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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룸비니의 빛과 바람속에서 -보살정신 가득한 깨우침의 현장-
인도 대륙을 횡단, 여행길에 지친 몸으로 네팔 국경을 넘어 룸비니의 한국 절(대성 석가사)에 오면 모두들 고향에 온 듯 회생의 눈빛이 역력하다. 따뜻한 법신 스님의 환대와 된장국밥에 김치를 대접받을 수 있으니 순례객의 거친
입맛은 생기를 얻고 장기간의 피로도 자연히 풀린다. 룸비니를 찾은 순례의 인연만으로도 응시의 눈빛은 따사롭고 합장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공경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스님은 반대로 철저히 인도식으로 산다.
절집 안에 현지 인부들의 숙소를 마련한 바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인가. 순례객에게는 한국 음식을 제공하고 스님은 짜파티와 인도 카레 한 접시를 남몰래 2층 난간에서 손으로 드시는 것을 나는 목격해야 했다. 가랑비에 옷 젖 듯 지난 세월의 나이테가 뭉클한 수행자의 변모.그 스님을 길라잡이로 여러 지역에서 온 순례객들이 버스를 나누어 타고 룸비니 주변 불교 유적탐방에 나섰다.
한 시간여 달린 차에서 내려 걷는 길은 푸른 녹두 밭길이 초원의 빛이 되고 망고, 보리수나무가 당산나무처럼 마을 어귀를 맞이하고 있었다. 허연 동물뼈에 몰려드는 까마귀떼를 보는가 하면 일행을 따라오는 마을 아이들의 긴 행렬은 마치 한 줄로 소풍 가는 장면처럼 아름답다.
먼저 옛 석가족의 공화국으로 알려진 틸라우라코트(Tilaurakor)마을의 카필라바스트. 즉 인도와 또 다른 카필라성터를 찾아가자 왕궁터로서의 위용이 아침 안개에 비껴 서서히 드러난다. 진정 이곳이 싯다르타 태자가 29세 때까지 성장한 곳이며 궁전을 나와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해 깨우침을 구하던 현장이란 말인가.비구들이여, 나는 행복했고 티끌만큼의 괴로움도 몰랐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범부는 스스로 늙어가면서 남이 늙는 것만 보고 자신의 일은 잊은채 그 늙음을 혐오한다. 자신 또한 늙어가는 몸이다. 아직 늙음에서 벗어날 길을 모르면서 남의 늙음을 혐오해도 되는가? 이는 결코 마땅한 일이 아니다.비구들이여. 내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내 청춘의 교만은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다.(<유연경>)출가 전 싯다르타 태자 심정을 새삼 떠올리며 논둑길을 따라가니 아버지 정반왕과 어머니 마야부인 무덤 터로 알려진 둥근 스투파 유적이 눈에 들어온다.
길은 마을과 논밭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초가와 흙벽돌로 지은 앞마당은 온통 볏 집으로 가득하다. 어느 집은 집채만큼 볏단을 둥글게 쌓아 놓았고 쇠똥도 그득하다. 순박한 눈빛들은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와 함께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 무엇보다 소년, 소녀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스님에 의하면 이곳 네팔 아이들은 열 살에 약혼, 열다섯이면 결혼하므로 스무 살이 되기 이전에 이미 가정을 꾸려간단다. 농촌 사정상 5% 정도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므로 일 자체가 학교생활로 여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가난한 마을 아이들을 위해 스님은 자주 학용품을 선물하고 글과 노래도 가르치는 일을 지속해 오고 있다.그런데 길을 따르는 아이들 눈빛과 인상은 검은 피부의 인도 아이들에 비해 한층 맑고 싱그럽다.
큰 눈망울을 지닌 검은 머리의 한 소녀는 붉은 옷감으로 자신과 아이를 보자기 싸듯 함께 묶은채 일행을 졸졸 따라오는게 아닌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곳 아이들은 손을 내밀거나 루피를 바라지 않는다.정다운 마을 정경을 만끽하며 걷고 걸어서 다달은 곳이 쿠단(Kudan).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6년만에 아버지 정반왕을 찾아 해후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무엇보다 사원터 벽돌 문양이 장식적인데 지금은 쉬바의 링가(남근모형)로 대치된 유적이 존재하고 있다.다시 비포장 외길, 오른쪽 수로를 끼고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을 응시하며 다달은 곳은 고티하와(Gotihawa) 유적지(현재 현겁 제1 구류손불 탄생지로 추정). 하지만 마을 중심부에 부러진 석주만이 길손을 반기니 안타까운 심정으로 화첩을 매만진다.
이제 왔던 길을 도로 거슬러 니그리하와(Niglihawa) 유적지(현재 현겁 제2 구나함모니불 탄생지로 추정)에 도달하자 두 조각으로 갈라진 아쇼카 석주가 누워 있는데 명문(銘文)과 두 마리의 공작새가 세련된 문양으로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장시간 도보길이 크게 힘들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까닭은 자연풍광과 이곳 마을 서정이 마치 옛 사랑의 추억처럼 아련한 탓이리라. 드디어 마지막 여정은 붓다의 석가족이 멸망했다는 사가르하와(Sagarhawa)로 불리는 들녘. 당시 코살라국의 공격으로 석가족이 몰살당했다고 추정되는 발굴터는 그야말로 황량하기 그지없다. 물 고인 연못에 되비치는 동산의 나무들. 마치 거울을 통해 옛 모습을 그려보라고 순례객에게 주문하는 듯, 단지 무심한 바람결에 소떼들만이 풀을 뜯고 있다.
왕의 아들로서 태어난 싯다르타가 끝내 ‘위대한 포기’를 선언해 버린 이면에는 조국을 향한 열정보다도 벅찬 인류애의 보살정신이 간절했던 것은 아니었을까.그리하여 그가 바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성인으로, 역사속의 인물로서 걸어 나와 다시 우리 앞에 만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위대한 포기’를 통해 진리의 길을 걸어간 수많은 붓다와 선지식들.
그중 한분의 출가시를 조용히 되뇌어 본다.
하늘에 넘치는 큰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성철 스님, 24세 입산 출가 시)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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