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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성지순례-인도 기행
 
 
  기원정사 길목의 여정
 
기원정사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사탕수수 바람속으로

  -원시의 삶에 비친 만다라 세계-


붓다의 다비장(라마브하르 스투파)에서 한국의 절, 대한사로 가는 길.
절 입구에 세운 입간판은 하나를 네 개로 분할했는데 태극기와 대한사(글씨), 인도기와 불기를 하나로 엮은 것이 인상적이요, 특별한 디자인 감각이다.
이역만리 땅에서 1991년에 터를 잡았다는 절은 한 스님(性觀)의 헌신, 한 생을 바치려는 열정으로 가꾸어지고 있었다. 마당에는 비지땀을 흘리며 돌을 깨는 현지인들. 먼 옛날 인도에서 동해로 흘러온 불교가 이젠 그 흐름을 거슬러 한국인의 의지에 인도인이 동참하는 역사, 다시 만개할 세계일화(世界一花)의 꿈!
일행들이 한 동안 불사에 동참하는 사이 절 주변을 둘러보자 저 멀리 담장너머로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숨차게 달려가 살펴본 즉 사탕수수 줄기를 끓여 설탕을 만드는 광경이 아닌가.
대나무처럼 곧게 쳐낸 줄기들을 기계 속에 넣어 잘게 분쇄하고 그것을 우물같이 둥근 거대한 돌솥에다 물과 함께 풀고는 불을 때 푹 고는 장면이다. 수공으로 설탕을 만드는 풍광은 그야말로 인도의 체취로 뭉클한데 멀리서 보았던 연기는 사탕수수를 고는, 구름바다 같은 수증기였다.
사탕수수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수수와 비슷하며 회백색 꽃을 피운다. 줄기에서 짠 즙을 고아 설탕을 만드는데 인도 갠지스강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고 열대, 아열대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는 식물이다. 사탕제조는 물론 이거니와 주스로도 마시는 인도 농경지역의 생계수단 이요, 생필품인 것이다.
이제 기원정사(祇園精舍)를 향해 길을 떠나니 사탕수수의 바람은 어느새 사방에서 몰려온다.

안개와 먼지, 쇠똥과 목가, 만다라의 삶과 예술, 성자와 걸인, 경적과 침묵, 원시의 풍경과 삶이 묻어나는, 시간을 잃은 신의 나라에 더 하여 ‘사탕수수의 나라’로 부르고 싶은 인도.
광활한 대지에 끝간데없이 펼쳐지는 초원은 어김없이 사탕수수의 물결로 하늘 향해 손짓하는 수직과 수평의 상응(相應). 바람이 어지러이 훼방을 놓는 만큼 더 웃자라는 진초록의 향연, 실로 거침없는 대지의 노래여.
앞을 보니 또 사탕수수의 진군. 트럭 위로 쌓을 수 있는 데 까지 높힌 사탕수수 더미는 예전 데칸고원을 지르며 마주쳤던 우마차의 장엄과는 또 다른 감동이다. 백미러가 무용지물임은 당연하고 저 위태로운 덩치와 키로써 질주하는 사탕수수의 진용(陣容)을 대체 무엇으로 막으랴.

군데군데 마을마다 드러나는 사탕수수 기계는 집집마다 등불 같고, 길 주변 호수에 비친 풍광은 길 따라 대지와 하늘을 바꾸어간다. 거꾸로 보는 세상, 인식의 일탈.
염소와 양들이 풀을 뜯고 쇠똥으로 온통 외벽을 치장한 듯한 ㄱ자 집들이 즐비 한데 우람한 고목에 빈대떡처럼 붙여놓은 쇠똥. 그 나무 뒤에 숨어 손을 흔드는 붉은 사리의 소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새카만 아이들이 열지어 가다 손을 흔들어 주면 마치 무슨 함성을 지르듯 반기며 눈빛이 반짝인다. 어느 생인가 한번쯤은 마주했을 인연이련가.
이제 저무는 언덕 햇살 속에 쇠똥을 거두는 아낙들. 그 쇠똥을 소쿠리에 이고 둑길로 걸어오는 소녀들. 어릴 때부터 쇠똥을 분료로 여기지 않고 생활자원으로 인식하여 살아온 저들에게 나그네는 마냥 이방인일 뿐이다. 긴 막대를 이용하여 숲 속에서 망고를 따는 늙은이 주변에 검은 소. 한 쌍의 왜가리가 그 소등에 올라타 펄럭이며 나래 펴는 장면이라니...


인종과 국경, 그 장벽을 넘어 인간본연의 가슴으로 흘러들고 나는 반가움과 그리움 앞에서 나그네는 절망한다. 차마 붓끝으로 형용할 수 없는 이 공허감에서 부르고 싶은 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 1805). 그가 만약 이곳을 지났다면 어찌 했을까.
촌철살인(寸鐵殺人), 포복절도(抱腹絶倒), 아포리즘(aphorism)의 달인인 연암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여행의 기록이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찐한’ 접속이고, 침묵하고 있던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견의 현상이며, 새로운 담론이 펼쳐지는 경이의 장이다.
주체도 대상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강렬한 흐름만이 범람하는 광야 혹은 평원. 때론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한가 하면, 때론 장중하고, 또 때론 한없이 애수에 젖어들게 하는 , 마주치는 것마다 강렬한 악센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공간적 편력, 그것이 『열하일기』다.”(고미숙)

그는 또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고 하였거니와 내 어찌 코앞의 생(生)을 놓고 여행기나 풍문에 빗대어 그려갈 수 있을까. 차라리 무지의 소치를 범할지언정 그림자 흉내는 거두어야 하리. 따라서 연암은 내게 절망과 함께 용기마저 선사한다. 인도의 생생한 기류 속에 자신을 던지라고, 그냥 너의 붓을 들라고.
잠시 지나온 풍광이 상념 속에서 아릿한데 이번엔 코끼리의 행차다.
가로수를 정비하는 용역을 사람이 아닌 코끼리에게 맡긴 셈인가. 코를 높이 들어 삐져나온 나뭇가지를 코로 감아 자르는 일이 너무도 신통하다. 드물게 보는 장면이라 차를 내려 다가가니 코끼리를 탄 주인이 서커스 흉내를 낸다. 루피를 의식한 탓에.
그 광경이 가상하여 루피를 내밀자 코끼리가 날름 코로 받아 말아 올려서는 주인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않는가. 모두들 영물이라고 찬탄하며 변절의 세상에서 모처럼 주인을 위해 사는 ‘충직’을 떠올려야 했다.

서서히 잦아드는 어두움. 사탕수수도 칼바람으로 날이 서 가는 시간, 아기를 앞가슴에 품고 짐을 머리에 인 아낙이 귀로를 재촉하고 있다. 그 어둠 속에서 눈썰매를 끌 듯 형이 등에 줄을 매 동생을 태우고 들길을 가는 정다운 모습이 또 아슴푸레 하다.
마침내 종일을 달려온 여정의 끝, 숙소에 이르는 시간. 복작거리는 간이 시장은 어느새 불빛으로 출렁이는데 과일을 사러 둘러보니 사탕수수 즙을 짜서 파는 상인들이 눈에 띤다. 인도의 사탕수수는 사방천지, 밤낮으로 그 바람이 잦다.


글/사진: 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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