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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대사,원효스님 오도송, 원효스님과 관련된 전설, 원효스님 사진,기사,책에 대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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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대사와 무애행 |
2006-03-15 오전 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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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더불어 노래하고 춤추며 부처님 가르침 쉽게 접하도록
원효 스님(617~686)은 지금으로부터 1천3백여 년 전 이 땅에 한국불교사상과 철학사상의 새로운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를 처음으로 대중화·실천화한 고승이다. 간혹 스님의 위상은, 그러한 사실들보다는 스님의 기행이나 파계행각만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스님은 일정한 스승 없이, 일정한 주처 없이 공부하다가 45세 무렵 늦은 나이임에도 유학을 시도하였던 정열적인 구도자였다. 유학 도중에 해골바가지 옆에 고인 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가던 길을 되돌아 왔다. 그 깨달음이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一切唯心造)’는 유심(唯心)의 도리였다.
스님은 세계 최고, 최대의 저술가로서, <열반경종요>나 <십문화쟁론> 등의 저술들을 통해 모든 학계나 종파를 초월한 통불교(通佛敎)를 천명하여, 향후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게 하였다. 모든 경전을 회통하여 하나로(一乘) 종합시켜 독자적인 사상으로 창조하였는데, 이는 용수보살이 대승불교를 완성한 이래 중국의 각 종파불교를 종합 회통한 일대 불교혁명이었다. 그리하여 신라이후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에 끼친 영향도 매우 커서 성사 혹은 보살로까지 숭앙되고 있다.
스님이 지은 <금강삼매경소>는 자존심 높은 중국인도 논(論)이라 높여 불렀고 그의 <대승기신론소>와 <별기>는 세계의 성인이라 칭송받고 있는 마명과 용수의 저술과 더불어 3대 저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은 이러한 저술을 통하여 모든 학술을 원융무애한 화쟁사상(和諍思想)으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민중교화를 위해 보살행을 널리 폈다.
스님은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파계하고 자기를 ‘아랫것 중의 아래’라는 뜻의 복성거사(卜姓居士) 혹은 소성거사(小姓居士)라 하며 무아행을 폈다. 즉 항간에 나가 표주박에 걸림이 없다는 ‘무애(無碍)’라는 글을 새겨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돌아다니며, 거지나 창기들을 비롯한 하층민중들과 더불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염불을 외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교화하였다. 이 때부터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화엄경>의 ‘모든 것에서 거리낌없는 사람이라야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벗어날 수 있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스님의 오도적 삶을 크게 확대하고 사상의 깊이를 심화시켰으며, 오로지 일심사상으로 돌아가 널리 중생을 이익 되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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