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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스님 -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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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삼매경 (中) 2006-03-16 오후 4:51
 
   
 
- 理入, 중생과 부처 둘 아닌 무분별의 경지 -
- 行入,구함없어 경계에 초연한 무생행 상태 -


<금강삼매경>은 8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품(序品), 무상법품(無相法品; 법에는 상이 없다), 무생행품(無生行品; 냄이 없는 행을 함), 본각리품(本覺利品; 본각에 의하여 사물을 이롭게 함), 입실제품(入實際品; 虛에서 實로 들어가게 함), 진성공품(眞性空品; 참된 성품은 공하다. 모든 行을 분별하여 眞性의 空으로 나오게 함), 여래장품(如來藏品; 무량한 문으로 여래장에 듦을 나타냄), 총지품(摠持品; 의심을 없애는 부분)의 8품이다.
<금강삼매경>은 일명 <섭대승경(攝大乘經)>(대승을 모두 포섭하는 경전)이라고 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의 모든 대승 경전의 이론이 망라되어 있다. <반야경>과 <중론>의 공사상, <화엄경>의 ‘삼계허망 단시일심작(三界虛妄但是一心作; 삼계가 허망하니 다만 한 마음이 만든 것이다)’설, <유마경>의 ‘수불출가 부주재가(雖不出家不住在家; 비록 출가하지 않았지만 재가에도 머무르지 않는다)’설, <법화경>의 일승삼승(一乘三乘) 및 장자궁자(長者窮子; 장자의 궁핍한 아들) 비유, <열반경>의 일천제(一闡提; 불성이 없는 중생)·상락아정(常樂我淨)·불성(佛性)의 설, <능가경>과 <기신론>의 불성여래장(佛性如來藏), 본각(本覺)·시각(始覺)설, 명(名)·상(相)·분별(分別)·정지(正智)·진여(眞如)의 오법설, <범망경>과 <영락경>의 보살 52위설과 삼취정계(三聚淨戒), 당시 유행한 참회(懺悔)·정상말(正像末)·흔구정토(欣求淨土; 기쁘게 정토를 구한다)의 사상, 섭론종의 9식설, 초기 선종의 이입설(二入說)과 수일입여래선(守一入如來禪; 하나를 지켜 여래선에 들어간다) 등 7세기 중반 당시까지 중국에서 성행한 불교 사상 대부분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선종과 연관하여서는 이후에 하택신회(荷澤神會), 정중무상(淨衆無相), 보당무주(保唐無住), 규봉종밀(圭峯宗密) 등 성당시대의 선종에서 한결같이 <금강삼매경>을 선종 성립의 근거로 삼고 있고 또 법안종의 영명연수(永明延壽) 등도 즐겨 인용하고 있는 데서 이 경전이 선종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입설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금강삼매경> 입실제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입(二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두 가지 들어감(二入)은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이다. 이입(理入)이란 중생이 진성(眞性)과 다르지 않으며,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고 공통적인 것도 아니고 다만 객진(客塵)이 가리는 바 되어 있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임을 깊이 믿고, 마음을 모아 각관(覺觀)에 머물러 불성(佛性)을 자세히 관찰하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자기도 없고 남도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둘이 아님을 알아서 금강심지(金剛心地)에 굳게 머물러 움직이지 않고 적정하고 무위하여 분별이 없음인데 이것을 이입(理入)이라 한다. 행입(行入)이란 마음이 기울거나 의지하지 않으며 그림자에 홀리거나 바꿈이 없으며, 모든 처소에서 생각을 고요히 해서 구함이 없으며, 바람이 북 치듯 해도 움직이지 않기를 대지와 같이 하며, 마음과 나를 버려서 중생을 구원하고 제도함에 무생무상(無生無相)이고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원효는 이를 풀이하여, “이입(理入)은 순리(順理)하여 신해(信解)함인데 증행(證行)은 얻지 못했고 위(位)는 지전(地前; 十地 이전)에 있다. 행입은 증리(證理)하여 수행함이며 무생행(無生行)에 들어감이니 위(位)는 지상(地上; 十地 이상)에 있다.”고 말한다. 이 이입설(二入說)은 선종의 초조(初祖)인 보리달마의 이입사행론의 근거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금강삼매경>이 위경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 문제에는 약간 복잡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어쨌든 선종의 이론과 관련을 갖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금강삼매경>에서는 이입과 행입의 이입(二入)만을 말하고 있는데 비해 보리달마의 이입사행론에서는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의 이입(二入)을 말하고 행입에 다시 네 가지 행을 말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네 가지 행이라는 것은 보원행(報怨行; 괴로운 인생은 자업자득이라 생각하여 감수함), 수연행(隨緣行; 인연에 隨順하는 행위), 무소구행(無所求行; 구하는 바가 없는 행위), 칭법행(稱法行; 법에 맞는 행위)이다.

저자 - 최유진<경남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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