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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 순례
고려초 법안종 중심사찰 대표적 폐사지로 꼽혀 삼층석탑·불대좌가 조화…애잔한 모습 잇단 석물발견, 보호구역 추가지정 시급
지난 68년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원주 거돈사터. 왼쪽이 보물 750호인 삼층석탑, 왼쪽이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불대좌이다. ◇‘원공국사승묘탑’이라 불리는 지종스님 부도(보물 제190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세워져 있다. ◇폐교된 정산초등 교정에 외롭게 누워있는 당간지주 한짝(9.6m). ◇삼층석탑 전면에 놓인 배례석에 새겨진 연꽃문양. ◇사지 왼쪽편에 모셔져 있는 석조물들. 거돈사의 역사를 증언해준다. ◇원공국사 지종스님의 비(보물 제78호).
거돈사(居頓寺)터. 전국의 폐사지 가운데서도 대표적 폐사지로 손꼽히는 바로 그 절터다. 분명 폐사지이기는 한데 황량한 느낌보다는 꽉 채워진 정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여느 폐사지를 답사할 때와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공허가 주는 충만함, 바로 그 재미에 오늘도 폐사지를 찾는 부류가 생겨나고, 거돈사 터는 그 버릇을 들이는 첫 관문의 노릇을 하는 것이다. 만신의 무속인들이 돗자리를 들고 신령한 기도처를 찾아 헤매듯 폐사지 답사 여행도 무엇엔가 홀려 산하를 뒤지는 반쯤은 제 정신이 아닌 짓이다. 언젠가 세월의 저쪽에서 향촉을 밝히고 소지(燒紙)를 올렸던 흔적들, 그 불탄 영험들이 시무상주(是無上呪)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가 되어 21세기에도 손길을 뻗치는 것이다. 남한강 가에 널려있는 무수한 절터들을 일일이 다 살피기는 어렵다. 원주 문막 일대만 해도 지난 371호에 다녀온 법천사를 비롯 거돈사, 흥법사 등 이름하여 3대 폐사지가 있고, 목계나루 청룡사 터, 안성 봉업사 터, 충주 중원의 탑평리7층석탑, 여주의 고달사 터와 이포나루 계신리 마애불, 수몰된 정토사 터, 또 오갑사 터를 비롯해 하남 천왕사터까지 세월의 물살에 휩쓸려 강나루 돌밭 같은 무수한 폐사지들이 물길을 따라 널려있다. 모두가 하나같이 나말여초에 건립되어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어느 시기에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는, 비밀과 아픔을 간직한 절터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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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 | | 거돈사 터 역시 자작고개 하나를 넘어 법천사지 지척에 있고, 조금만 강 기슭을 거스르면 갈참나무 숲속에 오롯히 숨겨져 있는 청룡사 터와 탑평리 석탑을 만날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다 담아내기에는 허락된 것들이 여의치 않아 그냥 거돈사 터에 이른다. 거돈사 터에 닿으면 언제나 변함없이 반겨주는 수령 천년의 느티나무가 있다. 석축과 함께 늙은 몸을 뒤틀며 절터를 떠받친 거돈사 터의 늠름한 수호신이다. 그러고 보면 여주 고달사터에도, 고개 넘어 법천사터에도 우람한 느티나무들이 버티고 서 있다. 세월을 거스르는 데는 느티나무 만한 것이 없다. 건당(建幢)이고, 방부(房付)이고 간에 그저 고목의 그늘 아래서 쉬었다 가라는 옛 주인들의 배려일까. 거돈사터 느티나무는 그 중 연장자로, 수령 1천년이 넘는 것이며 그 생김만 보아도 길 쪽에서는 허리까지 석축에 잠긴 반 지하 상태이고, 절터 쪽에서 보면 지상으로 죽지를 뻗어 1만여 평 사지를 넉넉히 품을 태세다.
법천사와 거돈사. 두 절 사이는 현존 당시에도 그랬을 것이고, 폐사된 지금에도 이웃 사촌 같은 정겨움이 느껴진다. 동시대에 이러한 거찰들이 작은 고개 하나 사이로 공존하고 있었다면 이 일대야말로 한 때 한국불교의 중심지였으며, 오늘의 한국불교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있는 것 같다. 법천사가 진리(法)의 새암이라면 거돈사는 그 샘물을 가둔 웅덩이쯤 된다. 법천사가 소실된 이후, 철저히 망가진데 반해 거돈사가 비교적 사역이 잘 보전된 것은 야트막한 야산이 절의 삼면을 병풍으로 둘러싸고 절터 옆에 천혜의 저수지를 법의 웅덩이인양 끼고 있어 폐허의 물살조차 수위 조절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법천사 터에 불두화 같은 지광국사(智光國師, 984~1067)의 향기가 남아 있다면, 거돈사 터에는 찔레꽃 같은 원공국사(圓空國師, 930~1018)의 온기가 스며있다. 원공국사는 누구인가. 국사의 법호는 지종(智宗)으로 여덟살 나이로 개경 사나사(邪那寺)에서 출가, 955년 중국 오월에 유학하여 법안종(法眼宗)의 법맥을 전수받았다. 그 후 중국 천태종의 근본도량인 천태산 국청사에 들어 ‘대정혜론(大定慧論)’을 배우고 천태종지를 가르치는 교수사가 되어 970년 고려로 돌아와 역대왕들의 신임을 받던 고승이었다. 원공국사는 귀국 후 왕권 강화를 위해 개혁정치를 표방하던 광종의 비호를 받으며 법안종 세력을 고려 불교계에 크게 떨쳤다. 그러나 광종이 사망하고 그의 급진적 개혁정치가 중도에 그치면서 법안종 세력도 급속도로 위축되고 원공국사도 89세인 1018년 병든 몸을 이끌고 거돈사에 이르러 임종을 맞는다.
거돈사는 고려 초기의 불교계를 주도해 왔던 법안종의 중심사찰 역할을 하며, 한껏 찔레꽃 향기를 머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고려 중기에 이르러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면서 영암사(靈巖寺) 지곡사(智谷寺) 등 5대 교종 사찰과 함께 천태종의 기반 사원으로 흡수되었다. 원공국사 지종은 입멸 후에 현종으로부터 국사로 추증되었으며, 탑비와 함께 비의 서쪽 기슭에 부도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지금 거돈사 터에는 현종16년(1025) 조성된 부도비(보물제78호)만이 절의 한 켠을 지키고 있다. 원공국사승묘탑(圓空國師勝妙塔)이라 불리는 부도(보물제190호)는 짝을 이루지 못하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와다(和田)가 서울의 자기 집으로 옮겨간 것을 회수, 1948년에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뜨락에 외롭게 서 있다. 거돈사지는 1968년 2만4천7백 86㎡의 터가 문화재보호구역(사적 제168호)으로 지정되어 1982년부터 토지매입을 시작했다. 91년까지 10여년에 걸쳐 한림대박물관이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벌인 후, 1차로 7천5백평의 사역을 단아하게 정비하였다. 거돈사 터에서는, 사지 보존도 이 정도 되면하는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법하다. 마침 이번 방문 길에도 안개비가 부슬거리는 가운데 잡초제거 작업을 하는 여남은 아낙들의 평화로운 정경이 눈에 들었다. 원주시가 중원문화권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17억5천만원을 투입, 정비작업을 완료한 후, 그런대로 관리를 해나가는 모양이다. 문화재의 보전은 예산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안목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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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 | | 거돈사 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은 사지 한가운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삼층석탑(보물 제750호)이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이 없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의 형태이나 폐사지의 허전함을 잘 메꾸어 주고 있으며, 동쪽 언덕 위에 올라 사역을 조망해 보면 더욱더 친근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다가와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탑 전면에는 연꽃이 새겨진 아담한 배례석이 놓여 있는데 연꽃 조각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거돈사지의 또 하나 명물은 금당지 중앙에 통돌을 대충 다듬어 놓은 화강석 불대좌다. 높이 약 2m정도 되는 것으로 그리 큰 편은 아니나 삼층석탑과 함께 조화를 이루워 거돈사터 특유의 애잔한 모습을 연출한다. 거돈사터 탐방에서 그냥 지나쳐서 안되는 것은 사지 앞을 흐르는 개울을 건너 95년 봄 폐교된 정산초등학교 교정에서 심드렁하게 누워있는 홀로 된 당간 지주 한짝을 만나보는 일이다. 옛날 현계산의 남매장사가 당간지주를 옮기다가 남동생이 죽어 한짝은 옮기지 못해 하나뿐이라는 설화를 간직한 이 당간지주는 9.6m나 되는 길이로, 폐교 이전에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을 것이나 이제는 그 추억 조차 꿈속의 일인듯 모로 누워 오수를 즐기고 있다. 이번 탐방 길에 새롭게 발견한 보물은 다름 아닌 사지 왼쪽 편에 모아놓은 석조물들이다. 맷돌, 장대석, 주초들이 줄지어 누워있는 것이, 원공국사승묘탑이 있던 지대석 자리에서 내려다 보니 마치 관짝을 정돈해 놓은 것처럼 숙연해 보이기도 한다. 저 석관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자작고개를 넘나들던 현계산 산승들의 불국정토 원력일까. 마을을 향해 지줄대며 흘러가는 버들치 뛰노는 시냇물 소리일까. 그 석물들이 한같이 고개를 향한 서쪽 1만여평의 농경지에서는 지금도 석축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어 문화재 보호구역 추가지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거돈사터가 잃어버린 사역을 모두 되찾을 때 중원불교의 제2 중흥시대는 열릴 것이다.
글: 장지현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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