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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성지] 상카샤 - 어머니를 제도하시고 내려오신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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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후 부처님은 도리천을 방문하여 마야데비에게 설법한 후 다시 하강였는데, 그 하강한 기적의 장소 상카시아(sankas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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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도보계(三道寶階) 부조 | 상카샤에 대한 정보는 다정거사의 [혜초스님의 발자취]에 그 내용이 상세하다. 그 내용을 보자.
이른바 실증적 사고방식에 물들어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과학이 이루어 낸 업적을 뒤집어버리는 초자연적 능력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초기불교의 현장들 중에서 스라바스티에서의 ‘천불화현(千佛化現)’과 샹카샤의 ‘삼도보계(三道寶階)’ 사건은 단연 이채로운 것들이다. 바로 흔치않은 붓다의 초자연적 기적의 일화가 어려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샹카사는 속칭 불교의 ‘8대성지’의 하나로 꼽히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의 혜초의 발길도 분명히 지나쳤던 곳이다. 그렇기에 나그네의 발걸음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게 만들었다. 혜초는 네 탑 중 마지막 탑으로 칸나우지에서 7일거리의 샹캬샤를 꼽고 있다.
『이 중천축국 안에 네 개의 대탑이 있는데 항하의 북안에 세 개가 있다. (중략) 넷째 탑은 삼도보계탑(三道寶階塔)으로 중천축국의 왕이 사는 성에서 서쪽으로 7일 거리에 있는데 두 항하 사이에 있다. 이곳은 부처님이 도리천(?利天)에서 삼도보계로 변하게 하여 밟고 염부제주(閻浮提州)로 내려온 곳이다. (중략) 절도 있고 승려도 있음을 보았다.』
혜초는 절과 승려가 있다는 점은 강조했지만 그 규모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한 3세기 먼저 도착한 법현은 이곳을 승가시국(僧伽施國)이라고 하면서 보계와 석주에 유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올라가 3개월간 어머님을 위해 설법을 하고 내려오신 곳이다.(중략) 부처님은 도리천에서 동쪽으로 향하면서 내려오실 때 신족통으로 3도보계(寶階)를 만들어 가운데 7보계 위로 내려오시고 범천왕은 백은계를 만들어 우측에서 흰 불자(拂子)를 손에 쥐고 내려오고 제석천왕은 좌측에서 7보계를 쥐고 내려오고 제천은 무수히 부처님을 따랐다. 부처님이 땅위에 내려오시자 삼도보계는 모두 땅 속에 파묻히고 7급(級)만이 지상에 남아 있었다. 아쇼카왕이 후에 삼계가 묻힌 위에 정사를 세우고 6장(丈)의 불상을 세웠고 정사 뒤에는 높이가 30주나 되는 석주를 세웠다. 석주 위에는 사자를 만들고 석주 둘레에는 불상을 만들었는데, 석주는 투명하여 유리와 같이 맑았다. 』
또 현장도 상카샤를 카핏타국(劫比他國)이라고 부르며, 도성의 주위가 20여리나 되는, 당당한 한 나라의 도읍이었다고 하면서 이 나라의 기후와 산물은 중천축국과 비슷하고 풍속은 온화하며 사람들은 학예를 즐겼으며 가람은 4군데이고 승려는 1천명으로 모두 소승의 정량부(正量部)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더라고 기록하고는 이어서 역시 삼도보계에 대해 장황하게 추가설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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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카샤의 아쇼카사자상 | 그러니까 위의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이곳 샹카샤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하여간 천국으로 통하는 하늘길이 열려있었던 기적의 땅이었다는 말이고 또한 구법승들이 왔을 당시의 샹카샤는 도읍지의 동쪽 교외에 있던 곳으로 절 주위의 인구가 수만 명이나 되었던 큰 마을이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현재는 교통편도 거의 연결이 안돼는 작은 마을로 전락해 있었다. 마을입구로 들어가는 입구에 글씨가 반쯤 벗겨진 채로 서 있는 ‘Holy Place’라고 쓰여 있는 낡은 표지판이 그 느낌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마을 입구에서 배낭을 맡기고 지나가는 자전거 뒤에 매달려 그곳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철책에 갇힌 채 보관되어 있는 아쇼카 석주 앞에서 잠시 발길을 머문 다음 기적이 일어났다는 그 현장에 섰다. 그리고 말을 잃었다. 수많은 경전이나 박물관의 유물들을 보면서 상상했던, 그 찬란한 현장이란 느낌을 도대체 느낄 수가 없었다. 그곳은 붉은 벽돌의 건물잔해만 뒹구는 폐허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위 기록이 진실이냐 허구냐 하는 관점을 떠나서 그래도 이른바 불교의 ‘8대성지’의 하나에 속하는 곳의 현실이라는 면에서 나그네의 가슴에 한줄기 소슬한 바람이 스쳐가게 만들었다.
불보살의 초자연적 능력을 현란하게 열거한 북방불교의 경전에 이 대목이 부각되어 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붓다의 행적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기록한 남방불교의 경전에도 상카샤의 전설은 기록되어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들은 어떤 종교의 경전 구절을 액면 그대로 믿어 초능력이나 기적 같은 사건을 사실 그 자체로 인정하는 앞뒤가 꽉 막힌 국수적 원리주의자들과는 다른 폭넓은 시각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바로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믿음을 갖되 때로는 이성적인 태도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 ‘기적의 땅’은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화두로 다가온다. 그냥 북방불교의 수많은 전생담(前生談)처럼 상징적으로 해석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실적으로 믿기에는 무언가 뒷맛이 석연치 않기 때문이니까.
상카샤의 전설(?)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세존이 기원정사에 주석하고 계실 때 간담바 나무 아래에서 ‘천불화현(千佛化現)’ 기적을 행하신 후 바로 하늘로 자리를 옮겨 도솔천의 선법당(禪法堂)에서 생후 7일 만에 헤어진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을 하시며 90일을 보내고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실 때 신통제일 목건련과 지혜제일 사리불이 때와 장소를 미리 알고 기다렸다가 천인들을 대동하고 하늘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온 세존을 영접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우리의 혜초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보계의 왼쪽은 금이고 오른쪽은 은이며 가운데는 유리로 만들었는데 부처님은 가운데 길로 내려오시고 범왕(梵王)이 왼편으로, 제석(帝釋)이 오른편 계단으로 부처님을 모시고 내려온 곳이라 하여 이곳에 탑을 세웠다.』
그러니까 붓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마야부인을 만나고 90여일 만에 다시 마치 무지개 같은 반짝이는 보석계단을 타고 바로 상카샤로 내려왔다는 말이다. 마치 기독교 「성경」의 ‘부활 조’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른바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하늘 길(Sky cord)’을 붓다가 열었다는 것인데, 이를 ‘부활 조’처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하는 몫을 독자들에게 돌리겠지만,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후대에 수많은 경전에 기록되었고 또한 산치, 마투라, 간다라 같은 불교예술에 중요한 소재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면 이처럼 현란하게 묘사된 그 ‘하늘 계단’이 현재는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 로 우리의 관심사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의문의 일단은 현장의 기록에게서 대략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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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카샤 표지판 | 『수백 년 전 까지만 해도 계단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제는 부서져서 없어졌다. 그래서 제왕들은 스스로 보계를 볼 수 없음을 한탄하여 벽돌과 돌로 쌓고 보석으로 장식하여 원래의 자리에 보계를 다시 복원시켰다. 그 높이가 70여 척인데 그 위에 정사를 세웠다. (중략) 근처에 높이 70여 척 되는 돌기둥이 있는데 아쇼카가 세운 것으로 감색 광택이 나고 질은 단단하고 결이 섬세하다. 위에 사자를 만들었는데 웅크린 채 계단을 향하고 있으며 진귀한 형태의 조각이 그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죄와 복의 차이에 따라 그림자가 기둥 속에 나타난다.』
근처에 있는 20여m 된다는 아쇼카 석주와 사자석상은, 아니 코끼리상은 비록 부셔진 상태지만 그 자리에 보존되고 있다. 이를 보면 구법승들의 기록들을 신빙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천여 년 전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단을 비롯한 불상은 법현, 현장 그리고 혜초 당시까지도 남아있었음이 분명하지만, 그 후에 사라져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기야, 천여 년의 모진 세월이 무엇을 온전하게 남겨놓겠느냐만, 그래도 하늘 길이 열려 있었다는 기적의 땅 위에서 회색하늘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가슴에 한줄기 소슬한 바람이 스쳐 감은 어찌할 수는 없었다.
글/사진; 다정 김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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