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
| |
|
|
|
|
|
|
| |
|
[인도성지순례] [인도그림기행] 새날 위해 어둠에 가리워진 히말리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늘 저희는 룸비니를 떠나 이제 히말리아로 떠나겠습니다.”오! 히말리아.
가이드 라젠싱의 한국 발음에 꽤 익숙해진 일행은 모두들 설렘속에 일렁이는 눈빛이 역력하다. 네팔의 수미산(須彌山). 히말리아의 아나푸르나. 그 산빛이 어느새 그리움으로 성큼 다가서는 것이다. 상기된 여정은 아침 일찍 마지막으로 스투파 하나를 더 찾은 다음 떠나기로 했다.마야 부인의 친정인 콜리아족이 살았던 곳에 건립되었다는 라마그라마(Ramagrama) 스투파. 짙은 안개와 싸늘한 날씨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데 둘러보니 그새 어디서 몰려왔는지 아이들의 눈망울이 올망졸망하다.
무엇보다 라마그라마는 붓다 입멸 후 사리가 분배된 8개국중 한 곳에 세워진, 원형이 훼손되지 않은 스투파로 지목되고 있다. 정비되지 않은 스투파의 이미지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두 거목의 뿌리가 스투파를 파고든 것에서 더욱 상징적이다. 또 나무에 걸쳐진 만국기는 룸비니동산의 추억으로 새록한데 스투파 주변을 도는 순례객의 정경이 살아 숨쉬는 그림이다.
이제부터는 종일 차를 타고 해질녘까지 포카라(Pokhara)에 당도하는 여정인데 군데군데 쉬면서 지나온 순례의 의미와 성과를 각자 돌이켜 볼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런데 나그네는 여전히 새로운 만남에 눈길과 느낌이 살아오른다. 거리의 풍경 중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단연 영화 포스터인데 마치 거대한 대자보 같다. 가난한 마을에까지 벽보를 대신하는 컬러 포스터는 하나같이 전쟁과 사랑의 메시지여서 사내 주인공은 용맹스럽고, 여배우는 비련의 여인상으로 물씬 배어있다. 길은 산길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달려나가는데 히말리아 포카라행 길목의 나가여니강이다. 강은 산을 가르지 않고 산의 성장을 도와주는 젖줄이다. 아니 산이 흘린 눈물을 모두 받아주고 대지를 적시는 어머니의 품성이다.유유히 그 강을 따라 나그네도 흐른다. 안개 걷힌 청명한 오전, 산길은 쏟아지는 숲 사이의 햇살로 투명하다 못해 눈부시다. 산과 다랑이 밭 아래로 에돌아 가는 청록빛 강물은 햇살의 파장으로 때아닌 은하수가 되어 출렁인다.
그 순간 불현듯 한국의 동강(東江)이 떠올랐다. 수년간 발품을 팔며 동강을 걷고 걷던 일. 그 걸음이 ‘동강 12경과 전도(全圖)’로 까지 이어졌던 일이 전생의 일처럼 스쳐간다. 누가 그랬다. 기억의 모두는 전생이요, 자각하는 현실까지가 역사라고.“아무리 일정이 빠듯해도 그렇지, 저 강물을 두고 어찌 그냥 지나친단 말입니까.” 나의 다그치는 호소에 “예, 그렇지 않아도 강변 어디쯤에서 도시락을 풀 예정입니다. 조금만 참으세요.”내 부족한 인내는 마침내 일행들이 따사로운 햇살아래 강을 바라보며 따끈한 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푸는 새 서둘러 강변으로 달려갔다.
백사장의 모래는 그야말로 금싸라기. 온갖 보석이 부서져 강가에 지천으로 깔린 듯, 손가락사이로 빠져 흐르는 감촉과 빛깔은 무엇으로도 형용키 어려운 체감의 극치로 잠겨왔다.나는 어느새 한줌의 모래를 검은 필름통에다 담고 있었고 전생의 기억처럼 한국에 와 붓을 든 오늘, 그 통을 열어 추억의 무늬가 박힌 보석을 새삼스레 바라
보고 있음에랴.
나는 그 날 아이가 되어 마음속으로 불렀다.“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마치 추억처럼 몰려든 아이들은 하나같이 내 어린 유년의 벗들, 그 얼굴을 꼭 빼닮았고, 황토벽에 초가지붕을 한 집은 흡사 예전의 한국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차는 갈 수록 솟아오르고 산길이 깊어지자 강물은 어느새 숨어버린다. 휴식을 위해 소담한 마을에 내려 둘러보니 이곳에서도 몽골리안의 생태는 끈끈한 이웃의 모습으로 모두 정답다. 낯설어 하지 않음은 그들도 마찬가지. 이마의 붉은 점과 현란한 옷을 빼고는 우리 산골의 얼굴과 그야말로 닮은 꼴이다.손녀를 품에 안고 머리 손질을 하는 할머니. 아궁이에 걸쳐진 무쇠솥. 둥근채에 쌀가루를 손으로 이기는 아낙. 다만 물동이 대신 이마에 두른 지게끈으로 짐을 지고 가는 여인들이 낯선 풍경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옛 점방같은 곳에서 간식을 사던 일행들이 사진 찍기에 열중하니 젊은 여인이 아주 부끄러운 얼굴로 일행을 응시하고 있다.멀드가뜨 마을의 원더나(20세)는 마치 우리 누이동생처럼 친근한 얼굴인데 해맑고 수줍은 미소에다 우수 어린 눈빛에 반해 일행들이 포즈를 취하는데 의외로 여성이다. 나 역시 궁금하여 통역을 청하니 결혼은 했으나 아이가 아직 없는 신혼 여성이란다.예정대로 차는 큰 차질없이 땅거미가 짙어지는 시간 포카라에 당도했다. 어둠이 깔리는 포카라 호수는 흘러내린 강물의 원천수처럼 넓고 검푸르게 대지를 물들이는데 집시 마냥 작은 현악기를 퉁겨대는 행상들이 달려든다. 한편 어둠속 호수는 근경의 산빛이 겹겹 수묵화가 되어 가물거리고 작은 배들의 파릿불은 길손의 방랑끼를 더욱 고조시킨다.
마침내 돌아보는 하늘 아래엔 어둠에 휩싸인 히말리아. 어쩌면 히말리아의 새날을 열기 위해 오늘 하루의 커튼이 지금 막 내려졌을 것이란 생각으로 안도하고 내일을 희망한다.적막한 호수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시간, 나가여니강을 거슬러온 여정이 어찌 강물의 시간뿐이랴. 그 동안 순례의 지남(指南)속에 이끌린 감동과 감회. 그 사연의 얼개들이 강물에 풀리듯 내 영혼속으로 흐르고 있음을
글/사진: 이호신 <현대불교미디어센터 ⓒ 1995-2006>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