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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密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마음이 본래 부처이다. 그러나 망념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떴다 잠겼다 하는 것이다. 마치 언덕이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배가 가기 때문에 언덕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보일 뿐이다] {圓覺經} [序文], (大正藏39, p.524中) "心本是佛 由念起而漂沈 岸實不移 因舟行而 驟" 여기에서의 마음은 일체중생이 누구나 언제나 지니고 있는 마음이다. 바로 그 마음이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고 중생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을 착각하면 중생 이지만 그 마음 그대로 자각하면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 달리 착각의 마음과 자각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선가에서는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은 어느 누구에게나 언제나 이 미 열려 있다는 것으로부터 벌써 완성되어 있다는 現成公案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비단 선 수행을 통하는 것만이 아니라 看經이나 念佛과 呪力과 佛事의 행위 등이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요 깨달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위(수행)에 대하여 그 행위를 하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다. 그 자각은 자신이 불이요 보살로서 본래면목 으로서의 깨달음을 간직하고 그 깨달음을 사회화시키는 것임을 믿는 것이다. 스스로가 보편 화된 깨달음에 깃 들어 있으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고 널리 몸소 이행하는 것이다. 곧 깨달음의 길은 이미 완성되어 있고 자신은 깨달은 존재라는 것을 알아서 그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은 수행을 통해 다가가는 깨달음이라는 선후의 관계가 아니라 수행과 깨달음이 본래부터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는 修證一如한 관계이다. 깨달음 에 대한 이러한 수행과 깨달음의 정의를 통하여 修證이 정립될 때 붇다가 말한 一切衆生悉有佛性의 의미는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깨달음은 다름 아닌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글; 박성배(미국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 교수) 출처; 옛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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