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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의 실천행]에 대한 논평 |
2006-03-16 오후 4: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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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 柄 憲 (서울대 국사학과교수)
Ⅰ
삼국통일을 이룩한 7세기 신라 불교의 역사적인 과제는 身分的·地域的인 對立과 葛藤을 해소시킬 수 있는 社會統合의 철학을 계발하고, 나아가 그것을 時代精神으로 승화 구현시키는 것이었는데, 당시 불교계의 구체적인 노력으로써는 난립되어 대립하고 있던 불교학설들을 統合 整理하여 종합적인 불교교학 체계를 수립하는 것과, 支配層에 국한되어 있던 王室佛敎·貴族佛敎를 일반 서민이나 노비 계{{ 「元曉의 實踐行」에 대한 논평 }}층에까지 끌어내려 大衆佛敎化시키는 것 등 양면으로 전개되었다. 이 당시의 대표적 승려였던 元曉(617-686)의 불교 활동은 실로 이러한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원효의 불교 활동은 크게 보면, 불교사상의 통합 정리를 위한 敎學의 硏究와 大衆 敎化를 위한 불교의 實踐行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결과 元曉는 두 모습의 얼굴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었다. 즉 哲學者·思想家로서의 얼굴과 大衆布敎師·敎化師로서의 얼굴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두면의 모습은 전연 다른 성격의 것이고, 일견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불교역사상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원효 불교의 위대성은 바로 이 두면을 한 몸으로 동시에 구현시킨 데에 있었다고 본다.
Ⅱ
金相鉉 교수의 논문은 원효 불교의 敎學과 實踐이라는 두 측면 가운데서 실천의 문제를 다룬 것인데, 그 주요 내용은 원효의 發心修行論, 懺悔論과 錚觀法, 그리고 止觀二行論 등 實踐修行論에 관한 것이다. 金 교수는 發心修行論 등 각각의 修行論에 대해서는 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하여 줌으로써 읽는 이에게 다소의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평자로서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金 교수가 「각 修行論의 분석을 통하여 원효의 實踐修行論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겠다」는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각 修行論에 대한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설명의 나열에 그침으로써 원효의 實踐修行論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해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원효의 불교는 교학과 실천의 양면에서 그 폭이 대단히 넓고 또한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었으면서도 會通佛敎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일원적인 체계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바, 실천수행체계에서도 각각의 수행론이 상호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이루어진 것으로서 밝혀져야 할 것이며, 나아가 각각의 실천수행론을 관통하는 실천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실천원리가 그 교학의 이론체계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의 문제가 좀더 깊이 구조적으로 추구되지 않으면 학문적인 성과로서 평가하는데 한계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Ⅲ
{{[원효의 실천행」에 대한 논평 }}金 교수는 원효의 수행론 가운데서 止觀二行論이 특히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으면서도 「止觀雙運」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언급에 그친 점은 이 논문의 내용 가운데 커다란 아쉬움과 한계점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원효 불교의 핵심은 一心思想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효는 一心의 根源을 회복하기 위한 수행으로 다섯가지(五門)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 다섯 가지는 施門, 戒門, 忍門, 進門, 止觀門 등인 바, 대승불교의 공통된 수행인 六波羅密과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원효는 이 다섯 가지 가운데, 특히 다섯 번째인 止觀門을 가장 중시하여 상세한 주석을 베풀었는데, 이러한 점은 大乘起信論 자체의 입장이기도 한 것이다. 止觀門은 六波羅密 가운데서 禪定과 智慧를 합한 것인데, 원효가 그 둘을 하나의 문으로 합쳐놓은 것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止와 觀의 수행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하면 止觀雙運은 원효의 일관된 주장이며, 동시에 大乘起信論의 본래의 입장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원효의 수행론인 止觀二行의 문제는 金 교수의 논문에서와 같이 원효가 특히 강조했다는 지적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효 불교학의 핵심은 大乘起信論에 의한 一心二門(眞如門과 生滅門)體系라고 할 수 있는데, 원효는 이러한 一心二門의 이론체계를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법으로 연결시켜 풀어내는가를 살펴보는 작업이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一心二門體系와 止觀二行論 사이의 구조적인 관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원효 불교의 실천론에 대한 이해는 제대로 밝혀진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一心의 실천적 파악으로서 心眞如門에서는 止, 心生滅門에서는 觀으로 대응시켜 이를 수행의 二門으로 하였음을 지적하는 鎌田茂雄 같은 학자의 주장은 일단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효의 止觀二行論이 天台의 止觀이나 華嚴의 觀行, 그리고 知訥의 定慧雙修說 등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등의 비교를 통하여 원효의 수행론의 특징과 그 역사적 의의를 밝혀야 할 것이다. 한편 원효는 大乘起信論의 一心二門體系를 바탕으로 止觀二行의 實踐原理를 모색하였으며, 그것을 金剛三昧經論에서는 一味觀行이라고 이름하였다. 원효에 의하면 모든 중생들은 一心의 流轉이므로 그들이 얻게 될 깨달음 또한 一覺이며,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방법이 一乘이므로 그 깨달음의 맛 또한 一味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효가 이와 같이 金剛三昧經에 의해 一心思想을 실천적으로 파악하고 그 실천원리를 一味觀行이라고 이름하였다면 一心二門과 止觀二門의 관계에서 나아가 一味觀行이라는 실천원리까지 포괄하는 일원적인 원효 불교의 실천체계의 구조적인 관계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Ⅳ
金 교수의 논문은 제목과 내용 사이에 약간의 모순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제목으로는 「元曉의 實踐行」을 내걸고 내용에서는 實踐修行論만을 다루고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實踐行과 實踐修行論은 그 뜻이 다른 내용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원효의 실천행이라고 하면 실제적으로 수행하고 교화하는 행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되며, 원효의 경우는 걸림이 없는 無碍한 행적, 특히 하층의 중생을 교화하는 행적이 문제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宋高僧傳 권4 元曉傳에는 "(唐에 구법여행하려는) 인연이 이미 어그러지자 마음 닿는 대로 가서 노닐었다. 얼마 아니 되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거칠고 빚나간 행동을 하였으며, 거사와 한가지로 술집과 기생집을 출입하는 것이, 保誌스님이 칼과 쇠지팡이를 차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혹은 疏를 지어서 華嚴經을 강하기도 하고, 혹은 거문고를 뜯으며 사당에서 노래하기도 하였다. 혹은 민가에서 자기도 하고, 혹은 산수간에서 좌선하기도 하였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니 도무지 일정함이 없었다." 라고 하여 원효의 무애한 행적을 요약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행적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아울러 高仙寺誓幢和上碑나 三國遺事 권4 元曉不羈條 등에 나타나는 원효의 無碍한 행적의 의미가 함께 추구되어야 하며, 아울러 원효와 관계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성격과 불교신앙의 내용이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원효가 대중교화를 위한 신앙으로써 내세운 것은 淨土信仰이었던 바, 원효의 實踐行은 淨土信仰과 관련시켜 이해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金 교수의 논문의 제목이 「元曉의 實踐行」이라면 이러한 實踐行蹟의 내용과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논문의 제목을 「원효의 實踐修行論」으로 제시하려고 한다면 止觀二行論을 비롯하여 그 實踐修行論에 대한 이해를 좀더 심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여 일원적인 실천체계의 구조적인 내용을 밝혀 줄 것을 권유하는 것으로 평자의 책임을 면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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