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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국경너머 붓다의 고향으로 -경계 넘어선 또다른 마음의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중에서)
붓다의 고향으로 가는 길.
육신의 백골은 삭았으나 혼백이 서린 진신 사리가 출토된 곳. 수십일 전 델리박물관에서 본 붓다의 사리용기가 이곳에서 발굴된 피프라하와(PiprahWa) 승원터. 그곳은 붓다의 탄생지인 룸비니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1898년, 승원터의 스투파를 발굴했을때 사리용기엔 “이것은 샤카족의 붓다 세존의 사리용기로서, 그의 형제자매, 처자들이 모신 것이다” 라고 브라흐미 문자로 씌어져 있으니 아마도 세존 입멸 후 8등분한 사리 중 샤카족에게 할당된 사리가 모셔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망고숲이 울울창창 울타리가 되고 있는 승원터는 넓고도 시원한 시야로 거침없는데 들녘에서 불어오는 훈풍, 더없이 푸른 창공을 바라보며 거니는 깨끗한 대지의 초록 물결이여. 그 파문은 마음속으로 잦아들다 다시 솟구치며 무슨 소리를 내는 것만 같다. 순례를 겸한 산책코스는 이제 인근의 간와리아(Ganwaria) 유적지로 길이 열린다. 이곳은 궁성터로 붓다의 조국 카필바스트(Kapilvastu)가 당시 강대국인 코살라(Koshala)에게 멸망한 후 유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한 곳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국경 너머 네팔땅에도 카필바스트가 있으니 사실상 두개의 카필라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국경과 유적 발굴을 놓고 시시비비가 있을 법한데 오늘은 인도 땅의 카필라성터에 인연이 닿았다.
사방으로 난 성문터에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벽돌 구조물. 당시의 건축과 생활 가옥을 살피는데 문외한의 눈에도 아주 중요한 유적으로 느껴진다. 어느 방에 정반왕이 앉았고 마야부인의 그림자가 있었을까. 아기 싯다르타의 숨소리와 씩씩한 청년이 되어 활시위를 당기던 곳은 어디쯤일까. “푸드덕” 후투티 한 마리가 성터에서 솟아오르니 내 상상의 나래짓도 따라 시공을 초월한다. 차는 이제 국경을 향해 달린다.불조(佛祖)의 탄생지로 가는 길은 어머니 품속으로 다가가는 길인 것만 같다. 마야부인을 떠올리며 ‘여성은 위대하다’고 작가(박원자)와 정담을 나누며 가는데 땔나무와 사탕수수를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들의 곤고한 삶의 모습이 노을빛에 저물어 간다.
강을 건너고 국경에 도착한 시간이 6시15분. 벌써 사위는 어둠에 깔리기 시작하는데 수속이 복잡한 듯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무장한 군인과 지렛대 하나만 걸쳐놓은 국경의 풍경은 실로 낭만적이다. 지렛대는 무거운 돌을 달아매었고 장대 끝줄은 가로수 나무에 매달아 놓아 통과 시에만 줄을 푸는 것이다. 13년 전(1991년) 법정스님의 사진(<인도기행>)의 장대가 이제 교통표시 페인트칠로 변했을 뿐 국경의 문은 여전히 단조롭다.
백미러엔 그새 불어난 통관 대기차량이 즐비한데 조각달이 허공에 걸린 시간, 갑자기 붉은 승복을 입은 베트남 비구니 스님(짬바; Jampa)이 차에 오르지 않는가.사정인즉 룸비니행 차편을 놓쳐 같은 방향이면 태워달라고 부탁하기에 마침 내 옆자리가 비어있어 스스럼없이 권하였다. 나이(30세)보다 훨씬 해맑은 눈빛을 지닌 스님은 의과대학 출신으로 출가했고 달라이라마를 스승으로 수행중이라 한다. 지나온 기행 화첩을 보여주자 매우 반색하는 순간, 언어의 장벽은 사라졌다.
잠시간이지만 낯선 국경(인도-네팔) 앞에서 국가를 초월한 만남에 고무되어 나는 엽서에다 스님의 모습을 그려드렸다.그런데 이어 송암 스님께서 적지 않은 보시금을 만행길 노자로 쓰시라고 짬파 스님께 전달하는게 아닌가.“한국은 베트남에 진 빚이 많습니다. 그 빚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일순간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월남전 참상이 떠올랐다. 전쟁고아로 성장해 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찾아온 월남 청년. 첫사랑의 비련만 남기고 떠나간 한국 군인의 낡은 사진을 들고 통곡하는 월남 여인의 눈물을 무엇으로 치유하랴. 그 비극 앞에서는 우리 모두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어야 하리.서늘한 국경의 밤에 뜨거운 사연을 실은 차는 마침내 어둠을 헤쳐 룸비니 주변 숙소인 한국사원 대성 석가사에 이르렀다.
순례객을 웃음 띤 얼굴에 두 손으로 맞아주는 법신(法信) 스님. 룸비니 손님은 의례
석가사에 묵어갈 수밖에 없는 사정은 한국 절이라서가 아니라 스님의 수행생활, 즉 10년 넘게 불사를 지속해 온 원력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건물은 룸비니 지역의 기후변화로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지만 건축양식은 한옥의 이미지를 구현하려고 한단다.
이에 스님은 절을 짓기 위해 설계를 배우고 직접 가마를 설치, 기와를 구어 왔다고 한다. 공사 감독에다 연일 순례객을 현지답사로 안내하는 일들이 산적하지만 활달한 유머감각에 긍정적인 사고는 누구에게도 친화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스타일이다. 늦은 밤잠에 쉬이 온 새벽. 스산한 새벽 기운에 잠바를 걸치고 지난 밤에 제대로 보지 못한 도량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도대체 저 거대한 불사가 한 스님의 발원으로 시작되었단 말인가.
다시 살아난 한국의 수닷타 장자! 법신스님.아침 식사 후 승차를 기다리는데 잿빛 승복의 두분 스님이 다가와 인사를 청하니 바로 자현(慈賢), 등운(騰雲) 스님이 아니신가. 수년전 부석사 전경을 그릴 때 봉황산을 함께 타며 다담(茶談)을 나누었던 그날의 인연이 룸비니로 이어지다니….어쩌면 오늘의 해후는 모두 ‘또 다른 고향’을 찾아 떠난 나그네들의 만남이 아닌가도 싶다.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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