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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교명소-실크로드여행/참선 여행
 
 
  - 현장의 혼이 서린 대안탑
 
중국 불교성지 실크로드 기행
 
 
죽음도 초월한 기러기보살의 자비심 대안(大雁)이란 큰 기러기란 뜻이다. 왜 기러기가 탑의 이름이 되었을까. 나그네는 탑의 모양이 기러기 모양이어서 그랬을까도 싶어 이리 저리 살펴보지만 그것도 아니다. 서안의 어디를 가나 마주치는 중국식 탑일 뿐 이다. 그렇다면 다른 데서 그 유래를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잘 알다시피 대안탑은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지은 탑이다. 그러한 기록이 <현장법사전>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652년 3월 법사는 단문 남쪽에 석불탑을 만들어서 서역에서 가져온 불경(佛經)과 불상(佛像)을 안치하고자 했다." 이 구절은 대안탑이 만들어진 사연을 나타낸 글이고, 다음은 현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대안탑에 쏟았던 땀에 대한 내용이다. "회향에 임박해서 법사는 친히 삼태기를 들고 벽돌을 운반했다. 이렇게 2년이 걸려 이 탑은 완성되었다." 당시 현장은 초로의 법사가 되어 있었다.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법사가 무거운 삼태기를 등에 지고 묵묵히 탑의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는 정경을 떠올려 보라. 더욱이 그는 대부분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행로인 실크로드를 거쳐 18년만에 천축을 다녀온 구도승이다. '대안탑'이름에 얽힌 사연 하남성 진류성에서 태어난 그는 13세(602년)에 출가를 하였다. 그리고 여러 절을 전전하다가 장안으로 들어와 20세(622년)에 비구승이 되었으며 629년에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로 간 뒤 18년 만인 645년에 다시 장안으 로 돌아와 648년에 번경(飜經)을 하기 위해 자은사(慈恩寺)를 창건한다. 그 절 안에 탑을 하나 쌓게 되는데, 그 탑이야말로 불굴의 구도심으로 점철된 현장의 상징물인 것이다. 탑 이름도 현장이 틀림없이 명명했을 터이다.
그 유래에 대해서 모호한 얘기들이 많지만 현장의 <대당서역기> 마갈타국 편을 읽어보면 의심 없이 알 수 있 다. 현장이 천축의 제석굴 산 동쪽을 순례하고 있을 때였다. 사리불(샤리푸트라)의 고향에서 30여 리 떨어진 지점 이었는데, 그곳의 절에는 안탑이 하나 있었고 승도들은 대승을 신봉하고 있었다.
현장은 비구승의 이름이 붙은 탑 이름은 많이 보아 왔으나 기러기 이름이 붙은 안탑이란 것이 이상하여 즉시 그 내력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의 비구승이 얘기해 주었다. 수행자를 위해 목숨바친 기러기 "원래 우리 승도들은 소승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고기도 먹었습니다. 지금도 비구들이 소승의 가르침을 버리지 못하고 고기 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루는 한 비구가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보고 장 난조로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승도들에게 식사가 충분치 못했다. 만약 보살(마하삿트바)이 기러기로 현신했다 면 지금이야말로 우리 승도들에게 고기를 베풀어줄 텐데." 말이 끝나자마자 기러기 한 마리가 새들 무리에서 떠나 그 수행승 앞에 떨어져 죽어 주었습니다." 비구승은 너무 기이하여 승도들 앞에서 자세히 고백했는데, 승도들은 기러기(보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다음 과 같이 다짐하였다는 것이다. "여래께서는 여러 가지 법문을 열어 사람들을 제도하셨는데, 어리석은 우리는 아직까지도 소승을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습관을 고쳐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인 대승을 신봉할 일입니다.
죽은 이 기러기는 우 리에게 훌륭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 후덕을 기리고자 탑을 만들어 영원히 알립시다." 그러니까 죽은 기러기를 위해 안탑을 쌓았다는 이야기였다.
현장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줄 아는 용기와 자비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보살(마하삿트바, 마하살타)인 것이다. 그 자리에서 현장은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보살의 대승사상을 기리는 안탑을 하나 세우리라고 결심하였는데, 그로부터 1 천 5백여 년이 지난 지금 나그네의 눈에 비친 저 대안탑이 바로 그것이다. 현장스님은 중국인들의 자랑 대안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자은사의 가람들이 보이지만 나그네의 눈에 드는 것은 입구에서 정면 방향에 위치 한 대안탑이다. 그만큼 탑이 주는 인상이 강렬하다. 현장의 꺾이지 않는 구도심과 기러기로 현신한 보살의 자 비심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현장은 자신이 스물 두 마리의 말에 가지고 온 불경을 이 대안탑에 안치한 후, 63 세(664년) 입적할 때까지 74부 1335권이라는 엄청난 양의 불경을 번역하였던 것이다. 이곳을 찾는 중국인들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선조인 현장의 위업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대웅보 전 앞에서 촛불 공양을 올리기도 하고, 법당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정사각형에 가 까운 작은 방석 위에서 무릎을 꿇고 주먹을 쥔 채 머리를 콩콩 찧고 있는데 옹색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표정은 엄숙하고 진지하다. 대웅보전을 돌아서 지나니 기념품을 파는 요사가 나오고 바로 대안탑이 나그네를 압도한다. 또다시 대안탑을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내라고 하니 마음에 일었던 경외감이 반감되는 듯하나 예까지 와서 돌아설 수는 없는 노 릇이다. 현재 대안탑의 높이는 64미터이고 벽돌을 쌓아 만든 7층 전탑이다. 예전에는 청색 벽돌 즉 청전(靑塼)을 사용 하여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고목처럼 푸른빛이 감돌았으나 지금은 황토빛으로 바래어 천년 세월의 흐름을 실 감케 하고 있다. 원래는 5층이었으나 7층으로 개축되었고 현재는 7층이 파손되어 공사중이다. 하늘로 솟은 64m 탑 '귀신의 솜씨' 각층마다 사면으로 문이 하나씩 만들어져 동서남북의 거리를 조망할 수 있는데, 시인 잠삼(岑參:715-770)은 <자은사 부도>란 시에서 이렇게 읊조리고 있다. 탑의 형세는 땅에서 솟아난 듯
외로이 높아 하늘에 우뚝하다
위로 오르면 세계를 뛰어난 듯
돌층계는 허공에 서리어 있다.
높이 돌출해 신주(神州)를 억누르고
험준한 모양은 귀신의 솜씨인 듯
네 뿔다귀는 해를 가리고
일곱 층계는 하늘을 어루만진다.
높이 나는 새를 내려다보고
거센 바람 소리를 굽어 듣는다
연이은 산들은 물결과 같아
동해로 달려 마치 조회하는 듯.
이와 같이 장삼의 시를 일부만 보아도 그 풍경이 감지되듯 돌층계는 허공에 서리어 있고, 높이 나는 새가 도 리어 내려다 보이고, 거센 바람 소리가 굽어 들리는 것이다. 한 층 한 층 층계를 오를 때마다 장삼의 시가 결 코 시적 수사나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이다. 7층이 공사 중이므로 6층까지만 올랐는데도 내려 다보이는 뿌연 서안의 시가지가 아득하다. 문득 한 줄기 감동이 현기증처럼 인다. 1천 5백여 년 전 현장이 펼 쳐 보인 원력에 압도된 것일까. 나그네를 사로잡는 것은 구도를 향한 그의 불굴의 투혼이다.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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