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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와의 대화
우루무치란 위그루어로 '광활한 목초지'란 뜻인데, 부족간에 세력 다툼이 치열하였던 바 '투쟁'이란 뜻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한족들은 소리나는 대로 음차(音借)하여 오노목제(烏魯木齊)라고 쓴다. 천산북로의 진짜 끝은 이닝(伊寧)이란 오아시스 도시지만 현재의 우루무치는 신강성 성도(城都)로서 온갖 소수민족들이 모여들어 천산북로 끝자락에 있는 도시들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트루판에서 버스로 이동한 일행은 숙소를 정하기 전에 먼저 들른 곳이 있다. 실크로드의 독특한 유물들이 3만 점이나 전시되고 있는 신강성박물관이다. 박물관은 회교사원처럼 직사각형의 네모난 전시관 위에 모자 같이 생긴 둥그런 돔형의 건축물이 얹혀 있다. 전시된 유물들 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3천년 전의 미이라들이다. 사막지방의 건조한 기후 때문에 사라진 도시나 공동묘지 등에서 지금도 발굴되고 있는데, 사막 속의 누란국의 묘나 아스타나 고분의 것들이 이곳에 보존 전시되고 있다. 특히 나그네의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하는 것은 3천 년 전의 아기 미이라이다. 1살로 추정되는 아기 미이라로서 옆에는 우유 잔이 있고, 아기 눈에는 조그만 돌이 얹혀 있다. 졸지에 아기를 잃은 엄마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 싶다. 죽어서도 배고프지 말라고 우유 잔을 옆에 놓았던 것 같고, 또 죽은 이후에는 나쁜 일들을 보지 말라고 돌이 눈에 얹혀 있는 듯하다. 또 하나는 부부 미이라인데, 2층 분묘 속에서 나온 것이다. 아래층에는 부인인 여자 미이라가, 위층에는 남편인 사내의 미이라이다. 시신을 안치할 땅이 부족하여 2층 분묘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이고, 매장자의 염원이 깃들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부 합장묘는 아스타나 고분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있으며 사후에도 부부의 금실을 바라는 후손들의 바람을 쉽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2층 분묘를 조성하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까지의 설은 여자는 땅, 남자는 하늘이라는 상징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라고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을 뿐이다. 또 다른 미이라는 장군 미이라라고 불리는데, 무릎이 굽은 채 보존되어 있다. 무릎이 굽은 이유를 두고 말을 많이 타고 다녔기 때문이라는데 나그네는 얼른 수긍이 가지 않는다. 관절염 등으로 거동을 아주 못하는 노인이 무릎을 굽은 채 숨지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더러 보아왔기 때문이다. 미이라 옆에는 당시 유목민들의 특징적인 상징물이 부장되어 있는 것도 있다. 예컨대 칼과 술잔이다. 말이 통하지 않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칼을 들면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고 술잔을 들면 친구로 맞아들이겠다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풍기는 사람의 향기 술이 갖는 사교의 의미는 고대나 현대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 일행도 실크로드 여정을 마치면서 술로서 피로를 풀기로 미리 약속해둔 바 있다. 내일 천산산맥의 천지를 가기 전에 회포를 풀기로 한 것이다. 지금 우루무치는 한족의 이주 정책에 의해 소수민족들과의 인구 비율이 반반 정도라고 한다. 거리에는 한족계, 러시아계 ,몽고계, 위그루계, 아랍계 심지어 만주족 사람들까지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우리 조선족은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와 먼 거리에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나그네는 지금 천산북로 끝자락으로 오아시스 도시 이닝만 지나면 파키스탄이나 러시아로 넘어가는 경계에 와 있는 것이다. 숙소로 돌아온 나그네는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그 동안 친해진 몇몇 교수와 무리를 지어 바자르로 나선다. 여기까지 무사히 다다른 기념으로 밤에 축하의 술잔을 들기 위해서이다. 바자르란 페르샤 말로써 우리말로 하자면 시장이다. 원래는 회족들이 이슬람교를 포교하기 하기 위한 수단으로 각지에 시장을 개설하여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회족 뿐만 아니라 모든 소수민족들이 모여 장사를 하는 곳이다. 중국인은 자선시(慈善市)라 하며 우리들이 사용하는 '자선 바자회'라는 단어 중 바자(bzzar)는 이 바자르에서 기원한 것이 틀림없다. 바자르에는 실크로드를 타고 온 물건들로 흘러 넘치고 있다. 과일에서부터 술과 고기, 카펫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여기서 나그네는 서안에서 맛보았던, 양귀비가 좋아했다는 여지라는 과일도 다시 맛본다. 하미에서 무르익은 참외도 맛본다. 트루판에서 말린 건포도도 술안주로 조금 산다. 돈황 야시장에서 본 샤시리크, 즉 양고기 꼬치의 냄새도 맡는다. 그러고 보니 바자르에서 음식물을 통하여 실크로드를 다시 만나는 느낌이다. 그 옛날 대상들의 후예가 바로 이 바자르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장사꾼들이 아닐 것인가. 바자르의 황토 아궁이 위에는 시커먼 석쇠가 놓여 있고 낭( )이 맛있게 구워지고 있다. 고물이 빠진 밀가루 호떡인 낭이다. 그러나 발효시킨 밀가루 빵이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난다. 식당에서 흔히 보는 후추 가루에서 '후추'란 말을 여기서 또 듣는다. 양고기에 곁들여 먹는 후추는 원래 호초(胡椒)라 불렀다. 호초는 '호국(胡國, 인도)의 산초(山椒)'란 말의 준말이고 보면 후추를 뿌려 먹는 한반도의 얼큰한 설렁탕, 추어탕이 새삼 그리워진다. 사막에서 푸른 산천으로
다음 날, 일행의 얼굴을 보니 부스스하다. 그 동안 친해진 사람들끼리 모여 술을 몇 잔씩 나눈 것이 분명하다. 살아오면서 느낀 점이지만 특히 여행 중에는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현상으로써 사람들 간에도 쇠를 밀고 당기는 자석처럼 좋고 싫음의 자극(磁極)이 있는 것 같다. 서안을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는 데 벌써 끼리끼리 몰리는 좋은 의미에서 동류항이 형성된 것이다. 일찍이 붓다는 현명한 이와 동행할 것을 <법구경>에서 말했다. '내적인 고독과 만족의 단맛을 맛보면서 우주의 법칙에 따라 사는 사람은 두려움과 번뇌로부터 자유롭다. 그렇게 깨달은 사람들을 보는 것은 기쁨이요, 그들과 함께 사는 것도 행복이다. 어리석은 이와 같이 가는 여행은 지루하며 힘들며 마치 적과 여행하듯 고통스럽다. 그러나 현명한 이와 동행은 벗과의 만남처럼 즐겁다. 현명하고 지혜 있는 이를 따르거라. 달이 별들의 길을 따르듯 그들을 따르거라.'  우루무치가 위그루어로 '광활한 목초지'란 말처럼 천지 가는 길은 평원의 연속이다. 여기서는 낙타가 자취를 감추고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소위 한 무제가 탐낸 천마(天馬)들이다. 저 평원에 뿌려지는 생명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천산산맥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려 오고 있다. 이른바 만년설이 녹아 호수를 만들고 강을 만들어 지상과 허공의 생명을 키우고 있다. 해바라기를 재배하는 평원이 차창에 스친다. 노랗게 핀 해바라기 꽃들이 차창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삭막한 사막을 지나오면서 메말라 버린 듯한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해바라기 씨가 중국인들의 간식거리라는 것을 돈황행 비행기 안에서 벌써 느꼈었지만 저 정도 규모의 재배라면 몇 억의 중국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심심풀이로 까먹는다 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드디어 버스는 천지의 초입인 협곡으로 들어서고 있다. 협곡에는 천지에서 발원한 엄청난 수량의 물이 하얗게 부서지면서 흐르고 있다. 새 한 마리,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을 지나온 나그네는 말 그대로 별천지에 들어선 기분이다. 진리 찾는 여행을 영원히 티키인과 몽골인의 혼혈 종족인 하사크 족이 왜 천산산맥을 기슭을 떠나지 않고 자유롭게 방랑하며 사는지 이해가 조금 된다. 하사크는 터키어로 '모험자' '방랑자'라는 뜻으로 그들은 이동하기 쉬운 원형 천막인 파오 속에서 말고기를 먹고 말 젖을 마시며 방랑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튜르크어로 '자유인'이란 뜻의 카자흐 족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단다. 그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곳은 오늘날의 카자흐공화국이다. 주차장에서부터 천지까지는 걸어서 오를 만한 거리다. 가는 도중 비록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지만 천산산맥을 다스렸다는 서왕모(西王母)가 발을 씻은 작은 천지가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니 서왕모가 목욕을 한 천연의 호수, 천지가 나타난다. 백두산의 천지보다는 신령한 기운이 덜하지만 그래도 해발 5445미터의 설산 포거다봉의 흰눈이 녹아 흘러내려 호수를 이루고 있어 맑고 푸르기 그지없다. 해발 1912미터에 위치한 천지의 깊이는 40미터 정도라고 한다. 백두산 천지보다 성스러움이 덜한 것은 땅속에서 솟구친 처녀 같은 물이 아니라, 여러 계곡을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가 섞여서 그런 것 같다. 선착장에서 보니 왼쪽에 멀리 전설적인 서왕모의 묘가 보인다. 오른쪽에는 하사크 족의 파오가 여러 채 보인다. 그리고 정면에는 포거다봉의 설산이 천지에 어리어 나그네의 지친 육신과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어준다. 우회한다면 몰라도 이제 여기서 더 이상 나그네가 갈 곳은 없다. 천지의 흐르는 물을 따라 우루무치로 내려가서 '장자의 붕(비행기)'을 타고 북경을 거쳐 나그네가 출발했던 서울로 되돌아가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되돌아갈 길을 왜 집 떠나 고생을 하느냐고. 그러나 나그네는 돈황의 막고굴을 머릿속에 고스란히 담고 간다. 깊은 신앙심으로 조성한 돈황의 불보살과 벽화를 보고서 절대자 앞에 고개 숙일 줄 아는 인간이 얼마나 순수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명색이 21세기를 산다는 우리가 진정 되찾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참회한다. 나그네는 단순히 유물과 유적지를 본 것이 아니라 진리를 얻고자 죽음의 땅인 사막을 건넌 현장과 법현, 혜초를 만나 그들의 불굴의 의지를 확인하고 간다. 이래도 여행을 고생이라 하겠는가. 왜소한 정신의 키를 조금이나마 성장케 한 고생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축복이고 행복이다. *환타지아 실크로드는 이번 회로 끝맺습니다. 그간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대불교미디어센터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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