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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사막의 절망과 희망
 돈황에 열차 역이 있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북경에서 오는 철길이 돈황 외곽으로 분명 나 있다. 열차는 트루판을 거쳐 우루무치를 향해 달린다. 이른바 철(鐵)의 실크로드이다. 돈황 시가지에서 130km 떨어진 곳에 기차역이 하나 있는데, 흔히 유원(柳園) 역으로 알고 있으나 2천년 7월 1일부터 돈황 역으로 개명하여 부르고 있다. 조그만 역사지만 사람들로 붐빈다. 오늘밤은 열차에서 보내야 한다. 열차는 밤새 황량한 구릉지대를 달려 새벽녘에야 신강성 트루판 역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특급열차이다. 중국에서는 특쾌열차라 부른다. 일행은 돈황 역전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중국에서는 어디를 가도 식당만큼은 시끌벅적하다. 유원 거리를 서성거리던 사람들이 모두 식당으로 몰려 와 있는 느낌이다. 먹는 일에 전력을 다 쏟는 중국인들의 탐식을 무어라 평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한쪽에서는 마작을 하면서, 또 다른 쪽에서는 독주를 마시며 음식을 들고 있다. 일행은 시끄러운 메인 홀을 피해서 룸으로 들어와 음식을 기다린다. 유원에서 참외로 유명한 하미(哈密)까지도 사막과 황무지의 연속이다. <현장법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은 소름끼치는 기록이 나온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인적은 물론 하늘을 나는 날짐승도 없는 망망한 천지가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밤에는 요리(妖 )의 불이 별처럼 휘황하고 낮에는 모래바람이 모래를 휘몰아 와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두려운 줄 몰랐다. 다만 물이 없어 심한 갈증 때문에 걸을 수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5일 동안 물 한 방울 먹지 못하여 입과 배가 말라붙고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아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법사는 마침내 모래 위에 엎드려 수없이 관세음보살을 외었다.' 마침내 현장은 물 대신 늙은 말의 간을 꺼내 먹기도 하였다. 짐을 지우려고 돈황을 오기 전 과주(瓜州)에서 산 말이었다. 그런가 하면 믿었던 길잡이 석반타에게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살아야 하는 극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막의 길에서는 동행하는 무리 중에서 혼자 남은 물을 몰래 다 마셔버리는 등 배반이 흔했던 것이다. 중국의 열차는 좌석의 등급에 따라 네 종류로 분류된다. 쿠션이 부드러운 침대는 루안워(軟臥), 나무판처럼 딱딱한 침대는 잉워(硬臥), 부드러운 좌석은 루안쭈어(軟席), 딱딱한 좌석은 잉쭈어(硬席)이다. 일행이 탄 열차 칸은 1실 4인이 들어가는 루안워이다. 나그네는 아래층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출입문이 있긴 하지만 거울이 깨져 있어 특쾌열차의 수준도 별 수 없구나 싶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잠이 올 리가 없다. 차에 조예가 깊은 하일남 선생이 다구를 가져와 녹차를 권한다. 다구를 지니고 다니면서 차를 마실 정도면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보성에 큰 차밭이 있으며, 현재 인사동에서 동양다예를 운영하고 있단다. 그가 묻는다. "우리 집에 '정좌처 다반향초(靜坐處 茶半香初) 묘용시 수류화개(妙用時 水流花開)'란 글씨가 있습니다만 정 작가님은 어떻게 해석합니까?" "중국의 황산곡이 처음 한 말입니다만 추사 김정희 선생의 다선송(茶禪頌)이란 시에도 나옵니다. 제 식대로 풀자면 '정히 앉은 곳 차는 향기 처음 같고, 깨닫는 순간 물 흐르고 꽃이 피네'입니다. 그러니까 청산에만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순간에는 마음속에서도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경지겠지요." 뜻밖에 차 대접을 받고 마음이 푸근해져 나그네 딴에는 조심스럽게 꺼낸 해석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같은 침대 칸에 탄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준다. 복도로 나가니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도록 창가에 간이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조금 내밀자 얼굴이 따끔거린다. 모래가 날아와 얼굴을 때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래가 아니라 앞 창문 쪽에서 중국인 두 명이 호박씨를 까먹으면서 버리는 껍질이다. 바람에 날려 나그네가 앉은 창으로 호박씨 껍질이 날아 들어온 것이다. 열차가 가는 방향은 계속 서쪽이다. 따라서 뉘엿뉘엿 지는 석양을 오랜 동안 감상할 수 있다. 이제는 사막이 끝나고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검고 누런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다행히 오렌지 빛깔의 석양이라도 떠 있으니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다시 들어와 눕는다.
뇌리를 떠나지 않는 막고굴 전등을 끄고 잠깐 눈을 붙인 사이 밖은 어느 새 캄캄해져 있다. 초저녁이 아니라 야심한 시각이다. 그러고 보니 열차가 가는 방향 때문에 늦은 시각까지 날빛이 남아 밝아 있었던 것이다. 여승무원이 복도에 나가 있는 사람에게 주의를 주는 소리도 들린다. "유 머스트 슬리핑." 상냥한 어투가 아니라 들어가 잠을 자라는 명령조의 말이다. 나그네는 그 동안의 여정을 정리해 본다. 섬서성의 서안을 거쳐 감숙성의 돈황을 지나 지금은 신강성의 트루판으로 가고 있다. 실크로드 중에서 천산북로를 가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돈황의 막고굴이다. 무의식이란 깊은 우물 속에 침잠한 명사산의 석굴들인 막고굴이다. 의식의 두레박을 타고 내려가면 마이크로필름처럼 언제든지 다시 복사될 것은 찬란한 벽화들이다. 지금 돈황을 떠나고 있다 해서 그것들과 멀어져 간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늘밤 뒤척이는 얕은 잠 속에서도 막고굴이 꿈으로 나타나 비천이 옷자락을 날리며 하늘을 날고, 선녀가 비파를 켜고, 무희가 어지러울 정도로 빙빙 도는 호선무를 출지도 모른다. 새삼 막고굴을 장식한 말각조정(末角藻井)의 천장이 떠오른다. 조정이란 수초가 있는 우물이란 뜻이다. 즉 사막에서 보기 힘든 수초가 자라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말각조정은 오아시스를 상징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야 물이 흔한 곳에 살기 때문에 별 의미를 못 느끼지만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수초가 있는 물의 공간이야말로 그들의 이상향인 극락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의 암호 같은 상징도 풀어진다. 네모난 말각조정 천정 가운데는 거의가 둥그런 원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의 의미도 이제야 사라진다. 우물 속을 들여다 보라. 거기에 둥그런 하늘이 비쳐 있지 않은가. 원은 하늘이 분명하다. 천장 가까이 천녀와 비천이 날고 있으므로 하늘이 틀림없다.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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