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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성지순례-인도 기행
 
 
  룸비니 동산에서의 사색
 
룸비니 동산에서의 사색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붓다의 탄생을 다시 기리며 
“…나 홀로 존귀하도다” 외침 들리는듯"


이른 새벽, 마침내 훗날 붓다가 되는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난 곳. 룸비니 동산을 찾기로 한날, 새벽예불은 내 영혼의 작은 심지를 흔들어 놓았다. 아니 빛을 발하며 타오르는 촛불 아래로 흘러내리는 촛물처럼 내 볼을 타고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화첩기행의 여독과 향수 때문도 아니오, 참회의 시간만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알 수 없는 눈물은 마음속 깊이 흠모해온 어떤 존재와의 인연. 그 만남이 시공을 초월, 뜨거운 감격으로 한순간 북받쳐 올랐던 것 같다.삼월이 오면 온갖 꽃이 피고 싱그러운 초목아래 새소리 가득하다는 동산은 만국기 물결로 출렁이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붓다의 탄생을 찬탄하는 축제의 판타지아처럼 느껴진다.한편 룸비니 유적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붓다 탄생을 기리는 마야부인 사원과 연못, 그리고 탄생지 기원을 알려주는 아쇼카 석주이다.동산이름은 마야부인의 친정어머니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니 위대한 외손을 낳은 딸의 어머니로서 큰 예우를 해주는 셈이다.

자식은 부모가 낳은 작품(?)이라는 입장에서 모태(母胎)의 사랑과 헌신은 언제나 위대하다.“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 하도다(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나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三界皆苦 我當安之).”아기 태자가 태어나 일곱 발자국을 옮기며 외쳤다는 최초의 발언은 ‘스스로 세상에 귀한 존재가 되어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결의에 차 있으니 청년 싯다르타의 출가와 이후 견성을 이미 예고한 바나 다름없다.
불조(佛祖)의 탄생은 따라서 일찍이 전생에 정업(淨業)을 닦아 세상에 나툰 이유만으로 그의 존재는 깨달음을 얻어 사바 세계를 향해 걸어가야 할 타당성이 성립되는 것이다.“석가는 깨우친 순간 중생에 대한 미칠듯한 그리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따라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우친 것은 참으로 깨우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깨우침이었다면 이제까지는 혼자서도 살 수 있을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부터는 죽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우침이었습니다. 사랑이란 궁극적으로 ‘너 없이는 못살아’라는 느낌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그래,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구나…나 넓은지를 몰랐구나. 나 깊은 줄을 몰랐구나.나 높은 것도 몰랐구나.”(윤구병 ‘부처됨의 어려움’중)위 글의 통찰이 왜 오늘 따라 간절해 오는지.

붓다의 탄생지에 와서 유물감상도 좋지만 진정 불조 탄생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또 얼마나 귀한지.날은 오늘 따라 화창하여 오색 만국기가 거대한 보리수들 사이로 춤 추는데 나무아래 주저앉아 화첩을 펴고 보니 아기 왕자가 목욕했다는 연못과 그 주변의 발굴 유적, 그리고 아쇼카 석주가 아스라이 드러난다.
아쇼카 석주에 새겨진 글을 통해 붓다의 탄생지로 밝혀진 사실(1896년 독일 고고학자 휘러의 발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야다시(아쇼카)왕은 즉위한지 20년이 지나 이곳을 친히 참배하였다. 여기서 붓다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이곳에서 위대한 분이 탄생했음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기리어 룸비니 마을은 조세를 면하고 생산물의 8분의 1만 징수케 한다.”그 옛날 룸비니 동산을 성역화 시킨 왕이 아쇼카이고 오늘의 나그네는 그의 걸음을 따라왔으니 만남도 세월속 바람처럼 흐르는 것일까.
그리고 그 바람속의 오늘. 녹야원에서 만났던 순례객들이 또 반기니 말없이도 바라보는 눈매들이 고웁다. 이래저래 딴 짓(?)을 하는 나는 어느 곳에서나 발각되고 관심을 끌게되는 팔자이려니.마야당안을 둘러보자. 잘 알려진 대로 사라수 나무를 잡고 아기를 잉태하는 마야부인의 ‘붓다 탄생’ 조각이 눈길을 끈다.

인도신화에선 바라문은 신(神)의 입으로, 왕족은 신의 옆구리로, 바이샤는 신의 배로, 수드라 천민은 신의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하니 왕족인 싯다르타는 이미 신화적으로도 합당한 경우이다. 탄생설화를 빼고 나면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하는 조각상이련만 향을 사르며 경배와 더불어 자신의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들로 연일 초 만원이다.이 위대한 탄생조각 앞에서 최초로 선언했던 아기붓다의 외침을 다시 되새겨 본다.

결국 ‘이 세상에서 나 아닌 것이 없구나’가 ‘이 세상에 나 아닌 것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나는 (결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이로써 모든 세상의 지혜와 자비가 하나로 완성될 수 있는 그날까지 수많은 부처가 뜻을 이어 이 땅에 도래해야할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동산을 떠나오며 내가 만나고자 한 붓다는 룸비니에만 계시지 않고 온 누리속에, 우리의 가슴속에 있으며 그 생명의 씨앗이 저마다 싹트고 있음을 자각해야 했다. 그리하여 내 존재의 존귀함이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새삼 깨닫게 한 시간이었다.


글/사진: 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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