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관리자
중국 불교명소-실크로드여행/참선 여행
 
 
  - 안원문에서 옥팔찌를 보다
 
실크로드 기행
 
 
부귀영화도 '꿈'… 양귀비 恨서린 서안 아침 일찍 안원문(安遠門)으로 올라가 서안(西安)의 시가지를 본다. 설명할 필요없이 장안이라는 지명이 서안으로 바뀐 것은 1928년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안원문을 나그네 식대로 풀이하자면 "멀리까지 편안히 가는 문"이다. 다분히 먼길을 떠나는 실크로드의 대상(隊商)들을 위로하는 말인 듯도 싶다. 북문(北門)에 해당하는 이 문도 역시 서문(西門)과 함께 실크로드로 가는 관문인 것이다. 나그네도 며칠 후면 서안을 떠나 실크로드로 가게 된다. 그러니까 미리 작별의 인사를 받는 셈이다. 멀리까지 편안히 가는 서안문 서안의 인구는 성벽 안팎으로 넘쳐나고 있다. 안원문 왼편 골목길에는 과일 행상들이 진을 치고 있고, 문밖으로는 일거리를 찾아 기다리는 무직자들이 신호등 부근에 쭈그려 앉아 있다. 거리를 달리는 교통수단은 기차에서부터 인력거에 이르기까지 온통 뒤엉켜 있다. 거리를 한 동안 보고 서 있자니 어지럼증이 든다. 그래서 그림 구경이나 할까 싶어 안원문 위 가게로 든다. 거기에도 옥팔찌가 있다. 옥으로 만든 상품들이 서안의 특산품이라고 하는 말이 맞다. 서안의 어디를 가나 옥 제품이 눈에 띄는 것이다. 발소리 감추려 옥팔찌 애용 옥팔찌는 양귀비가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이것도 그녀의 몸매와 관련이 있다. 통통한 그녀는 수레에서 내려 걸음을 걷게 될 때 남자처럼 발걸음 소리를 냈다고 한다. 풍만한 몸무게 탓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하는 현종에게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감추기 위해 찰랑찰랑 소리내는 옥팔찌를 애용했다는 것이다. 가게의 여점원이 수줍어서 홍보를 못하고 웃기만 한다. 몸매가 글래머에 가까운 영락없는 양귀비의 후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 나그네도 별 수 없는 속물이다. 잘 익은 과일처럼 향기가 나는 듯한 그녀에게 눈길이 멈춰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서안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늘씬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여성들이었다. 양귀비의 사랑을 떠올리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더구나 그녀의 최후를 여기에 적기 위해 다시 떠올리는 일은 차마 못할 짓이다. 그러나 일출을 보았으면 반드시 일몰을 맞이해야 하는 법이다. 꽃다운 나이에 꺾인 양귀비 장안을 떠난 현종 일행은 오후가 되자 먹을 것이 떨어졌다. 양국충이 호인(胡人)에게 사온 밀가루 빵인 호병(胡餠)을 사다 바치자 현종은 맛이 없어 먹는 시늉만 했다. 이를 본 백성들이 거친 잡곡밥을 거두어 바쳤고 굶주린 황손들은 다투어 손으로 집어먹었다. 그러나 호위하던 친위병들 몫의 밥은 없었다. 그때부터 친위병들의 불만은 고조되었다. 다음날 결국 친위병들은 양국충의 머리를 베어 역문에 내어 걸었고 현종에게 양귀비까지 처단하도록 요구하며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등 시위를 하였다. 할 수 없이 현종은 환관 고력사(高力士)에게 양귀비를 교살케 하였다. 반란군에게 황성을 내어준, 친위병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던 무력한 황제의 명이었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는 38세였고 현종은 71세였다. 활짝 핀 후 며칠을 보낸 모란꽃이라 할까. 그녀는 그때 그 모습으로 꺾어져버린 것이다. 땅을 파야 돈을 버는 고도의 땅 중한인문과학연구회 일행이 버스로 이동하다가 갑자기 끽끽 웃는다. 조선족 가이드인 김성규(金成奎) 씨의 독특한 화법 때문이다. 서안외국어대학에서 일어를 전공한 20대 후반의 대졸 출신의 청년이다. 나그네는 그를 보자마자 조선의 토종이라는 것을 느꼈다. 일행이 함양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안내를 맡고 있는데, 그의 화법은 의문문을 즐겨 쓰고 있다. 이를테면 "무엇 무엇은 왜 그러한가"이다. 일행 중에 어떤 교수가 지각하여 출발을 지연시킨 때도 "제 목소리가 왜 힘이 없는가"로 시작하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얘기 속에는 경청할 부분도 있다. 서안 사람들끼리 오가는 일상적인 얘기들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땅을 파야 돈을 번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그만큼 서안 땅은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황가의 무덤들이 많은 고도(古都)라는 것이다. 또 "서안에서는 쥐나 닭도 마약을 한다"라는 말도 있는데, 사람들이 집에서 밤 시간에 마약할 때면 그 연기에 방 안팎의 쥐나 닭들도 취한단다. 마약도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실크로드의 중간 지역인 돈황고성(敦煌故城)에는 귀의군 절도부(歸義軍 節度府)라는 관청 가까운 거리에 정식으로 허가받아 영업한 마약의 집이 있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양귀비가 실제로 서역인의 후손이라면 실크로드는 "절세 미인의 교살당한 사랑"을 역사에 남겨 후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한 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1
 
 
     
 
주인장 연락처 E-Mail : namo80@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