를 세우고 뛰어 내려보니 진군해 오는 행렬은 그야말로 ‘장엄’의 극치가 아닌가. 흰소, 검은소, 황소마차에 산더미처럼 실은 사탕수수. 그 위에 사람들이 모두 올라탔는데 단란한 가족도 눈에 띤다. 마차의 소들은 하나같이 원색의 뿔로 빨강은 숫소, 파랑은 암소를 구별하여 페인팅 해 놓았다.
이 재미난 인도인의 발상과 낭만기는 거리의 간판, 차량도색 페인팅에서 더욱 실감난다. 인도의 짐차들은 거의 백미러가 없는데 있다손 치더라도 짐을 많이 실어서 아예 뒤가 보이질 않는다. 따라서 추월하려면 반드시 경적을 울려야 하는데 ‘PRESS HORN’ 혹은 ‘BLOW HORN’ (경적을 울리시오) 글씨가 차 뒤에 어김없이 써 있다. ‘메라 바러트 마한’ (거대한 나라 인도) 식으로 자존심을 표현하는가 하면 따라오는 차에 무슨 대단한 볼거리를 주는지 ‘레크떼 라호’ (계속 봐!) 따위의 농이 섞인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현란한 색채. 원색의 사리물결처럼 차량은 온통 그림문양으로 뒤범벅이다. 달리는 설치미술이요, 움직이는 만다라다. 따라서 개성이 살아 숨쉬고 존중되는 것, 자기 표현과 애정이 함께 살아나는 일이 흥미롭고 부럽기조차 하다. 황량한 광야에 쏟아지는 햇살, 게으른 안개가 걷히고부터 초목은 다시 싱그럽고 길은 가슴속을 연신 투사한다.
오랑가바드의 엘로라 석굴 가는 길. 한 떼의 시커먼 물소들이 길섶으로 몰려 꾸역꾸역 서둘러 가니 이 또한 장엄하다. 산천의 장엄, 생명의 장엄, 거리의 장엄 물결이 무지개 빛으로 떠오르고 대지의 기운은 갈 수록 숨가쁘다. 또 화첩을 든 손끝이 잦은 마찰음을 낸다. 화장실이 없는 대평원에서 볼일을 보는 일이란 문화유적을 찾는 일 만큼이나 중요하고 또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은폐할 수 있는 나무숲과 차도와의 거리. 차를 중심으로 남녀가 갈라져야 하는 절묘한 행간이 인도에서는 너무나도 다반사다. 사내들은 큰 나무를 찾아가고 여자들은 언덕 아래로, 숲으로 사라진다. 여기저기 소똥천국, 분뇨 천국, 지뢰를 밟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타이르며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하고 싱겁게 씩 웃고서야 차에 오른다.
여행은 늘 배가 고프다. 끊임없이 변주하는 풍광의 살속을 헤매느라 자신도 모르게 지친다. 그래서 마냥 시장기다. 일행들이 식당을 빌려 점심을 준비하는 사이, 식당 뒤로 볼일(?)을 보러 갔다가 가난한 민가를 발견하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난민촌 같은 집은 온갖 자재를 주워 엮었는데 나무에 빨래줄을 걸어 늘어놓은 원색 사리가 눈부시다. 마당 끝에 무쇠솥 아궁이와 마른 나뭇단이 흩어져 있고 불씨는 꺼져있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출현에 사내와 아이들이 문을 열고 나오니 네웨다스(35세)씨 가족이다. 막내아들을 그리고 싶어 허락을 얻고 손짓하자 아이는 막무가내로 울음보를 터트려 무척 당황스럽다. 낮선 자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일까. 이 쓸쓸한 집에서 자란 아이의 표정에 괜스리 가슴이 찡해온다. 어쩔 수 없이 미안함을 표하고 그냥 돌아 나오는데 아이는 사립문에 기대어 내내 나의 뒤통수를 따라왔다. 그 눈빛,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이 지금도 오롯하다.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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