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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에 핀 왕과 미녀의 애절한 사랑
 → 현종과 양귀비의 침궁인 비상전과 양귀비 상
날이 너무 더워 양귀비가 목욕을 즐겼다는 옥련탕(玉蓮湯) 옆의 나무 그늘에 앉아서 잠깐 쉬어본다. 잠시 더위를 식힌다는 게 그만 졸았던 모양이다. 나그네는 "나무꾼과 선녀"의 나무꾼처럼 양귀비가 목욕하고 있는 정경을 꿈속에서 훔쳐본다. 옥으로 만든 다섯 개의 연꽃잎 가운데서 온천수가 솟고 있다. 그 온천수는 둥근 석조에 넘치지 않을 만큼 채워지고 시녀들이 석조 안에 무언가를 붓고 있다. 자세히 보니 실크로드를 거쳐 온 것들인데, 하나는 야광술잔에서 나오는 호주(胡酒)이고, 또 하나도 역시 서역산 향료인 용뇌향(龍腦香)이다. 실크로드에 부는 서역바람 잠시 후에는 석조 주위에 화려한 융단이 깔리고, 그 위에 미소년들이 줄지어 선다. 양귀비가 목욕할 때마다 나타나 서역 특유의 높은 음계로 노래부르는 합창단이란다. 온천수에 섞인 술과 향료가 김을 타고 퍼져 미소년들은 차츰 취한다. 이때 양귀비가 나타나 옷을 한올 한올 벗는다. 그녀가 서역의 물건들을 좋아하는 것은 그녀에게 서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천이 고향이라지만 그녀의 선조가 서역인이라는 설도 있는 것이다. 물론 당시 실크로드의 문(門)이자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 사람들에게는 의식주 전반에 걸쳐서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온 서역풍이 거세게 회오리바람치던 시대이긴 했지만. → 천년 전에는 임금의 수레가 다녔던 화지 입구의 길
그녀도 서역의 가무에 능하였지만 그녀의 육촌 오빠인 양국충(楊國忠)은 특히 호선무(胡旋舞)의 달인이었다. 여기서 호(胡)라 함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만주나 몽고 등 이민족을 통칭하는 말인데, 주로 아랍 이란계의 서역인들을 "호인(胡人)이라 불렀다. 예컨대 서역 상인들을 가호(賈胡), 상호(商胡)라 부르고 서역에서 들어온 농산물들도 "호(胡)를 붙여 "호도(胡桃), 호마(胡麻)라 불렀다. 음식도 호식(胡食), 호병(胡餠) 그리고 춤에도 빠른 속도로 도는 호선무(胡旋舞), 호등무(胡騰舞)가 있다. 40-28-40의 '통통한 미인' 그녀가 서역계란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다. 요즘의 팔등신 미인처럼 가슴 허리 엉덩이의 크기가 35-24-35 부근에다 몸무게가 40키로그램 미만이 아니라 40-28-40 정도에 50키로그램 안팎이 되는 통통한 여자인 것이다. 온천수의 뜨거운 김이 주렴처럼 가리어 양귀비의 풍만한 몸은 보일 듯 말 듯하다. 훅훅 끼치는 술과 향료 때문에 그녀의 눈꺼풀은 반쯤 감기어 가고 있다. 침실로 데려가 달라는 듯한 그녀의 눈꺼풀을 보고도 품어보고 싶지 않은 남녀가 어디 있으리. 더구나 그녀는 팽팽한 유방이 터져 버릴 듯한 26세의 여인이다. 동성(同性)끼리라도 껴안고 싶은 충동이 강렬할 것만 같다. 백낙천도 서사시로 사랑기려 백락천(白樂天: 772-846)도 120행의 서사시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그들의 "깊고도 안타까운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봄날 아직 찬데 상감의 은총 입어 화청지서 목욕할 때 매끄러운 온천수 보드라운 속살로 흘러내리네 이윽고 나른해진 그녀 시녀가 부축해 가자 상감은 새삼 사랑에 빠져 버렸노라
 → 양귀비의 넋인양 피어나는 화청지의 연꽃들
옛 사람들은 양귀비를 가리켜 당나라를 기울게 한 여자라고 손가락질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를 혐오했던 현종과 유비무환을 잊어먹은 조정의 대신들이 뒤집어써야 할 몫이 더 크다. 국가의 흥망을 도덕적으로만 재단하는 사가(史家) 모두가 이불 속에서도 도덕 군자는 아니지 않은가.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가슴 설레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위선자다. 불륜은 사랑 다음에 붙여지는 껍데기다. 양귀비와 현종은 도덕 이전의 지독한 사랑을 했다. 한 인간으로 돌아가 가식 없는 처절한 사랑을 했다. 조례나 국사 따위는 거추장스러웠을 뿐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 나그네는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사랑하다가 눈이 멀어버린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불륜의 궁이 돈버는 관광명소로 일행(중한인문과학연구회)이 장소를 이동하자고 해서 나그네는 토막 잠에서 깨어난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다. "불륜의 궁(?)"인 화청궁(華淸宮)이 이제는 돈벌이가 되는 관광명소로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양귀비가 온천수에 술을타서 목욕했다는 옥련탕 ←
명산인 여산(驢山)의 산자락에 자리한 화청궁은 주, 진, 한, 수, 당나라 등 역대에 걸쳐서 이궁(離宮)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특히 현종과 양귀비와 사랑으로 더 유명해진 궁이다. 연못가에 현종과 양귀비의 침실로 사용한 비상전(飛霜殿)이, 그 왼편에 선춘각(宣春閣)이 있다. 현종은 겨울에 주로 화청궁을 찾았는데, 온천수가 나고 다른 곳보다 기온이 따뜻한 탓도 있었다. "비상전"이라는 침궁(寢宮)의 이름이 기후를 시사하듯 눈이 여산을 넘어 오다가도 화청지(華淸池)에서는 "서리로 변하여 날린다(飛霜)"는 것이다. 현종은 양귀비가 좋아하는 여지( 枝)라는 신선한 과일을 구하기 위하여 남방에서부터 천리역로(千里驛路)를 설치하여 말이 쉬지 않고 달리도록 하였다는데, 현종은 양귀비의 목에 넘어가는 여지의 모습까지 사랑했다고 한다. 일부러 나그네도 여지를 사서 붉으죽죽한 껍질을 까 큰 포도알처럼 생긴 푸른 속살을 먹어보지만 양귀비가 왜 그토록 여지를 좋아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아마도 현종이 여지를 목에 넘기는 양귀비의 모습을 더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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