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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의 비파연주 귓가를 스치는 듯
당의 문화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꽃 피웠던 시기이기 때문에 사학자들은 그 시대를 4기로 나누어 설명하곤 한다. 이른바 초당, 중당, 성당, 만당이 그것이다. 당 문화의 정수인 불교문화도 당연히 4기로 나누어지는데, 막고굴의 불상이나 벽화만 놓고 볼 때는 중당이나 성당을 한데 묶어서 얘기해도 무리는 없을 듯싶다. 불교미술이 만개한 중당이나 성당의 작품 수준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중당의 대표적인 석굴로는 237굴과 158굴이 있다. 237굴은 특히 변상도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그 벽화 속에 머리 뒤로 비파를 들고 켜는 비파선녀상이 눈길을 끈다. 비파는 보통 가슴 앞에 두고 켜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인데, 이 벽화 속의 선녀는 비파를 머리 뒤에 들고서 켜고 있다. 비파를 보지 않고도 황홀하게 켜고 있는 무지션의 모습이다. 돈황의 네거리에 세워진 비파선녀상도 바로 이 벽화를 참고하여 조각했다고 한다. 상징물들이야 많겠지만 비파를 켜는 선녀를 선택한 돈황 사람들이 새삼 정겹다. 음악이야말로 사막을 오가는 사람들의 뻑뻑한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삶에 신명을 주는 활력소가 아니었겠는가. 237굴 안에도 비파의 선율이 흐르는 듯하다. 중당 때 만들어진 굴이니 적어도 1200년 동안이나 비파의 선율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초기 굴에서도 천인(天人)들이 기악을 연주하는 벽화가 있긴 했지만 석굴에 구체적인 악기가 등장하고, 그 악기를 켜는 자세가 너무도 현란하여 마치 미묘한 선율이 들릴 듯한 것이다. 이와 같은 벽화의 수준도 중당에 이르러 완성된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슬픔 초월한 열반의 고요와 평안 158굴도 중당 시대의 석굴인데, 그 특징은 남북으로 길게 열반상이 안치되어 있고, 북쪽 벽과 남쪽 벽 그리고 서쪽 벽에 부처의 열반을 슬퍼하는 군상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나그네는 인도의 비하르주 쿠쉬나가라 마을에서도 부처의 열반상을 보았지만 158굴에 누운 16미터 크기의 열반상과 마주쳤을 때는 호흡이 멎는 듯한 했다. 열반의 분위기가 그대로 감지되어 숨을 쉴 수 없었고, 걸음을 함부로 옮길 수 없었던 것이다. 열반의 고요와 평안이 동시에 파문처럼 다가왔다. 누운 자세는 고요함으로, 감은 눈과 입술의 미소는 평안으로 엄습했다. 오히려 벽화로 그려진 슬퍼하는 군상들이 작위적이고 군더더기로 느껴졌다. 그러나 벽화를 자세히 보는 순간 그들의 슬픔을 이해할 만도 했다. 누운 부처의 머리 주위인 남쪽 벽에는 10대 제자들이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울고 있는 모습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로서는 좀 과장되게 보이긴 하지만 마음속의 슬픔이 그 정도로 크지 않았을까 짐작이 됐다. 차라리 10대 제자들의 모습만 가지고 본다면 148굴의 열반상 주위의 벽화들이 훨씬 더 사실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48굴의 열반상 주위에는 87명의 제자들이 둘러서 있는데, 조용히 합장을 하고 있는 제자, 가슴을 치고 있는 제자,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 검은 얼굴의 천민이 달려와 부처의 열반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장면 등이 매우 리얼한 것이다. 부처가 아니라도 우리 보통 사람들의 장례식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정경이기 때문이다. 얘기가 148굴로 빠졌는데 다시 158굴로 돌아가 감상해 보자. 부처의 다리 부근인 북쪽 벽에는 장례사절로 온 각국의 왕자들이 그려져 있다. 이 역시 과장이 심한데, 그러나 이 벽화는 각국의 풍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슬픔을 극적으로 나타내는 각국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슬픔을 참지 못해서 자해를 하고 있는데, 코를 베는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는 사람, 귀를 베는 사람, 할복을 하는 사람 등 각국의 풍속대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풍속으로는 그래야만 예와 의리를 다 갖추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부처가 설법한 불살생의 계율에는 하나같이 위배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부처님과 제자들

한편, 성당의 대표적인 굴로서 45굴과 130굴, 그리고 320굴과 328굴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그네는 45굴을 으뜸으로 치고 싶다. 수나라 시대에 출현한 칠존상이 성당에 이르러 예술적으로 완성된 느낌이 들고, 존상들의 소상은 초기 굴에서부터 축적돼 온 조각 기법 등이 정점에 이르러 실제로 살아 숨쉬는 듯 몸짓이 유연하고 개성과 내면의 심성까지 한껏 드러나 있다. 한 가운데에 자리한 석가모니 부처는 오른손으로 특이한 수인, 즉 엄지와 검지를 세우고 나머지 손가락은 구부린 손 모양을 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에 자연스럽게 놓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같은 수인을 하고 있다. 나발도 수많은 구슬을 붙인 듯 정교하고 이목구비도 원만하다. 광배에 새겨진 구름과 화염 문양도 화려하면서도 장엄하고, 상반신에 걸친 가사나 대좌 위에 흘린 옷자락도 옹색하지 않고 풍성하기만 하다. 부처의 왼쪽에 자리한 가섭의 소상도 사실적이다. 수염이 난 얼굴이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용맹정진 중인 수행자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두타행을 하는 제자답게 광대뼈가 나오고 퀭한 눈 속에서 뿜어지는 형형한 눈빛, 꽉 다문 입술, 앙상한 가슴 등이 리얼하다. 동굴에 틀어 앉아 하루 한끼로 절식하면서 1년만 수행해 보라. 누구라도 지금 저 가섭의 모습과 비슷해지지 않겠는가. 외모뿐만 아니라 가섭의 내면 심성까지 느껴진다. 구도를 향한 강인한 의지와 맑은 혼이 온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반면에 부처의 오른쪽에 있는 아난은 여성으로 느껴질 만큼 부드럽다. 부처님을 가장 오랫동안 옆에서 모신 제자답게 무던한 얼굴이다. 아무리 존경하는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무던한 성격이 아니라면 어찌 평생을 시봉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난의 얼굴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리라는 것이 짐작된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두 손을 살며시 모으고 있는 것은 부처님의 설법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 기울여 듣는 자세,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좌우에 있는 두 보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역에서 들어온 삼굴자세(三屈姿勢)의 전통을 이은 것이 이채롭다. 삼굴자세란 머리와 허리, 그리고 무릎을 약간 비튼 자세를 말한다. 남성이 이런 자세를 취한다면 이상하겠지만 여성의 삼굴자세는 여성을 더 여성스럽게 드러내 주는 특징이 있다.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싶은 여성의 본성을 표현하는 절묘한 자세인 것이다. 일찍이 인도에서는 삼굴자세의 불상이 많이 출현하였지만 중국에서는 뻣뻣한 직립의 보살상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45굴의 보살은 삼굴의 포즈를 멋지게 완성하고 있다. 가정이지만 이 보살들이 눈을 뜬 채 시선을 보였다면 육감적이거나 관능적이었을 것 같다. 배꼽을 보이고 허리를 비트는 것만으로도 그러한데 뇌쇄적인 눈빛이 보태진다면 더 말해 무엇하리. 그러나 이 보살들은 눈을 감고 있다.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부처의 설법을 듣고 나서 감동하여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은 미(美)를 넘어 성(聖)으로 승화되고 있는 바 기발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유마경 변상도'가 주는 또다른 의미 굴 입구에서 무서운 모습으로 지키고 있는 천왕상은 힘이 넘친다. 발 밑에 귀신을 누르고 불법을 수호하려면 힘도 필요하다는 논리를 보여주는 듯한 천왕상이다. 이러한 천왕상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소상들의 분위기에 긴장감을 주어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느낌도 든다. 한편, 45굴의 동쪽 벽에는 유마경변상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 알다시피 <유마경>은 부처의 10대 제자와 재가불자인 유마힐 간에 있었던 문답의 기록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모든 경전은 석가모니 부처가 주인공이었다면 <유마경>은 재가불자 유마힐이 주인공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 하나를 세워 볼 수 있다. 인간중심의 세상을 지향하려던 당시 사람들의 이상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가정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문화라는 양식을 통하여 자신들의 이상을 표현하려고 해왔기 때문이다. 불상이나 벽화 속에서 당시 사람들의 그런 심층심리를 유추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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